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주 <우리나라 삼국지> 저자

<우리나라 삼국지>라는 책이 있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11권짜리 대하 역사소설이다. 고대사에 대한 높아진 사회적 관심을 이용한 기획 출판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자료 수집 기간만 20년이 걸렸고 집필 기간은 11년이 소요된 ‘공든 탑’인 것이다.이 책의 저자는 임동주 서울대 초빙교수다. 특이한 점은 그의 전공이 수의학이라는 것이다. 관상어 분야에선 명성이 자자하다. 수의학 교수의 역사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책을 열어 몇 쪽을 읽어봤다. 간결한 문체로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방대했다. 수식어는 최대한 절제돼 있었다.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가 저절로 느껴졌다.“소설이지만 내용의 90%는 논픽션입니다. 역사적 사실의 곡해를 무엇보다 경계했습니다. 단문을 활용한 것도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실제 역사가 창작보다 오히려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수의대 교수가 왜 역사 소설 집필에 나선 것일까.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아버지가 사다 준 <삼국지>가 발단이 됐다. 우리나라 역사인 줄만 알고 정신없이, 반복해 읽다 문득 우리나라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신감이 밀려왔고 언젠가 우리나라의 삼국지를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이 찍힌 11권의 역사소설이 탄생했다.집필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고증이 문제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이고 <당서>, <일본서기>, <수서> 등 각국의 역사서를 섭렵했다. 번역서가 없어 사재를 털어 번역을 시켜 읽어댔다. 참고한 논문은 무려 1500여 편에 달한다. 국내는 물론 중국의 역사 현장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다. 전문가들도 부지기수로 찾아다니며 물어봤다.“주위에서 많이 말렸어요.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데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는데 책까지 쓴다고 하니 너무 힘들어 보였나 봐요. 하지만 굽히지 않았죠. 꼭 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거든요.”임 교수는 우리의 고대사를 ‘당당하고 씩씩한 시대’라고 정리한다. 이 시대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식민사관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3국은 생산적인 경쟁 시스템 아래 있었습니다. 전쟁도 많이 했던 반면 문화적 역량도 최상급이었습니다. 통일신라가 오래 못 간 이유도 경쟁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북한이라는 경쟁 상대가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경쟁은 성장의 밑거름입니다.”제대로 된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임 교수의 눈에 TV의 역사 드라마는 ‘가관’에 불과하다. 너무나 허위적이고 작위적이라는 얘기다. 연개소문이 김유신의 하인으로 나오고 한나라에 없던 철기군이 등장하고 설인귀가 일대의 영웅으로 묘사되는 데엔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다.“작가들의 역사 이해 수준이 일천한 거죠. 역사 드라마를 제대로 쓰려면 최소 10년은 역사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몇 달 만에 뚝딱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드라마를 원작으로 책까지 낸다는 겁니다. 학생들은 그걸 읽고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11권이라는 대장정을 마쳤지만 임 교수의 집필 의지는 여전히 뜨겁다.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을 쓸 계획이다. 대략적인 이야기의 얼개는 이미 잡힌 상태이고 2년 안에 출판할 예정이다.약력: 1954년생. 78년 서울대 수의대 졸업. 2006년 제주대 수의학 박사. 80년 마야무역 창립 사장(현). 93년 도서출판 마야 창립 사장(현). 97년 서울대 수의대 초빙교수(현).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