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해콘덴서 케이스 업체 일궈

지난 2004년 2월, 일본 혼슈 북동부 이와테현에 있는 니치콘의 생산 라인에서 한 시험이 실시되고 있었다. 이와테현은 목축 낙농업 어업이 발달한 지역. 주위에 고산지대가 많아 스키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니치콘은 이곳에 세계 최대의 칩 콘덴서 생산 라인을 갖추고 있다.이 회사는 콘덴서 케이스 두 종류의 물리적인 성질을 시험했다. 하나는 알루미늄으로 된 케이스에 나일론을 입힌 제품이고 또 하나는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를 입힌 제품이었다. 섭씨 영상 150도에서 2000시간 동안 가열하자 나일론을 입힌 제품은 누렇게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반면 PET를 입힌 제품은 변색되지 않았다. 변색될 경우에는 수분이 증발되며 콘덴서가 제 성능을 발휘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나일론을 입힌 것은 일본 업체 제품이고 PET를 입힌 것은 한국의 중소기업인 디엔텍(대표 김용래)의 제품이었다. 결국 니치콘은 디엔텍의 케이스가 우수하다고 판단해 이때부터 이 회사 제품을 쓰기로 결정했다.경기도 이천에 본사를 둔 디엔텍은 콘덴서 케이스를 만드는 업체다. 콘덴서는 콩알보다 작은 것에서부터 팔뚝만한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원통형 부품이다. 전류를 일정하게 회로로 보내주는 댐 역할을 한다. 과전류를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할 경우엔 스스로 터져서 다른 부품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도 한다. 일종의 퓨즈 역할도 하는 셈이다. 이런 기능 때문에 콘덴서는 저항 트랜스포머와 함께 3대 핵심 전자 부품으로 불린다.TV 냉장고 휴대폰 등 가전제품과 정보통신기기는 물론 자동차용 엔진 컨트롤 시스템 내비게이션 에어백 등 전장품 등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32인치짜리 아날로그 TV에는 보통 60개의 콘덴서가, 42인치 PDP 제품에는 약 250개의 콘덴서가 들어간다. 디지털화할수록 콘덴서 수요는 더욱 큰 폭으로 증가하는 셈이다.디엔텍의 지난해 매출액 166억 원(영업이익 15억 원) 가운데 수출이 140억 원을 차지했는데 수출품의 대부분이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다. 이들 케이스는 세계 3대 콘덴서 메이커인 일본의 니치콘 케미콘 루비콘을 비롯해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로 수출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쓰시타가 주력 수출 대상 업체였으나 마쓰시타가 점차 콘덴서 생산을 줄이는 바람에 수출 대상 업체를 니치콘 등으로 다변화한 것이다. 콘덴서 케이스 중 아날로그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일반 콘덴서용은 전 세계 시장의 10~15%를 차지하고 있고 디지털 제품에 사용되는 칩전해콘덴서는 약 30%를 장악하고 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 업체인 셈이다.콘덴서 케이스는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다. 아주 까다로운 물성을 갖춰야 한다. 우선 케이스 내부와 외부에 한 점의 흠도 없어야 한다. 케이스는 평평한 알루미늄 판에 일정한 압력을 가해 원통형으로 늘려 가공하는데 한쪽이 찢어지거나 흠이 생기면 안 된다. 안에 담긴 화학약품이 새어 나와 콘덴서 전체가 불량품이 되기 때문이다.또 하나는 바닥에 과전류가 흘렀을 경우 자동으로 파열되는 안정 기능을 담당하는 조각을 하게 되는데 이 조각의 두께 오차가 10미크론에 불과하다. 그만큼 정밀해야 한다.초정밀 가공·원가절감 기술이 원동력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물성이 우수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알루미늄의 국제 시세는 정해져 있다. 따라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정 기술을 발휘해 가공하느냐가 원가를 낮추는 지름길이 된다. 디엔텍은 기존 생산방식에 비해 원가를 30%가량 줄일 수 있는 독자 기술을 갖추고 있다.대지 4900평, 건평 1700평인 이천 공장(종업원 81명)과 대지 4600평, 건평 1500평의 중국 칭다오 공장(종업원 194명)을 운영하는 디엔텍이 세계 최대 콘덴서 케이스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김용래 대표(50)의 끊임없는 기술 개발 덕분이다.디엔텍은 김 대표가 28세 때인 지난 1985년 창업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대림산업에 잠시 몸담았다가 자기 사업의 꿈을 실현했다. 제품 개발이 취미인 그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선 밤을 새워가며 연구하는 기질을 갖고 있었다. 자기가 개발한 제품은 직접 도면을 그리고 기계를 설계해 만들기도 했다. 일을 한다기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 즐기는 스타일이다.경기도 광주시 오포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 공장 건설 공사에 관여하던 중 380볼트에 감전돼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건설 중이던 공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머리를 다쳐 생명이 위험했던 일도 있었다. 자신이 직접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 참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빚어진 일들이다.오포 공장이 경안천 범람으로 물난리를 겪자 이천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천 공장을 지을 땐 이런 일화도 있었다. 직접 설계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공장의 자동화 기계 배치와 작동 모습을 영화를 감상하듯 선명하게 본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뒤 그대로 자동화 설비 설계를 했다. 너무 골몰하다보니 작업 내용이 꿈에서도 나타난 것이다.김 대표는 밤낮없이 어떻게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10여 건의 발명특허를 획득했다. 그중 하나가 알루미늄 판을 통째로 가공해 케이스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일단 원형으로 오려낸 뒤 각각의 원판에 압력을 가해 만드는 공정이다.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 자칫하면 가공 과정에서 모서리가 얇아져 불량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는 수십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균일한 품질을 만들 수 있는 기계를 고안했고 이를 통해 원가를 30%가량 낮추면서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해냈다.콘덴서 케이스에 PET를 입혀 생산하는 기술도 연구했다. PET는 플라스틱 제품 중 인체에 가장 부작용이 적은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알루미늄에 부착하면 콘덴서의 사양에 대한 인쇄가 쉽고 알루미늄의 부식을 막아준다.이런 기술을 응용해 김 대표는 에너지 확산 매트(Energy Expansion Mat)와 럭스타일(Luxtile)이라는 신제품도 개발했다. 에너지 확산 매트는 콘덴서 케이스 생산을 위해 오려내고 남은 알루미늄 판을 활용한 온돌용 열전도 제품이다. 김 대표는 “온돌용 온수 파이프 위에 에너지 확산 매트를 깔고 시멘트 모르타르를 시공할 경우 전자파 차단 효과가 크고 열전도가 빠르다”며 “이에 따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크랙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모르타르에 비해 열전도율이 140배에 달해 난방관 주위에 모여 있는 열을 방바닥 주위에 신속하게 전달해 준다”고 덧붙인다.럭스타일은 알루미늄 판 위에 컬러 투명 PET를 입힌 타일로 파스텔 컬러의 광택이 있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인테리어 자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마치 우주공간이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장점 최대한 살린 1등기업이 꿈이런 장점 때문에 서울 남산의 N서울타워와 을지로의 세가프레도 커피숍, 양재역의 피자헛 등이 이를 인테리어 자재로 사용했다. 김 대표는 “경기도 일산의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유명 방송인 부부도 알루미늄 타일에 매료돼 홈바의 인테리어를 이 제품으로 시공했다”고 설명했다.김 대표의 비전은 현재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등을 하는 것이다. 전자부품(전해 및 고체 콘덴서 케이스), 에너지 및 웰빙(에너지 확산 매트 및 럭스타일), 그리고 공장자동화 및 물류 이송의 3대축으로 기업을 키우는 것이다. 이 가운데 공장자동화 및 물류는 그동안 디엔텍이 개발한 각종 공장자동화 관련 노하우를 접목한 미래 사업이다.그는 이 같은 회사의 성장을 위해 누구보다 종업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지난해 이익의 3분의 1을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중소기업의 경우 월급이 대기업에 비해 적지만 훨씬 다양한 일을 배울 수 있어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약력: 1957년생. 76년 대광고 졸업. 83년 연세대 건축공학과 졸업 및 대림산업 입사. 85년 동영전자 창업. 2000년 디엔텍 대표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