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앞두고 우리사주조합 경영권 사수 선언 ㆍㆍㆍ김 회장 거취 주목
쌍용건설이 옛 쌍용그룹의 명맥을 이을 수 있을까. 2004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쌍용건설의 매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쌍용건설과 옛 오너였던 김석준 회장에 대해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한때 삼성 대우 등 국내 유수의 재벌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쌍용그룹은 쌍용자동차 부실 3조4000억 원에 대한 지급보증을 계열사들이 나눠 안으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쌍용건설은 1999년 워크아웃 이후 2004년에 워크아웃을 졸업할 정도로 회생했지만 쌍용중공업(현 STX조선) 쌍용정유(현 에쓰오일) 쌍용화재(현 흥국쌍용화재) 쌍용투자증권(현 굿모닝신한증권)이 매각돼 쌍용이라는 이름을 떼어냈고 쌍용자동차 쌍용제지 쌍용양회는 외국계 대주주에게 매각됐다.김 회장은 쌍용그룹 창업주인 고 김성곤 회장의 2남이다. 결국 그가 이끌고 있는 쌍용건설은 유일한 쌍용의 적통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매각 작업 결과에 따라 김석준 회장의 운명이 갈라질 수 있다. 그 변수로는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이 가지고 있는 주식 우선매수청구권이다. 채권단이 보유한 주식 중 24.72%를 우선적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리다. 이를 매입할 경우 기존 지분과 우호지분을 합하면 50%의 지분을 확보하게 돼 경영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최근 김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해졌다. 지난해 2월 사기 대출과 횡령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지만 올해 2월 경제인 대사면에 포함되면서 부담을 털어버렸다. 지난해 실형 선고 후 김 회장은 대표이사직을 내놓았지만 해외 인맥과 수주 능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를 위해 백의종군하기도 했다. 사면 이후 올해 3월 주총에서는 다시 이사가 됐다. 김 회장의 형인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도 올해 사면된 뒤 서울 시내에 새로이 사무실을 마련하고 새로운 활동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쌍용건설 내부에서 김 회장은 정신적 지주로 통한다. 워크아웃 이후 쌍용건설 임직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 지금에까지 온 것 자체가 김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쌍용건설은 1999년 4월, 2002년 5월, 2003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9.05 대 1, 10 대 1, 3 대 1의 감자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의 지분은 거의 사라졌다. 채권단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옛 오너에게 추후 경영이 정상화됐을 때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옵션을 줬다. 채권단은 김 회장의 경영자적 능력을 높이 사 회사의 경영을 그대로 맡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2003년 마지막 감자 이후 우리사주조합이 출범하고 320억 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직원들은 퇴직금을 정산해 2500원짜리 주식을 액면가인 5000원에 매입했다. 눈물겨운 결정이었지만 회사의 미래에 자신들의 운명을 건 것이었다. 김 회장도 유상증자에 참여해 현재 1.4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우선매수청구권도 우리사주조합에 양도했다.현재 쌍용건설의 주가는 2만2000원대다. 직원들은 과거 희생에 대한 보상을 어느 정도 받은 셈이다. 물론 직원들은 “지금까지 회사가 어려워 받지 못한 상여금, 성과급 등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이너스”라고 손을 내젓는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도 동참해 가두 캠페인에 참가하는 등 쌍용건설 회생에 올인했다.지금 상황에서 김 회장이 쌍용건설의 오너가 된다거나 그룹을 재건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직원들은 거의 없다. 일단 객관적으로 지분을 인수할 자금이 본인에게 없기 때문이다. 지분 1.41%도 이태원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자금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본인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경영인으로서 명예 회복에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재벌그룹의 오너에서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사내에서도 직원들의 김 회장에 대한 믿음과 애착이 강하다. 쌍용건설의 경영과 문화, 애정에 있어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정서는 최근 매각 일정이 구체화되면서 더 강해지고 있다. 제3자가 회사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심이 크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인수·합병(M&A)을 자기 돈으로 하는 경우는 없다. 비싼 이자를 주고 빌리거나 투기성 자금일 텐데 당연히 인수한 회사에서 빼가려고 하지 않겠는가. 모 건설사의 경우 당장 건물을 팔아치웠지 않느냐. 쌍용건설은 도덕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회사인데 외부인이 들어와서 이를 흐려놓지 않을까 걱정된다. 비자금을 만들기 가장 쉬운 곳이 건설회사 아닌가”라며 우려를 표명했다.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은 김 회장을 중심으로 임직원들이 똘똘 뭉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말은 거꾸로 향후 종업원 지주회사가 되었을 때 김 회장이 오랫동안 쌍용건설의 중심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쌍용건설 측은 “지금은 모든 업무를 대표이사가 맡고 있고 김 회장은 해외 공사 수주와 국내 발주처 영업에만 관여하고 있다”라며 ‘사주’ 역할에 대한 단정 짓기를 경계했다.채권단 대표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6월 23일 삼정KPMG&소시어스 컨소시엄을 매각 주간사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매각 주간사는 8월까지 실사를 마치고 9월에 예비 입찰에 들어가 올해 안에 매각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매각이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아리송한 상태다. 우리사주조합이 가진 우선매수청구권은 어떤 경우든 먼저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다만 가격이 문제다. 캠코는 일단 공적자금 회수 실적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가격을 높여야 하는 입장이다. 가장 높은 가격으로 입찰가가 정해지면 그 가격으로 우리사주조합이 매입해야 한다.우리사주조합은 일단 “어떤 가격이든 우리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이미 현재가로 지분 100%를 인수할 수 있는 돈(투자자)을 확보해 놓았다고 한다. 한 직원은 “투자자는 ‘H&Q-국민연금 제1호 사모 펀드”라고 귀띔했다. 국민연금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였다는 설명이다. 다만 우리사주조합 측은 “세부적인 자금의 성격과 합의사항은 캠코의 매각 관련 조건과 일정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고 덧붙였다.쌍용건설은 토목, 건축, 플랜트, 해외 등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좋은 것이 강점이다. 타 회사들이 욕심을 내볼만한 대상이다.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이 ‘무조건 인수’라는 제스처를 보내 잠재적 인수자에게 강수를 두는 것처럼 잠재적 인수자도 ‘베팅’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결국 포커판의 ‘블러핑’처럼 입찰 전부터 기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현재 18.2%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우리사주조합은 채권단(캠코 38.75%, 금융사 11.32%)의 지분 중 24.72%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쌍용건설 임원 1.71%, 우호세력인 쌍용양회 6.13%를 다 합하면 총 50.76%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쌍용그룹의 유일한 명맥, 김석준 회장이라는 유일한 적통, 종업원 지주제에 대한 관심, 매각을 둘러싼 기 싸움 등 쌍용건설 매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돋보기 쌍용자동차 매각 비화그룹 운명 가른 쌍용자동차쌍용건설 내부에서는 과거 삼성그룹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더라면 지금의 쌍용그룹이 재계 서열 2~3위는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직원들 사이에 남아 있다.쌍용자동차의 부실로 3조4000억 원의 부실 채권이 발생했을 때 삼성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삼성의 요구 조건은 쌍용투자증권을 함께 넘기라는 것이었다. 쌍용그룹에서는 유일한 금융사이자 캐시카우였던 쌍용투자증권을 넘길 수 없었고 결국 쌍용자동차는 1998년 대우자동차에 매각됐다. 당시 대우자동차는 쌍용자동차의 2조 원의 부실을 떠안았고 나머지 1조4000억 원의 부실이 쌍용그룹의 운명을 갈랐던 것이다.쌍용건설의 한 직원은 “당시 삼성이 3조4000억 원의 부실을 떠안고 쌍용자동차를 샀더라면 삼성자동차를 매각하지 않아도 됐을 테고 쌍용그룹도 무너지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라고 전했다. 19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해 증권업을 시작한 삼성은 쌍용투자증권 대신 1998년 동양투자신탁증권을 인수·합병해 지금의 삼성증권으로 키웠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