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기업실적 등 변수 많지만 ‘굿’

글로벌 증시가 의외로 좋다. 지난 2월 ‘중국발 쇼크’로 휘청거릴 때와는 딴판이다. 중심엔 뉴욕 증시가 있다. 미국 경기 침체 우려로 뉴욕 증시는 한때 글로벌 증시의 ‘태풍의 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훈풍의 온상지’로 변했다.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1만3000을 넘나들고 있을 정도다.그렇다면 변한 게 무엇일까. 경제 지표는 여전히 썩 좋지 않다. 벤 버냉키 의장을 비롯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간부들의 잇따른 강성 발언으로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도 물 건너갔다. 14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던 500대 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은 1분기엔 한 자릿수로 둔화될 게 분명하다. 문제가 됐던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도 여전히 폭발성을 안고 있다.따지고 보면 변한 게 없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가 변했다. 경기가 연착륙할 것이란 믿음이 확산된 데다 기대 심리를 미리 낮춰 잡음으로써 비슷한 지표가 나오더라도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여기에 잇따른 대형 기업 인수·합병(M&A) 성사로 대표되는 신규 유동성 공급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심리는 변하는 법. 앞으로 심리에 영향을 미칠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 본다.◇경기는 과연 연착륙할 것이가경기를 보는 시각은 역시 상대적이다. 연착륙 기대감이 팽배한 상태에서 좋지 않은 경제 지표가 발표되면 경착륙 우려감이 커진다. 반면 경착륙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기대를 웃도는 지표가 나오면 연착륙에 대한 믿음은 확고해진다.지난 2월 이후 후자의 경우가 뚜렷해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경기 침체 가능성은 33%’라는 경고가 여전히 생생한 가운데 이후 발표된 지표는 당초 예상보다 좋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우려됐던 주택 경기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에도 불구하고 추가 하락이 멈췄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다. 주택 경기의 선행지표라고 할 수 있는 주택착공호수는 지난 2월 150만6000채에서 3월엔 151만8000채로 증가했다. 주택 허가 실적도 같은 기간 153만2000채에서 154만4000채로 늘었다. 신규 주택 및 기존 주택 판매 실적도 제자리는 유지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서브프라임 부실 우려감은 상당 부분 숨어버린 양상이다.문제가 되던 인플레이션 압력도 둔화되는 기미가 역력하다. 지난 3월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상승률은 0.1%로 2월의 0.2%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월간 단위이지만 모처럼 FRB의 목표 범위 안에 들어옴으로써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엷어졌다. 주택경기지표와 인플레이션 지표가 예상보다 좋음으로써 경기 연착륙에 대한 믿음은 더욱 확산됐다.월가 전문가들은 당초부터 경기 연착륙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며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경기 둔화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느려지고 있다며 연착륙에 의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보고서까지 내놨다.그렇다면 경기 연착륙의 변수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소비다. 소비가 미 경제성장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그런 만큼 소비가 위축되면 성장률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 소비 관련 지표는 여전히 썩 좋지 못하다. 지난 2월 중 개인 소비 지출은 전달에 비해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1월의 0.3%보다 더 낮아졌다. 소비 심리를 나타내는 콘퍼런스보드의 소비자 신뢰지수도 지난 2월 111.2에서 3월엔 107.2로 뒷걸음질했다. 서브프라임 부실 파문과 주택 경기 침체 장기화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된 탓이다.소비와 관련된 변수 중 하나는 유가다.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유가는 야금야금 올라 배럴당 60달러를 넘고 있다. 미 휘발유 소매 판매 가격도 갤런당 3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휘발유값을 보고 소비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휘발유값이 소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런 만큼 유가가 고공 행진을 할 경우 소비 심리는 더욱 오그라들 수밖에 없다. 결국 경기는 연착륙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지만 소비가 최대 변수라고 할 수 있다.◇기업실적은 어느정도 괜찮은가미 500대 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은 작년 4분기까지 14분기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양호한 기업 실적이 미국 경기와 증시를 떠받치는 1차적인 지지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올 1분기부터 기업 실적이 둔화되기 시작해 순익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둔화될 전망이다. 실적 집계기관인 톰슨 파이낸셜은 500대 기업의 1분기 순이익 증가율이 3.3%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이런 예상이라면 투자 심리가 한껏 움츠러들어야 맞다. 그러나 현상은 반대다. 1분기 실적 시즌이 시작되면서 주가는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도 다분히 심리적 영향이 크다. 시장에선 기업 실적이 둔화될 것으로 보고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월가에서도 기업 순이익을 보수적으로 전망했다.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기업 실적이 둔화된 건 맞다. 그렇지만 월가의 전망치보다는 다소 좋게 나오고 있다. 미 500대 기업 중 3월 23일까지 실적을 발표한 187개 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은 5.2%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상징성이 큰 구글과 IBM 코카콜라 등의 실적이 예상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영향으로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금융회사들의 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다보니 투자자들 눈에는 기업 실적이 좋은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적어도 기업 실적이 우려했던 만큼 급전직하하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이 퍼지고 있다.이 같은 현상은 1분기 실적 시즌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렇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변수는 원유 관련주와 소매 관련주가 쥐고 있다. 이들 기업의 순이익은 천문학적이다. 그런 만큼 전체 기업 실적 평균을 산출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작년보다 떨어진 유가와 소비 심리 위축이 반영돼 실적은 작년 동기보다 좋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기업 실적이 좋다는 믿음에 균열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우려는?지난 2월 주가 하락을 촉발한 요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이었다. 부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주택 경기는 물론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했다. 저소득층의 모기지 상환이 힘들어지면서 가압류 주택이 늘어난다는 소식까지 전해 진데다 HSBC 메릴린치 등 대형 금융회사들마저 부실 파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와 시장 분위기는 뒤숭숭했다.지금은 상당히 가신 상태다. 여기엔 주택 지표가 괜찮은 점이 공헌했다. 서브프라임 파문에도 불구하고 주택 지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자 우려가 과도했다는 것을 시장 참가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상당액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을 갖고 있는 대형 금융회사들의 순이익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부실 영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회사로 제한되고 있다는 해석도 확산됐다.맞는 분석이다. 당초 서브프라임 부실 파문은 실질적인 영향보다 훨씬 컸다. 사안이 심리와 직결돼 있었던 때문이다. 따라서 부실 파문이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지금이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은 완전히 진정됐는가. 답은 ‘아니다’다. 부실 우려에 대한 거품이 걷힌 것뿐이지 진정된 건 아니다. 금융회사들의 실적에 온전히 반영되는건 오히려 2분기다. 그런 만큼 계기가 주어진다면 언제 어느 때 다시 튀어나올지 모를 폭발력을 갖고 있다. 실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최근 서브프라임을 포함한 모기지 전체의 작년 부실률이 당초 예상했던 5.5~6%보다 높은 6~8%에 달할 것으로 수정 전망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서브프라임 문제는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는 잠복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뉴욕=하영춘·한국경제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