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5월 2일 “은행권의 최고 액면 금액인 1만 원은 소득, 물가 등 현 경제 상황에 비해 너무 낮아 경제적 비용과 국민 불편이 매우 크다”면서 고액권 발행 계획을 밝혔다. 1만 원권이 발행된 1973년 이후 물가는 12배 이상, 국민소득은 150배 이상 상승하는 등 경제 사정이 크게 변했다. 하지만 은행권의 최고 액면금액 1만 원권은 34년 동안 유지돼 왔다.그 결과 화폐 대신 자기앞수표가 널리 통용돼 자기앞수표의 발행·지급·정보 교환, 전산 처리 및 보관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아울러 한국은행은 국민들도 많은 장수의 화폐를 휴대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최고액권인 10만 원권과 함께 우리나라 화폐 체계에 맞게 5만 원권 발행 작업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해 2009년 상반기 중 동시에 발행, 유통할 계획이다.고액권이 발행되면 10만 원 자기앞수표의 제조 및 취급 비용이 연간 약 2800억 원 절감될 전망이다. 아울러 1만 원권 수요의 상당 부분이 고액권 수요로 이동해 화폐 제조 및 운송·보관 등에 따른 관리 비용이 연간 400억 원가량 절감될 것으로 한국은행은 예상했다.고액권 앞면에 들어갈 초상 인물은 국민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 가운데 선정하고, 뒷면에는 초상 인물과 관련 있는 보조 소재를 배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 부총재를 의장으로 하는 ‘화폐도안 자문위원회’를 구성, 운영할 예정이다. 우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2~3명의 초상 인물 후보군을 압축한 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표본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최종 모델을 선정할 계획이다.고액권은 초상 인물 및 보조 소재 선정, 정부 승인,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쳐 제조에 들어간다. 한국은행은 오는 9~10월 초상 인물 선정과 발행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모두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고액권 발행과 관련해 정부와 사전협의를 했다”면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지만 초상 인물 선정 과정에서 ‘여성이 포함돼야 한다’는 여론이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은행은 2004년 화폐 초상과 관련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당시 설문 조사에서는 세종대왕과 함께 다산 정약용, 신사임당, 장영실, 김구 등이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초상 인물 신사임당 등 거론고액권에 등장할 여성 인물로는 신사임당과 유관순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신사임당은 새 5000원권 발행 때 아들인 율곡 이이 대신 유력하게 검토된 적이 있다.한국은행은 지난해 초와 올해 초 새 5000원권과 1만 원권, 1000원권을 발행하면서 고액권 발행까지 염두에 두고 화폐를 도안했다. 현재 유통 중인 새 지폐의 크기는 세로가 68mm로 고정돼 있다. 가로 길이는 6mm씩 권종 간 차이를 두도록 돼 있다.현재 새 1만 원권 지폐(가로 148×세로 68mm)를 기준으로 새 1000원권은 가로가 136mm, 새 5000원권은 142mm다. 이런 이유로 도입 예정인 5만 원권은 가로 154mm, 10만 원권은 가로 160mm가 될 수 있다.바탕색은 5만 원권이 따뜻한 색 계열로, 10만 원권은 차가운 색 계열로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새 1000원권은 청색, 새 5000원권은 적황색, 새 1만 원권은 녹색 등으로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이 교차하고 있어서다.은행의 ATM(현금자동입출금기) 등 자동화기기에서 5만 원권과 10만 원권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ATM을 통해 10만 원 자기앞수표를 사용할 수 있는 만큼 고액권이 발행되더라도 당연히 기기 사용을 열어줘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 고액권의 경우 입출금 과정에서 각종 금융 사고와 범죄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유통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이에 대해 이 총재는 “고액권의 자동화기기 이용 문제는 화폐 취급기기를 운영하는 은행이나 다른 민간 부문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한은도 은행권과 함께 신중히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한편 논란이 돼 오던 화폐 액면 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은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 총재는 “고액권 발행과 리디노미네이션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가까운 장래에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