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수직 성장’…선진국과 닮은 꼴

최근 정치권은 올해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입성을 위한 대선 주자들의 경쟁이 뜨겁다. 그런데 멀리 2050년쯤 되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될까. 아마도 노인들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데 머지않아 노인이 젊은 사람보다 많은 시대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인구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노인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결코 청와대에 갈 수 없지 않을까. 이처럼 고령화는 우리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사회 여러 방면에서 고령화로 인해 성장과 후퇴가 엇갈리겠지만 자산 운용 시장의 경우 그 어느 분야보다 높은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산 운용 시장은 그러한 흐름의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1999년 255조 원까지 팽창했던 국내 펀드 시장은 이후 대우 사태와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건 등을 거치면서 2003년 142조 원까지 급감했다. 하지만 이후 적립식 펀드와 해외 펀드 등의 열풍으로 5월 22일 현재 256조 원까지 성장했다.적립식 펀드 열풍은 시작에 불과최근 펀드 시장의 성장을 2단계로 나눠볼 수 있는 데 첫 번째 변화는 실질금리 마이너스대 진입으로 인한 예금 자산의 이탈과 적립식 펀드 열풍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2004년 예금 금리가 4%대로 떨어져 과거 예금으로 집중됐던 자금이 빠져 나와 적립식 펀드로 이동했다. 두 번째 변화는 높은 세금으로 인한 부동산 탈출과 해외 펀드 확산이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정책 등으로 투자 대상으로서의 부동산에 대한 매력이 반감됐다. 반면 글로벌 증시의 호황에 맞물린 해외 펀드의 고수익 행진에 힘입어 해외 펀드로의 자금 이동이 활발하다.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30~40대 계층이 주도하고 있다. 교육 및 소득 수준이 높은 이들 계층이 노후 준비의 필요성과 동시에 선진 투자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자산 운용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30~40대 계층은 현재 왕성하게 자산을 형성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2006년 5월 말 현재)에 따르면 총자산에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대가 31.2%, 40대가 22.3%로 전체 평균 20.4%보다 높게 나왔다. 앞으로도 이들 계층이 퇴직연금 도입 등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펀드 투자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올해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이 본격화되고 있는 일본 역시 자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한 펀드 투자가 빠르게 증가해 왔다. 이미 풍부한 금융 실물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까지 더해지면 자산 운용 시장의 성장은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일본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베이비붐 세대가 2004년 현재 129조9000만 엔의 개인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것이 2009년에는 174조 엔으로 확대되고 증가한 45조 엔 중 총 10조 엔 정도가 자산 운용 시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수익성 높은 주식 펀드나 해외 펀드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미국 역시 낮은 금리와 높은 주가의 환경 하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금융자산 수요가 확대됐으며 특히 뮤추얼 펀드의 대중화를 배경으로 1980년대 후반 이후 주식시장의 호황이 실현된 적이 있다.우리나라 역시 자산 운용 시장의 성장은 더욱 가파를 전망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06 자산관리 보고서’에서 한국 자산 운용 시장은 2010년까지 연평균 8.2%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역시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 펀드 시장이 연 8% 이상 성장했다.글로벌 자산 운용 회사인 피델리티 역시 국내 펀드 시장 규모가 앞으로 5년 뒤 지금보다 2배인 500조 원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JP모건, 골드만삭스, 라자드, ING 등 세계적인 금융 회사들이 앞 다퉈 국내 자산 운용 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하려고 하는 것도 다 이렇게 높은 성장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그렇다면 고령화 시대 펀드 투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고령화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 재무설계사(FP)는 고객이 찾아오면 우선 80cm짜리 줄자를 꺼낸다고 한다. 그는 찾아오는 고객에게 묻는다. “언제 은퇴하고 싶습니까.” 고객은 “65세에 은퇴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FP는 65cm 위쪽을 잘라낸다. 그리곤 또다시 묻는다.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예 마흔 살 입니다.” FP는 40cm 아래를 자른다. 그리고 나머지 40cm에서 65cm 사이의 25cm 부분을 들어올린다. FP는 바닥에 떨어진 줄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저것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부터 65세까지 정말 진지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펀드를 통해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이 펀드 저 펀드 옮겨 다니는 기존 투자 방식을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 대신 보다 장기적이고 엄밀한 계획을 세운 후 펀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계획 없이 투자하다 보면 단기적인 시장 상황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고 결국 충분한 노후 자금 준비는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우선 구체적인 투자 목표를 세워야 한다. 소득이 없는 은퇴 이후 생활을 위해 정년까지 얼마의 자금을 마련해야 할지 수치화된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런 다음 지금부터 목표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체 자산 중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에 대해 적절한 투자 비중을 결정한다.섣부른 시장 예측보다 치밀한 준비 필요이러한 비중을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뿐더러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FP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그런 다음 각 자산에 해당하는 펀드 상품을 선택한다.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데 적합한 펀드 상품은 10년 이상 장기간 운용되는 상품이어야 한다. 연간 단위로 운용하거나 2~3년 단위로 운용하는 상품은 연금 상품으로 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또 주식 펀드와 같이 기대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안정적인 채권 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최소한의 노후 자금이라도 이를 마련하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따라서 보다 기대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해야 노후 대비가 가능하다. 또 노후 준비를 위한 투자는 장기로 지속되기 때문에 변동성이 높은 주식 펀드라도 오랜 투자 기간이 투자 위험을 충분히 상쇄한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면 연금 지급이 가능한 펀드 상품이 좋다. 은퇴한 후 노후 생활을 할 때 생활비의 70~80%가 이미 투자하고 있는 금융 상품에서 지급되는 연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가장 안정적인 은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은퇴 상품은 매달 연금으로 지급되는 것이 좋다.나이가 들면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와 같이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자동적으로 연금이 매달 지급되는 상품이라야 안심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은퇴 상품으로는 개인연금, 기업연금, 국민연금과 같은 연금 상품이 있다. 이런 상품은 기본적으로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하지만 세제 혜택상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배분할 수 있는 한도가 매우 적다는 단점이 있다. 대부분이 이 세 가지 연금 상품으로는 노후 자금을 충분하게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다 복잡한 펀드 상품을 이용한다. 이때 주로 사용하는 상품이 변액연금보험과 적립식 펀드다.변액연금보험은 보험의 성격이 10%도 되지 않고 오히려 펀드의 성격을 90% 이상 갖고 있기 때문에 전체 상품의 성격은 보험보다 펀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상품은 반드시 10년 이상 가입해야 하며 가입 전 주식으로 운용하는지 채권으로 운용하는지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끝으로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는 펀드 투자는 시장을 예측해 투자하려는 기존의 투자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투자관리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인 찰스 엘리스는 “시장 예측을 활용한 투자 관리인의 성공 여부에 대한 증거는 인상적이다. 손실이 압도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시장을 예측해서 투자하려는 전략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유머러스하게 지적한 말이다. 시장을 함부로 예측하기보다는 엄밀한 계획을 통해 장기적으로 꾸준히 투자해야만 할 것이다.민주영·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수석연구원 watch@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