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관가가 기자실 통폐합 문제로 시끄럽다.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노동부 등 각 부처에선 벌써부터 “대국민 홍보 활동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불만의 강도는 취재 활동이 사실상 금지된 기자들 못지않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를 핵심으로 한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이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는 바람에 좋은 정책마저 취지나 방향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곤혹스러운데 앞으로는 아예 홍보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기자와 공무원(특히 고위 관료)과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 최선이다.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기자 입장에선 정보를 쥐고 있는 공직자들을 멀리 할 경우 정보에서 소외되고, 너무 가까이 하다간 비판 기사를 싣기가 어려워지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기자를 너무 멀리 하면 언론을 통해 정책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기자를 너무 가까이 하면 시시콜콜한 것, 혹은 극비사항까지 새 나갈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서로간에 최선이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청와대를 등에 업은 국정홍보처가 5월 22일 발표한 기자실 관련 정책은 지금까지 지켜져 온 이 같은 룰을 통째로 흔드는 조치라는 게 기자들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홍보처 발표의 핵심은 각 정부 부처가 독자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브리핑룸을 광화문 청사, 과천 청사, 대전 청사 등 3곳으로 통폐합한다는 것이 골자다. 3곳의 청사엔 4개의 브리핑룸과 1개의 송고실이 만들어진다. 각 언론사별 좌석은 최대 4석까지 배정된다.“앞으로 대국민 홍보하지 말란 말이냐”과천 청사의 경우 이 같은 합동 브리핑 공간을 10개 부처가 활용하게 된다. 재경부 산자부 복지부 노동부 환경부 과기부 건교부 예산처 통계청 공정위 등이다. 각 부처 담당 기자들은 이 같은 브리핑룸 통폐합에 따라 해당 부처 출입이 금지된다. 예를 들어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예산처의 경우 현재는 내부에 브리핑과 송고를 위한 공간을 뒀으나 7월 말까지 이를 없애고 담당 기자들은 과천 청사 합동 브리핑룸을 이용해야 한다. 담당 기자라 하더라도 예산처를 갈 일이 없다.각 부처 공무원들은 기자들과 접촉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만난다 하더라도 만나는 시간과 대화 내용 등등을 자세히 공보관실 등에 보고해야 한다. 사실상 ‘만나지 말라’는 지시인 것이다.예산처 공무원들의 경우 당장 8월부터 예산 편성의 내용과 공기업 및 공공기관의 혁신 등을 설명하려면 과천 청사 합동 브리핑룸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브리핑룸을 사용하려면 다른 부처와 다퉈야 할 상황마저 생기게 된다. 가령 예산처가 주요 사안을 발표하기 위해 화요일 오전 10시에 큰 브리핑룸을 쓰겠다고 하는 와중에 건교부가 부동산 정책 변화에 대한 브리핑 시간을 같은 시간에 하겠다고 나서면 충돌이 불가피해진다.서로 타협해 건교부가 10시에 하고 예산처가 11시에 하기로 했다고 칠 때도 문제는 발생한다. 발표 이후 기자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 진행되는데, 질의가 많을 경우 건교부가 11시를 넘겨서까지 브리핑룸을 차지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예산처는 ‘이제 그만 마쳐라’, 건교부는 ‘기자들 질문이 안 끝났는데 어떻게 마치느냐’는 승강이가 벌어질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위 관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얘기를 사석에서 서슴지 않고 한다. “정권 말기에 공연히 문제만 만든다”는 것이다. 각 부처에서 홍보처에 “명분도 약하고 실리도 별로 없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수차례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책상머리 앉아 있지 말고 현장에 직접 가서 국민들 생활을 낫게 할 수 있는 방법 짜보라고 하더니 실제 탁상행정은 저쪽(청와대와 홍보처)이 훨씬 더 심하다”고 말하는 간부도 있다.일부 간부들은 유력한 대선 후보들에게 현황과 대응책을 설명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 및 이명박 전 서울시장,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및 정동영 전 의장까지도 언론의 견제 기능 약화와 대국민 정책 설명 부실화를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