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 잠재성장률 0%대 진입

인구 변화는 경제 전반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 수요 공급의 변화가 경제 구조를 바꾸고 각종 지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연구자들은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가 노동의 양과 질을 감소시키고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킨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 활력이 저하되고, 생산적 자본 축적이 낮아지면서 재정 건전성이 약화되며,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재정 불안 등이 실제 생활 영역에서도 악영향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더구나 그 현실화 시기가 불과 10년이 채 남지 않은 ‘2015년 이후일 것’이란 게 정설이다.그렇다고 인구 변화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출산율을 높인다 하더라도 인구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새로운 과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시도별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20년에 15.6%, 2025년에는 19.9%를 넘어설 전망이다. 영락없는 고령 사회가 바로 10여 년 앞에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게다가 1기 베이비 부머(1957~63년생)와 2기 베이비 부머(1968~74년생)의 지위 변화가 곧 시작된다. 이들이 곧 40~60대에 포진하게 되면서 자산시장은 물론 주요 경제 지표까지 바꿔놓을 움직임이다. 1기 세대가 은퇴를 맞이하는 한편 2기 세대는 가장 구매력 높은 40~50대 진입을 시작했다. 홍춘욱 키움증권 리서치팀장은 “인구 변화는 사람의 라이프사이클과 비슷해서 캐시플로가 20~30대 적자, 40~50대 축적, 60대 이후 적자의 순환을 한다”면서 “현재의 인구 추이를 놓고 보면 잠재성장률 하락을 비롯한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잠재성장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 ‘인구 구조 고령화의 경제 사회적 파급 효과와 대응 과제’ 보고서를 내면서 2003~50년의 잠재성장률을 전망했다. 결과는 2020년대 2.91%→ 2030년대 1.60%→ 2040년대 0.74%로 지속적인 둔화가 예상된다는 것이다(합계 출산율 1.19 가정). 2010년까지 잠재성장률 예상치가 4.56%인 것을 감안하면 불과 30년 만에 0%대 시대가 오는 셈이다.노동생산성=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에 따른 영향 가운데 노동의 양적 질적 하락은 가장 첫 손꼽히는 문제다. 이는 국가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민감한 이슈이기도 하다.지난 30년간 노동생산성은 2.0~4.0%의 증가율을 보였다. 하지만 KDI가 학력별 근로자 능력이 동일하게 유지될 경우와 가변적일 경우를 나눠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두 경우 모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절대 수준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육의 양적 팽창에 따라 고학력자 수는 증가해도 질은 저하되는 추세여서 노동생산성 증가세는 빠르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됐다. 더구나 2015년 이후는 노동생산성이 거의 정체 상태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그래프 Ⅰ).15~64세 생산 활동 인구의 감소도 피할 수 없다. 생산 활동 인구의 비중은 사회의 활력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로, 생산 활동 인구의 1% 증가는 경제성장률 0.8% 상승으로 연결된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생산 활동 인구는 연 3%씩 증가하며 9%대 고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증가율이 감소세로 돌아서 이미 0%대에 진입한 상태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2015년에 73.15%로 정점을 찍고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다(그래프 Ⅱ). 이는 수요 감소, 공급 과잉으로 이어져 거품 붕괴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이 경우 국민소득 3만 달러 진입은 ‘꿈’으로 남을 수도 있다. 노동의 양적 질적 위축은 성장잠재력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노동 공급, 특히 고학력 여성의 취업 비중 확대가 절실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산업 구조= 인구 구조 변화는 산업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각 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연령별 수요 체계 변화를 예측해야만 한다. 인구 구조 변화를 모르고선 산업의 미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KDI는 가계 소비 지출의 항목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주거비를 제외하고 소비 지출 항목을 10개로 나눠 실증 분석했을 때 음식료품 피복·신발 가구·집기·가사용품 등 제조업 제품에 대한 지출 구성비는 감소 추세다. 반면 교육 교통 통신 등 서비스에 대한 지출 구성비는 증가세로 나타났다.이를 바탕으로 2020년 가계 소비지출을 전망하면 교육(2005년 11.8%→ 2020년 13.9%)에 대한 지출이 가장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음식료품(2005년 26.0%→ 2020년 21.1%)은 4.8%포인트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보건·의료와 교양·오락 교통 등의 소비 지출이 증가하고 광열·수도 가구·집기 피복·의류 통신 비중은 감소세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됐다.물가= 물가 역시 인구 구조 변화에 민감하다. 올 들어 1월부터 4월까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미국과 일본, 중국은 모두 시장 진입 세대(15~34세) 비중 변화에 따라 강력한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 주기를 경험한 바 있다. 또 쌍봉 세대(40~59세) 비중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이 현상이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될 것인지가 관심 대상이다.흔히 시장 진입 세대의 비중 증가는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 이 세대의 소비 성향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946~55년 사이에 태어난 4500만 명의 베이비 부머가 1960년대에 사회에 진출하자 내구재 수요 증가→ 생산 여력 부족→ 물가 상승의 결과를 가져왔다.반대로 일본은 최근 5년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8%에 그치는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이 역시 시장 진입 세대 비중이 줄어든 것과 궤를 같이했다.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시장 진입 세대 비중은 지난 1990년 40%를 정점으로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최근에는 연간 마이너스 2%의 감소세를 기록하는 등 경제 전반의 신규 수요가 점차 감소하는 중이다. 더구나 2036년까지 매년 0.5%포인트 이상 하락해 17%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그래프 Ⅲ). 이는 경제의 성장 활력과 물가 압력을 함께 약화시킬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성장 언제까지=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 시기가 향후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를 향한 질주가 향후 5~10년간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춘욱 팀장도 “2015년까지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재테크의 경우 이 기간이 절정의 시기라는 이야기다.또 인구 구조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앞으로의 경제 정책은 연 4~5%의 성장을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불어 노동 공급 촉진을 위해 여성 인력 활용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김영옥 한국여성개발원 인적자원연구실장은 최근 열린 한국선진화포럼 토론회에서 “주요 선진국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가는 시기에 여성 경제 활동 참여율이 획기적으로 증가했지만 한국은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54.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