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ㆍ경제 변화 적극 반영 ㆍㆍㆍ특수직역 연금도 동반개혁
국민연금법 개정안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수급 구조의 불균형과 인구 고령화로 인해 발생한 재정 불안정 해결보다는 사각지대 해소라는 문제로 옮겨졌다. 이에 따라 전체 노후소득보장체계에서 국민연금의 역할 등 보다 광범위한 주제로 확산됐다.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 통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 불안정, 사각지대, 효율적인 기금운용, 특수직역연금의 개혁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고 더 나아가 현행 사회보험방식 국민연금제도의 기본 틀 유지 여부를 포함한 근본적인 제도 개혁 논란이 계속해서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보다 먼저 연금제도를 도입, 이미 성숙 단계에 진입한 주요 선진국의 연금 개혁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인구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바람직한 연금 개혁 방안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국민연금 도입 역사가 19년에 불과한 우리나라와 달리 이미 오래 전에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한 선진국의 경우 1980년대 이전까지는 안정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가입 규모 확대, 급여 수준의 향상 등에 치중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경제 성장 둔화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부과방식 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공적연금제도는 재정 불안정을 경험하게 됐다.즉, 인구 고령화에 따라 급속하게 증가하는 노인 인구에 비해 출산율 저하로 인한 근로인구의 감소는 세대 간 부양 기능을 가진 공적연금의 제도부양비율(dependency ratio)을 악화시킴으로써 향후 공적연금의 재정 불안정을 더욱 가속화하는 원인이 됐다. 따라서 현재 공적연금제도에 내재된 장기적인 재정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수 국가들이 다양한 형태로의 연금 개혁을 도모하고 있다.최근 각국의 제도 개선 방향은 첫째, 급여 수준은 과거에 비해 낮추고 부담 수준은 인상하거나 또는 수급 개시 연령을 연장하는 등 수급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급여산식에 인구·경제학적 변화가 자동적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급여의 자동조정장치(Automatic Balance System)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체 노후소득보장체계에서 공적연금의 비중이 높으며 소득비례속성이 강한 비스마르크 유형의 독일과 일본은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기여상한선을 설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인구통계학적 요인을 급여산식에 포함해 자동적으로 급여 수준을 하향 조정했다. 독일은 2004년 개혁을 통해 2030년까지 심리적 부담한계선을 22%로 정하되, 급여 수준을 현행 70%에서 2030년까지 64%로 낮추는 장치를 마련했다. 일본도 2004년 개혁을 통해 후생연금 보험료는 13.58%에서 2017년 이후 18.30%로 인상했으며 급여산식에 인구통계학적 요인을 포함해 급여 수준을 현재 근로세대 평균 소득의 50%로 하향 조정했다.둘째, 자신이 낸 보험료에 비례해 급여를 제공하는 확정기여방식제도(DC)를 도입함으로써 보험료와 급여와의 연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기초연금 등으로 보편적인 급여를 제공했던 스웨덴 및 이탈리아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부과 방식 연금제도의 재정 불안정 문제가 심각함에 따라 가입 기간과 기여에 비례해 급여를 제공하는 명목확정기여제도(NDC)로 전환했다.셋째, 공적연금 급여 수준 하락에 따른 불충분한 노후 소득 문제는 공공부조제도를 통한 저소득 노인에 대한 소득 지원과 함께 개인 적립 계좌의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의 가입 유도를 통해 보충하려고 노력했다. 독일은 2001년 연금개혁을 통해 공적연금의 급여 수준을 인하하되, 작은 비중이지만 개인 적립 계좌의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다층소득보장체계를 구축했다. 영국은 중산층 이상이 사적연금에 가입함으로써 공적소득비례연금의 적용제외(contracting-out)를 받을 수 있도록 사적연금제도를 강화했다. 부시 행정부가 집권함에 따라 사회보장개혁(social security reform)을 중요한 핵심 정책으로 부각시킨 미국도 사회보장제도의 재정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현행 사회보장세율 12.4% 중에서 4%를 개인 퇴직 계좌로 설정해 가입자 본인의 책임 하에서 적립금을 운영하는 개혁안을 제시했다.넷째, 연기금의 투자 수익을 연금 재원으로 사용함으로써 고령화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 압력을 둔화시키겠다는 취지로 부과 방식 공적연금제도에 적립식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1997년 연금 개혁에서 보험료 인상 스케줄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추가적인 재원으로 투자가 가능한 기금을 적립하는 부분 적립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밖에 선진국들은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인해 야기될 제도 유지비용을 고령 근로자의 고용 증가를 통해 완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고령 근로자가 조기 퇴직하는 것을 방지하고 법정 퇴직 연령 이후에도 계속 근로할 수 있도록 급여산식을 조정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공적연금제도에서의 유인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공적연금의 재정 불안정 해결 및 고령 근로자의 취업 장려 측면에서 부분 근로를 위주로 하는 부분연금제도(partial pension)를 운영하고 있다.선진국이 최근 공적연금 개혁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시사점은 경기 침체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기존의 부과 방식 연금제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국가별로 서둘러 재정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인구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우리나라의 경우 보험료 인상을 포함한 당초 정부안보다 미흡하지만 이번에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으로 인해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기금 고갈 시기를 2047년에서 2060년으로 연기시켰을 뿐 장기적인 재정 안정화 방안은 되지 못하고 연금 사각지대 문제는 이번에 마련한 기초노령연금으로 해소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지난 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계속해서 제기된 조세 방식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의 2층 구조 전환과 같은 체계적 개혁 방안이 계속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OECD 국가 중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될 우리나라는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기초노령연금(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월액의 5%→10%)의 재원 마련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조세 방식 기초연금(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월액의 약 20%)은 제도 성숙 단계에서 막대한 재원 부담을 초래해 후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없다면 조세 방식 기초연금 도입이라는 급진적인 제도 개선보다는 적절한 범위 내에서 부분적 제도 개혁을 전제로, 연금 사각지대 문제는 공공부조제도의 확대를 통해 완화하려는 이번 개정안의 추진 방향이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바람직한 개혁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의 개혁방향은 국민들의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근 선진국 연금개혁에서 주목받는 급여의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통한 간접적인 재정 안정화 방안을 고려하되,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을 인하함으로써 발생되는 급여의 적절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말에 도입된 기업연금 및 기존 개인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여기에 덧붙여 근로 세대의 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제도적 보완 장치와 함께 중·고령 근로자의 근로 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관련 법규정 정비와 정부 지원도 아울러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프랑스와 일본의 연금 개혁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연금보다 재정 상태가 더욱 심각한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의 개혁이 전제돼야만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최소화하고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적립방식·부과방식= 공적연금제도의 재원을 충당하는 방식에는 크게 적립방식(reserve-financed or fully funded system)과 부과방식(pay-as-you-go system)의 두 가지가 있다. 적립방식은 가입자가 낸 사회보장세 혹은 보험료를 적립해 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연금 급여에 충당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반면 부과방식은 현재 근로 세대가 납부한 사회보장세 혹은 보험료를 현재 노인 세대의 급여로 충당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간 형태인 부분적립방식(partially funded system)을 채택하고 있다.명목확정기여제도=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통해 실제 적립금이 쌓여 그 수익률만큼 급여로 지급되는 전통적인 확정기여방식(DC)과 다르게 보험료와 급여의 연계는 존재하지만 적립금이 거의 없는 부과 방식으로 운영됨으로써 제도적으로 결정된 이자율이 아닌 실질 임금 상승률에 의해 매년 연금액이 결정된다. 스웨덴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헝가리 폴란드 등의 체제 전환 국가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김대철·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