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루이 11세 옆에는 운명을 꿰뚫어 보는 점성술사가 있었다. 하루는 그가 왕의 여인이 보름 내에 죽는다는 파격적인 예언을 해 왕의 미움을 샀다. 왕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이 예언을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참모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더니 평소 점성술사를 질투해 온 핵심 참모들이 이번 기회에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은 오랫동안 그를 신임해 오던 점성술사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대화 도중, 왕의 참모가 그를 밀쳐서 죽이기로 한 것이다. 죽음의 운명 앞에 선 점성술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점성술사께서는 일평생 남의 운명을 점쳐 왔는데, 이제 당신의 운명을 점쳐 보시오.” “폐하, 저는 폐하가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죽습니다.” 깜짝 놀란 왕은 참모들에게 점성술사를 죽이지 말도록 지시했다.이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아마도 보통 사람이 이러한 상황을 눈치 챘다면 “폐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억울합니다. 오해이십니다. 살려 주십시오”라는 해명과 구걸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점성술사는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당당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오래 살고 싶은 심리와 감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커뮤니케이션한 것이다. 협상은 메시지가 담긴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에피소드가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먼저 협상에 성공하려면 상대의 핵심을 파고들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내가 남을 사랑하는 것은 남 가운데 있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 경우 점성술사는 자신의 운명을 상대방(루이 11세)의 운명과 함께 걸어서 이야기했고, 단번에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상대가 원하는 것, 또는 상대방이 꼼짝 없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정확히 판단해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런 훈련으로부터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처럼 협상 능력은 오랜 경험의 지혜가 내공이 되어 나오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존재와 요구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학습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협상의 기술>, <협상의 과학>을 쓴 하워드 라이파(Howard Raiffa)는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 계획 수립 능력, 현안에 대한 지식, 불확실성 하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능력, 상대의 존경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능력, 상대의 감정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라고 말했다.경영자는 날마다 협상에 직면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대방의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가운데 문제 해결을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숱한 노력 가운데서도 진리는 항상 평범한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협상의 승패는 상대방의 요구를 먼저 이해하려고 간파하는 데서 출발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고, 깊은 마음의 유대를 맺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협상에 이기고, 상대방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면 그 협상의 성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협상의 성과를 지속 가능하게 할 마음의 유대가 중요하다.경험에만 의존해 학습을 게을리 해 실패하는 협상가들도 종종 있다. 차라리 경험하지 않은 것을 전제로 ‘새로운 상황’을 파악하려고 사전에 준비 학습을 철저하게 함으로써 상황에 정확히 대응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협상가는 전문지식에만 의존하기보다 경험과 전문지식을 결합해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찾을 때 소기의 성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손자병법에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는 구절이 있는 것일 게다.최근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북·미 ‘벼랑 끝 협상’ 등 협상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협상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수없이 많지만, 유능한 협상가는 상대방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협상 현장에서는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 즉 듣는 기술이 뛰어나야 하고 마침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능한 협상가가 갖춰야 할 제일의 자질이 아닐까.여현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국제교류처장1962년생. 연세대 정치학 학사, 석사, 박사. 2003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06년 콜로라도주립대 비즈니스스쿨 초빙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