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35% 점유 ㆍㆍㆍ성공비결은 철저한 '이야기 중심'

1928년 미키마우스란 캐릭터를 탄생시킨 후 월트 디즈니는 <증기선 윌리>란 세계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를 제작하면서 <백설공주>, <인어공주>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구전돼 왔던 설화들은 환상적인 영상 화면을 통해 감동적인 이야기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유년기,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이 친근한 이야기는 이제 디즈니가 그린 구체적인 캐릭터로 고정됐다. 이야기에 취한 소비자들은 봉제 인형이나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으로라도 영상 속의 주인공을 잡고 싶어 한다.디즈니가 엄청난 숫자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모아 디즈니랜드를 개장했을 때 성공은 이미 반쯤 예견된 것이었다. 관람객들은 이미 감동받은 이야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즐기기 위해 몰려들었고 디즈니랜드식의 테마파크는 곧 세계로 퍼져나갔다. 1955년 7월 17일 캘리포니아 주 남서부 애너하임(Anaheim)의 약 139ha에서 18가지 어트랙션(놀이기구)으로 개장한 디즈니랜드의 오픈 당시 입장객은 2만8154명이었다.이제 디즈니랜드는 올랜도의 디즈니월드와 함께 미국 테마파크 상위 40개 사의 입장객 수 중 35%를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그뿐만 아니다. 파리와 도쿄, 홍콩에까지 등장한 디즈니 테마파크는 이제 디즈니랜드 특유의 장점과 그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디즈니랜드는 왜 이렇게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단연코 이야기다. 우리가 월트 디즈니 테마파크라고 부르는 이 국제 테마파크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몇 개의 주제로 구분된다.디즈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미주리 주의 거리를 본뜬 메인 스트리트, 정글 여행하는 스토리인 모험의 나라, 미개척 시대를 재현한 개척의 나라, 동화, 설화들을 모험의 형식으로 구성한 환상의 나라, 미래를 재현하는 내일의 나라, 동물들의 고향, 미키마우스 등의 캐릭터와 동화 속 성곽을 본떠 만든 미키 툰 타운, 디즈니 만화를 주제로 한 독립된 테마 공원으로 구성돼 있다.즉, 모두 이야기로 구성된 것이다.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소설을 떠올린다. 워낙 인쇄 매체가 공식적인 지식 획득 수단이었던 근대를 살아온 우리들은 가장 보편적인 매체의 이야기인 소설을 모든 이야기 형식의 전범인 것처럼 오해한다.그러나 이야기의 범위는 너무나 광범위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자라나고 성경이나 불경의 이야기를 통해 도덕을 배우고 종교를 배운다. 과학적 지식도 과학자들의 흥미진진한 발견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얻는다. TV 뉴스에서 앵커의 이야기를 통해 시사 지식을 얻는가 하면 꿈도 이야기 형태로 꾸는 것이다. 이야기는 세계를 인식하는 근본적인 방식 중 하나인 것이다.그런데 이야기는 매체에 따라 다른 형식을 띤다. 소설은 열 권 스무 권 길게 써도 되지만 영화는 두 세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소설은 문자가 위주이지만 영화는 영상과 소리가 위주다. 게임에는 감상자의 능동적인 상호작용이 있어야 이야기가 생성된다.그렇다면 테마파크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가. 관람객들은 건물과 다양한 이벤트의 배치를 공간 체험하면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좀 더 전문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관람객들은 매순간 획득된 공간의 경험을 시간의 축에 따라 배열하는 과정, 즉 기억의 연쇄 고리로서의 이야기를 즐긴다.‘체험에 의한 이미지들의 감상적 잔상들의 연속’인 테마파크에서의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지만 또한 같다. 영화는 주어진 내용을 눈으로만 감상할 뿐이다. 반면 테마파크의 이야기는 관람객이 몸을 움직여 탈것을 타고 캐릭터를 쓴 종업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구비된 프로그램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즉, 기억 속에 경험되는 내용이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디즈니랜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환상의 나라, 혹은 독립된 테마다. 그동안 애니메이션으로 세인의 사랑을 받아 온 <미키마우스>, <인어공주> 등 디즈니의 필생의 야심작들의 2차원적 이야기들이 삼차원으로 공간화한 장소다. 이 장소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보내며 3차원의 공간을 4차원화한다. 당연히 다른 테마파크에 비해 철저히 이야기 중심적으로 구성돼 있다.첫째, 철저한 허구의 공간 구축이다. 우리는 소설을 픽션(fiction)이라고 한다. 거짓말, 가짜의 세계라는 것인데 이렇게 드러나는 허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허구로서 소설을 감상할 마음의 준비를 갖게 만든다. 특히 환상소설이나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 이것이 강하다.예를 들면, 도쿄 디즈니랜드는 주위가 언덕이나 나무로 둘러싸여 철저한 폐쇄 공간을 이루고 있다. 관람객이 입구에서 제인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미키마우스 모양을 한 화단이다. 디즈니의 이야기성을 이처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상징물도 없을 것이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이 환상의 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석상이 등장한다. <매트릭스>에서도 네오가 거울을 보는 데서 이상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토끼를 따라가다가 구멍 속에 빠지면서 모험이 시작된다.모든 환상적 이야기에는 이처럼 ‘문지방’이 존재한다. 이 문지방을 건너면서 사람들은 허구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도쿄 디즈니랜드는 이런 이야기의 장치를 공간화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환상의 이야기를 즐기게 만드는 것이다.둘째, 이 세계 속에는 많은 출연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종업원들을 ‘캐스트(출연자)’로 부르고 있다. 캐스트들은 ‘테마파크 안의 모든 것이 쇼다’라는 지침 아래 400종의 매뉴얼을 숙지한다. 캐스트들은 이에 따라 정해진 의상을 입고 정해진 대사를 정해진 대로 읊으면서 연기한다.이제 관람객이 들어가 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로 만든다. 디즈니랜드에서의 체험은 관람객이 참여해 만드는 이야기, 즉 관람객이 참여하는 공연, 연극과 같은 것이다.셋째, 철저한 애니메이션 기반의 테마파크란 점이다. 애니메이션이 이야기라는 점에는 논의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특이하게도 전래 동화, 설화를 모티프로 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인어공주>, <백설공주> 등의 이야기라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될 때 유년기의 향수와 환상이 가미돼 관객들은 쉽게 감정이입이 이뤄진다.넷째, 이제 관람객들은 평소 머릿속에서만 그려왔던 동화 속의 이야기들을 테마파크의 잘 고안된 어트랙션과 캐릭터로 연기하는 캐스트들에 의해 스스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기 환상을 극대화하게 된다. 이 극대화된 환상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관람객들은 캐릭터의 소품들을 기념품으로 사가게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 체험은 자연스럽게 부가가치로 연결된다.장 보드리야르가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주장한 근거는 바로 디즈니랜드였다. 시뮬라크르는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을 뜻한다. 그는 디즈니랜드야말로 시뮬라크르의 완벽한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유아적인 상상의 세계를 재생하는 공간으로서 그곳은 완벽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로 들어와서 이제 꿈으로 변해버린 그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그 공간에 가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디즈니랜드의 힘은 바로 이야기다.최혜실·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choi4626@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