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인재 뽑자… 가상게임으로 ‘쏙쏙’

지난 4월 17일 저녁 프랑스 파리의 명소인 에펠탑 내 구스타프 리셉션 센터. 앵발리드(군사병원)와 노트르담 대성당이 석양에 물든 바깥 풍경과 달리 내부에는 다소 긴장감이 흐른다. “MBA 부문 우승팀은 마놀로프, 두트리옥스, 보렐로 구성된 스위스 IMD스쿨의 하이드록사이드(Hydroxide)입니다”라는 발표가 나오자 객석에서 몇 명이 부둥켜안은 채 기뻐했다. 우렁찬 축하의 박수가 이어졌다. 올림픽대회 개최지 선정 장면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 팀은 불가리아 스위스 영국 출신으로 구성된 ‘연합 스위스팀’이다”는 우승 소감의 일부에서 ‘다양성’을 중시하는 로레알의 기업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은 독창적인 인재 채용법을 갖춘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중 하나가 온라인 경영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로레알 e-스트래트 챌린지’. 이 대회는 대학생들에게 가상 경영 게임인 동시에 실전 경험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실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는 리크루트의 장이기도 하다.올해로 7회째를 맞는 이 대회에 128개국, 1만3180팀, 4만4000여 명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이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11월 말까지 인터넷(www.e-strat.loreal.com) 등을 통해 등록한 참가자들은 1라운드(예선) 후 대학교팀(3학년 이상 재학생) 1200곳과 MBA팀 300곳만 본선에 진출했다. 2∼6라운드를 거쳐 경영 성과에 따른 주가지수(SPI)와 사업 전략 기획서를 바탕으로 결승전 진출팀이 가려졌다. 세계 8개 지역에서 학부와 MBA팀이 각 1팀씩 16팀이 선발된 것. 이들은 이날 열린 결승전에서 로레알 경영진에게 자신의 회사를 매각하기 위한 경영 비전을 제시했다.참가자들은 가상공간에서 ‘프리마’라는 화장품 회사의 경영을 책임진다. 4개의 라이벌 회사와 경쟁한다. 시장에 새 브랜드를 출시, 경쟁사 제품과 고객 확보전을 펼친다. 이 같은 활동은 주가지수(SPI)에 그대로 반영된다. 실제로 하나의 브랜드 런칭에도 고려해야 할 변수가 적지 않다. 누가 고객층인지 알아야 한다. 가격도 적정선에서 책정해야 한다. 생산 시설 확보, 광고 및 마케팅 비용 책정도 고민이다. 실무자가 아닌 이상 이 같은 결정에는 시행착오가 따르지만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에서 팀워크가 생기고 경영 노하우가 체득된다. 이들의 경영 데이터는 고스란히 회사의 자산으로 남는다.참가자들은 ‘경영 올림피아드’로 자리 잡은 이 대회를 위해 철저한 준비에 나선다. 바쁜 주중 일과 때문에 주로 일요일에 모여 이 대회에 대비한다고 해서 유래된 ‘로레알 이브닝’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회사의 실적 향상과 경영 업그레이드를 위한 독창적인 전략도 대거 쏟아진다. MBA 우승팀인 하이드록사이드는 최근 강조되는 친환경 테마에 맞춰 ‘자연’을 주제로 한 제품(Green &Natural) 생산 확대를 주장했다. 또 다른 팀은 브랜드 다양성 확충 방안으로 인수·합병(M&A)전략을 제시했다.다양성·이동성 특히 강조이 대회는 로레알의 인재상인 ‘FACE’를 갖춘 인물을 발굴하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FACE는 ‘Flexiblity(사고의 유연성)’, ‘Autonomy(주체적 기업가 정신)’, ‘Communication(의사 표현력)’, ‘Energy(열정)’의 첫 글자에서 따온 합성어다. 참가자들은 3인 1조가 돼 열린 마음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되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게 바로 로레알이 찾는 인재상과 맞아떨어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채용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 참가자 중 100여 명이 ‘로레알 가족’이 됐다.로레알은 e-스트래트 챌린지 외에도 ‘브랜드 스톰’과 ‘인지니어스 콘테스트’라는 인재 개발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브랜드스톰은 학생들이 약 2개월간 실제로 브랜드 매니저가 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마케팅 전략, 광고 전략 등을 기획해 보는 국제 마케팅 대회다. 같은 학교 학생 3명이 한 팀이 돼 마케팅 및 인사부 실무자들과 함께 일한다.무엇보다 제품 개발과 광고 제작 등을 디자인 회사와 함께 진행한다는 게 특징이다. ‘마케팅 월드컵’으로 불리는 이 대회는 지난 1993년 이후 14회째를 맞으며 2만3000여 명이 거쳐 갔다.올해 대회에서는 32개국 4400여 명(MBA 176팀)이 참여했다. 보디케어 시장 상황과 타깃 소비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랑콤의 새로운 보디케어라인을 개발, 소비자를 파고들 수 있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안했다.화장품의 원재료 확보부터 생산, 포장, 유통 등 공급망 관리(SCM) 전반에 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인지니어스 테스트’도 관심이다. 제품의 생산 및 기술에 대한 핵심 인재 발굴을 주목적으로 지난 2005년 새롭게 시작됐다.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인 만큼 대규모 생산시설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로레알은 매년 유럽 기업 중에서 ‘일하고 싶은’ 첫째 기업에 이름을 올린다. 직원 수가 무려 5만 명에 달하는 데다 전 세계 130여 개국에 진출해 있는 이 공룡 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대학생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독특한 기업 문화 때문이다. 바로 ‘다양성(Diversity)’과 ‘이동성(Mobility)’을 강조하는 것. 로레알 직원들은 랑콤 로레알파리 비오템 메이블린 슈에무라 등 20여 개 브랜드 제품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과 매일 만난다. 이 때문에 로레알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성별 연령 인종 학력에 상관없이 각자의 개성이 인정된다. 다양한 고객만큼 직원의 다양성도 인정된다는 얘기다. 또 부서 이동 및 해외 파견을 통해 다양한 경력 개발의 기회가 주어진다. 제프 스킹슬리 인사 담당 부회장은 “로레알은 수백 대의 배와 선원, 선장으로 이뤄진 거함과 같다”며 “이 거함이 순항하는 것은 세계 최고의 인재를 발굴하는 노하우와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는 회사 문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INTERVIEW 장 클로드 르 그랑드 HR 총괄이사‘졸업장보다 오픈마인드 더 중요’“기업의 최대 자산은 인재입니다. 인재가 바로 미래 성장 동력이죠.”장 클로드 르 그랑드 로레알 국제 인적자원(HR) 총괄이사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가 바로 ‘로레알 e-스트래트 챌린지’를 만든 주인공이기 때문이다.다국적 기업인 로레알은 일찍부터 세계 최고의 인재 선발을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여겼다. 이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It’s People)”이라는 로레알의 창업주인 유젠 슈엘러 회장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르 그랑드 이사는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 중 ‘우수 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e-스트래트 챌린지’를 고안했다. 2개월간 실시되는 대회 자체가 일종의 ‘현장 평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초창기 이 대회를 열었을 때 대부분의 기업들이 비웃었으나 지금은 앞 다퉈 이 같은 대회를 열고 있다”며 로레알의 선구적인 인재 채용법을 강조했다.그는 로레알이 찾는 인재상에 대해 열정과 주인의식을 지닌 도전적인 젊은이라고 말했다. 또 디플로마(대학졸업장)보다는 오픈마인드(open-mind)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에는 내가 다니는 직장이 ‘최고(best)’면 그 회사에 만족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회사가 최고 직장이죠. 그런 의미에서 로레알은 충분한 여건을 갖췄다고 봅니다. 회사와 함께 커갈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인재는 언제든 환영합니다.”로레알은 잠재 직원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인턴십도 십분 활용한다. 20년간 1만 명 이상을 면접해 온 르 그랑드 이사는 “몇 시간 만의 인터뷰로 한 사람을 충분히 알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e-스트래트 챌린지 같은 실전에 버금가는 모의 대회와 인턴십을 통해 직원을 심층적으로 파악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들이 회사의 업무와 비전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그는 향후 채용 전략에 대해 시장 상황에 맞게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들이 원하는 회사 모습이 바뀔 수도 있고 노동 시장의 수급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기존의 프로그램은 변화 속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파리=김진수·한국경제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