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지도 다시 그릴 때

모 씨(38)는 요즘 집을 사야 할지 고민이다. 지난해 아파트 값이 폭등할 때는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올 들어 급등세가 한풀 꺾이자 이참에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긴 것이다. 대출을 받으면 괜찮은 지역의 20평형대 소형 아파트는 큰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2019년이면 인구 감소가 시작돼 주택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그를 불안하게 한다. 인구가 줄면 당연히 집을 장만하려는 수요가 적어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설명은 아직은 가정에 불과하지만, 만의 하나 그게 맞는다면 아파트로 돈을 벌겠다는 꿈은 접어야 하는 것 아닐까.주식 투자를 하는 이모 씨(40)도 밤잠을 설치기는 마찬가지다. 2005년 말 주식시장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 주식 투자에 나섰는데, 2006년 시장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으면서 1년 내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올 초부터 주가에 다시 불이 붙으면서 손실을 회복했고, 주식 투자를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주식 시장 10년 호황론’에 귀가 솔깃해진 것이다. 향후 자산시장의 황금 계층인 40~50대 인구가 2015년까지 꾸준히 증가해 정점을 기록한 후 감소세로 돌아서기 때문에 향후 10년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10년 호황’,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최근 인구 변화가 자산시장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집값과 주가를 인구 구조의 변화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기본 골격은 거의 유사하다. 1955~63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주택과 주식을 사들이는 ‘큰손’인 40~50대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2015년까지의 대호황과 뒤이은 폭락이다. 여기에 2015년까지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메시지가 덧붙여진다. 논리가 ‘심플’한 만큼 엄청난 마력을 발휘한다.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베이비붐 세대’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는 6·25 전쟁이 끝난 후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여 안정을 찾기 시작한 55년부터 63년까지 출생한 816만 명의 거대 인구 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의 성장 단계마다 한국의 사회·경제적 지형도는 큰 변화를 경험했다.이들이 엄청난 파워를 휘두르는 것은 전무후무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유아 생존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이들은 대부분 살아남았고,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수명을 누리게 됐다. 또한 출생률 급락으로 이들에 견줄만한 새로운 인구 집단도 등장하지 못했다. 물론 2차 베이비붐 세대(68~74년생)와 에코 베이비붐 세대(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자녀들, 79~82년생)가 있지만 역부족이다.이러한 베이비붐 세대가 향후 자산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는 주장의 논리적 바탕에는 ‘생애주기설’이 놓여 있다. 이는 소득, 자산, 씀씀이가 생애 각 단계마다 일정한 패턴으로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미국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렇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20세에 노동 시장에 진입하고, 3년 후인 23세에 자동차 등 다양한 내구재를 사들여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26세에 결혼으로 지출이 증가하고, 31세가 되면 주택을 구입한다. 이때부터 부채가 빠른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한다. 42세에 이르면 일생 중 가장 큰 집에 살게 되며 부채도 정점을 기록한다. 소비 지출은 평균 48세, 보유 자산은 64세에 최고 수준에 다다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하지만 큰 흐름은 마찬가지다.베이비붐 세대는 올해 44~52세에 들어섰다. 소비와 투자가 정점을 이루는 시기다. 문제는 2015년 이들의 은퇴가 몰고 올 파장이다. 2015년이면 그리 먼 일만도 아니다. 불과 8년 뒤 벌어질 사태다. 더구나 이는 은퇴 연령을 60세로 봤을 때 이야기다. 일반 기업의 정년인 55세를 적용하면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는 3년 뒤 닥칠 ‘발등의 불’이 된다.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 전 향후 몇 년 동안 자산 증식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점은 비교적 분명하다. 전례 없이 오랜 기간의 은퇴기를 견뎌내야 하는 데다 그동안 쌓아둔 자산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창 재산을 불려야 할 시기에 터진 1997년 외환위기는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들은 충분한 준비 없이 고령화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첫 세대다. 국민연금도 큰 힘이 되지 못한다.은퇴한 베이비 부머들은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내다 팔까. 현재 사는 아파트를 팔고 교외의 아담한 전원주택으로 옮기게 될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섣부른 예측보다는 큰 흐름을 읽는 것이다. 대세를 거슬러 오르는 것은 힘겹지만 흐름을 읽고 거기에 올라타면 훨씬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인구 변화는 아파트 값과 주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채권, 창업, 미술품 투자 등 거의 모든 것이 인구 변화의 영향권 안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