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최대 정보기술(IT) 업체 위프로(Wipro)의 아짐 프렘지 회장은 인도 내에서 손꼽히는 거부다. 에너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무케시 암바니와 아닐 암바니 형제에 이어 재산이 세 번째로 많다. 포브스가 집계한 그의 재산은 17억1000만 달러. 전 세계 거부 명단에 21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 별명도 ‘인도의 빌 게이츠’다. 무슬림 기업가로 범위를 좁히면 세계 1등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재벌도 프렘지 회장보다는 한 수 아래다.월스트리트저널은 9월 12일 “프렘지 회장의 성공 스토리가 인도 무슬림들의 근본주의적 교육관을 서서히 변모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슬람 계율에 얽매여 있는 교육 제도가 프렘지 회장의 성공을 계기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힌두교도가 주류인 인도에서 무슬림들은 최하층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인도가 매년 9%를 넘나드는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 있지만 무슬림은 그 영향권 밖이다. 프렘지 회장은 인도 무슬림의 생활수준이 낮은 가장 큰 원인으로 ‘이슬람식 교육제도’를 꼽았다.무슬림 학교의 아이들은 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두(Urdu)’로 된 교과서로 공부한다. 몸은 힌두 국가인 인도에 있지만 정신세계는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또 수업 시간의 대부분은 아랍어로 된 ‘코란(이슬람 경전)’을 외우는데 할애된다. 학생이나 교사 모두 뜻도 모른 채 무조건 암기에 매달린다. 과학과 영어 과목은 아예 수업 시간표에서 빠져 있다. 이런 식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당연히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프렘지의 생각이다. 실제로 인도에서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중은 17%(1억5000만 명)에 달하지만 인도 최고 학부인 ‘인도공과대학(IIT)’ 졸업생 가운데 무슬림은 1.7%에 불과하다. 행정부 관료 가운데 무슬림 비중도 3%에 머물러 있고 외교관 중에는 거의 무슬림을 찾기 어렵다.이런 인도 무슬림 사회에서 프렘지 회장은 별종이다.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한 영향으로 사고방식이 일반 무슬림과는 다르다.공개적으로는 좀처럼 무슬림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을 뿐더러 이슬람 기념일에도 회사 문을 연다. 자신의 회사에서 무슬림을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는다. 위프로의 임원 가운데 무슬림은 프렘지 회장 혼자뿐이고 7만여 명의 직원 중에도 무슬림은 극소수다.프렘지 회장의 이런 실용적인 생각은 회사의 눈부신 실적으로 이어졌다. 1996년 연간 매출 2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식용유 회사 위프로가 인도 최대 IT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프렘지의 ‘열린 사고’ 덕이 크다. 지난해 위프로는 3470억 달러의 매출과 6억7700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각각 전년 대비 40% 이상 늘어난 것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는 주가도 최근 5년 새 3배 올랐다.프렘지를 바라보는 인도 무슬림들의 시선이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수 무슬림들은 프렘지 회장을 “미 제국주의에 기생하는 노예”라고 폄훼한다. 줄기차게 ‘세계화’를 부르짖는 프렘지의 생각도 못마땅하다. 프렘지는 이런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이슬람 행동가들이 ‘신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세계화’는 일방통행 도로가 아닌 양방향 도로”라며 “세계화는 인도에도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반박했다.프렘지는 교육만이 인도의 살 길이자, 무슬림의 구제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부금도 교육 분야에 집중한다. 프렘지의 노력은 인도 사회에서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방갈로르에 있는 알 아민 대학이 대표적인 케이스.무슬림들이 다니는 이 학교는 최근 들어 컴퓨터 공학과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졸업생 가운데 위프로나 인포시스와 같은 인도 IT 기업에 취직하는 사람들도 느는 추세다.알 아민 대학의 자비브 교수는 “프렘지는 무슬림 사회에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이제 교육이 힘이고 돈이며 기회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계화에 일찍 눈뜬 기업가 한 사람이 코끼리처럼 굼뜬 인도를 서서히 바꿔 나가고 있다. 안재석·한국경제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