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사임한 9월 10일, 과천 관가는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안에서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면서 웅성거렸다.변 실장의 사임과 함께 변 실장이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시점. 검찰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연애편지’에 가까운 e메일 100여 통과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확보했고, e메일은 대부분 ‘연정’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노골적인 표현도 상당히 포함돼 있다고 전해졌을 때다.언론에 겉으로 나타난 관가의 반응은 “변 전 실장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신정아가 사귀었다는 30대 노총각 공무원이 누구냐” “장차관과 1급 국장 등 핵심 보직을 모두 거친 변 전 실장 문제로 예산처의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부처 출범 후 최대 위기다” 등 정도였지만 관가의 호기심도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신정아가 어디가 예쁜지 모르겠다”에서부터 “신정아가 동국대에 있을 때 어땠다더라” “모범생(변 전 실장)이 당한 것 아니냐” “진짜 사랑했을까” 등 일반인들이 당연히 하는 말들이 오갔다. 문화일보가 13일 신 전 교수의 누드 사진을 게재했을 때도 “문화일보 봤느냐”는 게 만날 때 인사였다.하지만 산업자원부는 조금 달랐다. 물론 직원들의 반응은 다른 부처와 비슷했지만 ‘윗분들’사이에서는 ‘변 전 실장의 후임이 누가 될까’에 대한 말들이 오갔다. 김영주 산자부 장관이 후임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은근히 장관 자리가 내부 승진으로 결정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산자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후임 인사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고 밝힌 12일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3명 정도로 압축했는데 우리(산자부) 장관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장관을 각별히 신임하기 때문에 인사수석실이 후보에 넣지 않아도 노 대통령이 직접 선택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실제 김 장관은 참여정부의 국정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정책과 기획 업무에서 노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했다. 김 장관은 2001년 대통령 정책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발을 들여놓은 후 기획조정비서관, 정책기획비서관을 거쳤고 잠시 재정경제부 차관보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경제정책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산자부 내에서는 김 장관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간다면 연쇄적으로 인사이동이 가능하다는 기대감이 높았다. 참여정부 임기가 5개월 남짓 남았기 때문에 정책의 연속성 측면에서 후임 장관을 외부에서 데려오기는 어렵다는 게 근거였다. 최근 농림부와 복지부의 장관 인사가 내부 승진으로 됐다는 점도 그 가능성을 더했다.그렇다면 후임은 차관 2명 중 누가 될까. 대부분 오영호 제1차관이 55세로 이재훈 제2차관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오 차관이 유력하다고 봤다. 또 일부는 이 차관의 행시 기수가 21회로 오 차관(23회)보다 빠르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지금 장관이 된다면 득이냐, 실이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교체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며 “5개월 남짓 장관을 하면 뭐하느냐”고 말했다. 정권 막바지에 잠깐 하는 장관은 새로 일을 벌일 수도 없고 뒷수습만 하다 끝난다는 설명이다. 일부는 장관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만만치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금과 퇴직금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와 함께, 그만두더라도 전 산자부 장관이라는 명칭이 따른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차관이라고 해서 새 정부에서 장관이 된다는 보장이 있느냐”며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하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산자부에서의 이같이 조용한 소란(?)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정책실장에 성경륭 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내정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던 산자부 사람들 입장에서는 김칫국만 마신 꼴이 됐다. 정재형·한국경제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