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쑥한 정장 ‘No’…개성 연출 ‘Yes’

얼마 전 필자가 운영하는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는 전 직원이 발리(Bali)로 해외 워크숍을 다녀왔다. 출국하던 날 공항에서 수속을 밟으면서 이른 바캉스를 떠나는 가족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차 일수 범위 내에서 연중 자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히면서 정해진 바캉스 기간에 너 나 할 것 없이 휴양지로 우르르 몰려가는 분위기는 어느덧 예전 일이 되었나 보다.하지만 여기에 여전히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바로 한 가정의 가장(家長)인, 아저씨들의 바캉스 패션이 그것이다. 휴가 때 입는 아웃도어룩(outdoor look)은 면 티셔츠 한 장에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만 신으면 완성되는 것이라고 목놓아 가르쳤던 필자가 모르는 필수 교과 시간이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모양이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만 익숙해져 있는 비즈니스맨들에게 휴가 복장은 낯설기 그지없다지만 기왕이면 여행 장소의 기후와 특성, 여행 목적을 잘 파악해 경우에 맞게 개성 있는 의상 연출로 멋쟁이라 불려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짙푸른 바다와 어울리는 마린룩가족과 떠나도 좋지만 아무런 목적 없이 홀로 자유롭게 짧은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태껏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왔던 일이라면, 이참에 실행에 옮겨 보는 건 어떨까.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그 여유로움 속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이는 프리 싱커(Free-thinker)가 돼보는 거다. 물론, 여기에 센스 있는 옷 입는 준비는 기본으로 따라와야 하겠다.이글거리는 태양, 보드랍고 따사로운 금빛 모래밭,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 울음소리. 모두가 일상에서 벗어나 탈출을 꿈꾸는 곳으로 바캉스라고 하면 제일 먼저 연상하게 되는 장소가 바다가 아닐까 한다. 요트, 수상스키, 수영 등 해양 스포츠를 즐기거나 한가한 바닷가 리조트를 거닐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차림이 다름 아닌 ‘마린룩(Marine Look)’이다. 오늘날 바캉스 패션의 영원한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마린룩은 1900년대 초반 영국 상류층 남성들이 가장 먼저 시도했고, 이것이 계속 변형되고 발전되면서 도심에서도 즐겨 입을 수 있는 도회적인 패션 스타일로 이르게 됐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롭고 세련된 느낌을 풍기는 마린룩을 표현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마린룩은 네이비와 흰색이 조화를 이루는 보트네크라인 줄무늬 셔츠가 기본이며 종종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교차되거나 흰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교차돼 있는 셔츠도 시중에 나와 있다. 하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푸른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바다의 청량감과 자유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 흰색 바지를 코디하거나, 반대로 상의를 흰색으로 하의를 푸른색으로, 단색으로 맞춰 간결하고 심플하게 표현하면 된다. 벌써부터 패션잡지에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스포츠라인인 제냐 스포츠(Zegna Sport), 버버리프로섬(Burberry Prosum), 빈폴(Bean Pole) 등의 스트라이프 셔츠를 비롯해 다양한 마린룩 아이템이 나오고 있으니 참고해 보자. 영 의상코디에 자신감이 붙지 않는다면 잡지 화보 속에 등장하는 모델과 비슷하게 입는 것도 좋겠다. 다만, 줄무늬 옷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의상 선택 시 자신의 체형을 고려해야 한다. 체격이 크고 뚱뚱한 체형은 색과 줄무늬의 수를 최소화하고 색은 흰색과 짙은 색으로 세로 방향의 얇은 선이 좋다. 가로나 사선 무늬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으나 짙은 색 바탕에 가느다란 줄무늬라면 괜찮다. 반대로 길고 마른 체형이라면 어느 정도 간격과 넓이가 넓은 줄무늬를 택해 빈약함을 감추면 된다.해변가를 거닐 때의 의상은 프린트 셔츠와 프린트 반바지를 함께 입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현란한 꽃무늬 셔츠나 하와이안 셔츠는 너무 화려해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대신 상의는 줄무늬 반소매 셔츠나 민소매를 입고 하의는 화이트 반바지 혹은 무릎 아래까지 살짝 덮는 7부 바지를 입으면 좋다. 이때 다리가 좀 굵은 사람은 슬림한 라인으로 폭이 너무 넓지 않은 바지를 선택하면 좋고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눈을 보호해 줄 보잉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신발은 샌들을 신으면 된다.바다에서 수영할 때 입는 수영복으로는 실루엣이 확연히 드러나는 삼각 팬츠보다는 트렁크식으로 된 것이되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실버와 골드 컬러로 된 샤이닝한 소재의 수영복을 입어 보는 새로운 시도는 어떨는지. 구릿빛으로 그을린 당신의 건강한 피부색과 조화를 이루어 섹시하게 보일 것임에 틀림없으니 말이다.바다로 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온종일 바닷가에서만 지낼 일은 없을 터. 저녁때면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바(bar)에서 음식을 즐기며 여유로움에 젖어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는 가슴이 파인 얇은 베이지 혹은 파스텔톤 브이넥 니트에 흰색의 하프 팬츠나 롤업 팬츠를 입으면 안정돼 보이면서 세련돼 보인다. 혹은 저녁때 기온이 떨어져 추위를 느낄 수 있으니 라운드 티셔츠에 리넨(Linen) 소재로 된 재킷을 입으면 된다. 이때 재킷의 색상은 흰색 혹은 파스텔 색상이 무난하다. 그동안 한국 남성들은 패션에 있어서 보수적 성향이 짙어 밝은 색 옷 입기를 꺼렸던 게 사실이다. 보다 젊고 쿨해 보이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가슴 한쪽에 묻어두지 말고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화이트룩(White Look) 연출을 필두로 변화의 시작을 주변에 알려보자. 흰색으로 된 셔츠와 팬츠는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색상이니 부담 갖지 말자. 여기에 흰색 스니커즈나 흰색 플랫 슈즈를 신고 말끔한 화이트룩으로 연출하면 여유롭고 단정해 보인다.평상복 같은 산뜻한 캠핑룩도시의 번잡함과 상공을 꽉 막은 매연을 피해 삼림욕을 즐기러 조용한 계곡이나 산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험한 산길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능성 등산복을 반드시 챙겨 입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신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히기 때문에 바람을 잘 막아주면서 땀도 잘 배출해 주는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옷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 신소재 ‘아쿠아-에프(Aqua-F)’는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일반 면 소재 옷보다 1.5배 수분을 빨리 건조시켜 상쾌함을 유지해 준다. 이와 비슷한 쿨맥스(Coolmax) 역시 흡습속건 능력이 뛰어나 시원한 느낌을 준다. 또한, 방수·방풍 기능을 갖춘 고어텍스 팩라이트(Goretex Paclight)는 예기치 못한 비와 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준다. 바지의 경우에는 신축성 있는 소재로 된 것을 고르면 된다.기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디자인인데 최근에는 기능성 등산복인지 일상복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디자인과 실루엣이 많이 세련되고 모던해졌다. 컬러는 산에서 눈에 잘 띄도록 원색 컬러의 의류가 기본이나 올해는 칙칙함에서 벗어나 화이트 톤과 파스텔 톤의 밝은 컬러의 옷이 많이 나왔다. 특히,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이 라푸마(Lafuma)를 위해 디자인했다. 이에 따라 소위 아저씨들이 입는 등산 용품 전문 브랜드가 아닌 보다 혁신적이고 세련된 마운틴룩을 연출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역시 밝은 파랑 노랑 연두 등 화사한 색상의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전체적인 실루엣도 활동성을 주기 위해 풍성하게 편한 스타일에서 허리선을 강조하거나 바지통의 폭을 줄여 전체적으로 슬림해 보이도록 하는 디자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스니커즈의 디자인과 색상도 다양한데 프레드 페리(FRED PERRY)의 앞코가 타원형으로 된 스니커즈를 매치하면 발의 실루엣도 슬림해 보이면서 팬츠색과 조화를 이뤄 다리가 길어 보일 것이다.지금까지 한국 남성들이 어려워하는, 그리고 잘 하지 못하는 아웃도어룩인 마린룩, 화이트룩, 캠핑룩, 골프룩의 연출법을 살펴보았다. 이론은 그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 비로소 빛을 본다. 마음속에 행선지를 그려놓았다면 그곳에 맞는 옷을 준비하는 것으로 여행 준비의 시작을 열어보자.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황의건·(주)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커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