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단 하루 허락된 휴가를 나온 무기수 아버지(<아들>),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이 소원인 아버지(<날아라 허동구>),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조폭 아버지(<우아한 세계>), 딸 사랑에 눈을 뜨는 양아치 아버지(<눈부신 날에>)….현재 전국 영화관에 걸려 있는 한국 영화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버지’를 부르짖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영화계가 아버지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모정’만큼 감정을 자극하면서도 신선한 소재라는 점이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또 다른 뉴스의 세계에서는 자식을 위해 직접 보복에 나섰다는 재벌 회장의 이야기가 연일 톱을 장식하고 있다. 그 부정을 빗나갔다고 보는 쪽과, 이해할 만하다는 쪽이 논쟁을 벌일 만큼 관심이 집중돼 있다.이 모든 일이 가정의 달 5월에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평범한 가장들은 영화와 뉴스를 보면서 ‘가정을 꾸려 행복을 키우면서 가족을 발전시키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로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일들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번 5월은 ‘아버지’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시절이 시절인 만큼, 가정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 싶은 아버지들은 가정 경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자신이 집안의 대표이자 중심축이라는 점을 인식한 이상 가정 경영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정이라는 조직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라는 건 별 이견을 달 수 없는 진리에 가깝다.가정 경영은 가정에도 기업 경영의 원칙과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두됐다. 대기업 CEO를 그만두고 지난 2000년 1월 가정경영연구소를 설립한 강학중 소장은 “가정도 이제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보다 의도적이고 체계적, 계획적으로 경영해야 할 경영의 대상”이라고 강조한다.예컨대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저절로 성공적인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듯, 가족 구성원 간에 분명한 목표와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하고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브레인스토밍도 필요하다. 물론 모든 과정에서 사랑과 격려, 신뢰와 배려가 바탕이 된다는 게 일반 기업과 다른 점이다.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가정에서의 성공’가정 경영의 대상은 정하기 나름이다. 크게는 자녀, 부부, 부모가 중심이 된다. 가정 경영의 개념이 접목되면 이들 가족 구성원을 내키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대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경영 원칙’에 의해서 말하고 행동한다. 늘 원칙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간혹 실수를 하더라도 고치기가 쉽다. 여기에 재무와 부부의 노후 설계도 중요한 경영 대상으로 빼놓을 수 없다. 이 역시 장기 계획 아래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게 핵심이다.흔히 가정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녀 경영이라고 한다. 자식 키우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교육을 통해 명문대를 보내야 하는 것은 기본, 아이의 행복까지도 만들어주고 싶은 게 부모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한경비즈니스>에 ‘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을 연재하며 수많은 명문가의 자녀 교육 비법을 소개하고 있는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군자는 손자는 안아주지만 자식은 안아주지 않는 법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자녀 교육에선 ‘원칙’을 세워 실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제는 늘 자녀가 아니라 부모에게 있다”면서 “김승연 한화 회장의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특히 오만과 방종은 자녀 교육에 있어 최대의 적”이라고 덧붙였다.자녀 경영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또 있다. 바로 부부 경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이혼율이 보여주듯 우리나라에는 부부 경영에 실패하고 결국 도산하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갈등 대처 능력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또 “부부 농사는 벼락치기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위기를 넘기는 슬기와 끈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물론 가장 좋은 것은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평소에 충분히 대비하는 것이다. 김병후 행복가정재단 이사장은 “가벼운 스킨십, 일과 가정에 대한 균형 감각 키우기 등을 통해 작은 행복의 밑불을 놓을 수 있다”면서 “부부관계 개선을 위해선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최근엔 노후 대책도 중요한 경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자녀만을 위한 맹목적인 투자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생각하는 부부들이 많아진 까닭이다. ‘자식은 더 이상 노후 적금통장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노후 대책 설계는 다소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김동선 웰비즈 대표는 “가족이야말로 노후 대책의 출발점”이라면서 “가장 친숙하고 지속적인 관계인 가족을 중심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또 △자녀에게 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라 △취미를 유산으로 남겨라 △검소하고 부지런하며 베풀 줄 아는 부자의 소양을 가르쳐라 △가족은 인간관계의 학습장임을 알려줘라 △부모의 ‘기록’을 남겨라 등 ‘노후 대책’ 계명을 제시했다. 모두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소박한 지침들이다.때로 가정은 갈등과 폭력 그리고 죽음의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청소년의 자살 시도 70% 이상이 가족의 갈등 때문이고 가정 폭력으로 검거된 인원은 하루 50여 명에 달하며 아동 학대 행위자의 83.2%가 부모라는 현실이 이를 잘 설명한다. 그러나 가정을 만든 그 누구도 이런 결론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가정을 바로 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옛 선현들도 인정한 일이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언제나 쉬운 데서 일어나고, 큰일은 언제나 작은 데서 시작된다’는 노자의 경구는 의미심장하다. ‘성공 중에 가장 어려운 성공은 가정에서의 성공’이라는 말도 있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서며, 사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해묵은 표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모든 명제의 해답은 바로 가정 경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