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장소·상황 맞는 향수 선택해야

얼마 전 톰 티크베어 감독의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가 국내서 개봉됐다. 세상의 모든 향기를 맡을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고유한 체취를 가지지 못한 남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 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그루누이는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것이 집착으로, 더 나아가 광기로 발전돼 어느덧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된다.이 작품은 독일 출신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긴 것으로 쥐스킨트의 팬이라면 남다른 기대감에 부풀어 일찌감치 개봉일 첫 상영 티켓을 구입했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자극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된 소설을 읽으며 18세기의 프랑스 사회상, 다양한 향기, 향수 제조법, 그리고 살인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보는 듯 묘한 감흥을 느낀 적이 있어 지인과 함께 얼마 전 극장을 찾았다.향기나는 남자 vs 냄새나는 남자향수는 여자보다 남자에게 파급 효과가 훨씬 크다. 여자에게는 으레 여러 가지 향을 기대하기에 남자에게 향기가 난다는 것은 더 센슈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남자에게 반대로 기대치 이하의 비호감의 향이 난다면 (심지어 향 대신에 요상한 체취가 난다면 더워지고 있는 요즘 더욱 심각하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처음부터 아예 그른 것이다. 따라서 남성들도 이제 향의 종류에 따라, 향 원액의 포함률에 따라, 그리고 때와 장소에 따라 사용하는 이의 첫인상이나 이미지를 좌우하기 때문에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첫째, 향수는 사용하는 본인이 좋아하는 향이어야 하지만 향은 비강을 통해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뇌신경에 도달해 자극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패션 잡지의 뷰티 섹션에 향수 기사가 실렸을 때 ‘TPO(Time, Place, Occasion)’에 따른 추천 향수라는 식의 기사 내용을 흔히 한두 번씩은 보았을 것이다.그러면 이쯤에서 향수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자. 비즈니스맨들이라면 향수의 종류 및 올바른 사용법(etiquette, 혹은 attitude)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향수는 원액의 농도에 따라 ‘파팡(parfum), ‘오드 파팡(eaude parfum)’, ‘오드 투왈렛(eaude toilette)’, ‘오드 콜로뉴(eaude colo-gne)’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뉘며 나열된 순으로 점차 향이 옅어진다. 또한 향기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갈래로 계열을 분류할 수도 있다. 남녀 불문하고 모든 향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꽃향기는 플로랄(floral) 계열이며, 동물의 사향(musk)과 바닐라향이 주조를 이루어 달콤하고 묵직하며 관능적인 느낌의 향은 오리엔탈(oriental) 계열, 푸른 나뭇가지와 풀을 연상시키는 상쾌한 향은 그린(green) 계열, 나무껍질을 연상시키는 향은 우디(woody) 계열, 오렌지나 레몬, 베르가모트 등 감귤류의 향기가 나는 것은 시트러스(citrus) 계열, 벨벳이나 코튼처럼 부드럽고 뽀송뽀송한 느낌의 건초 향을 연상시키는 것은 파우더리(powdery) 계열이라 하는 등 계열의 수는 십여 가지 이상이다.이와 함께 향수는 뿌린 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향이 다양하게 변화하며 저마다의 고유한 본래의 채취와 섞이면서 진화하고, 상대는 이 진화한 향을 맡으며 그 향을 느낀다. 이때 정작 본인은 후각이 마비돼 자신에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나를 위한 아이템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위한 아이템인 것이다. 아무튼 향은 크게 톱 노트(Top Note), 미들 노트(Middle Note), 베이스 노트(Base Note) 등 세 가지로 나누어 구분한다.향이 이렇게 구분되는 이유는 각각의 다른 분자 구조를 갖고 있는 향의 휘발하는 속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톱 노트는 향수를 뿌렸을 때 제일 처음 맡게 되는 향으로, 레몬이나 오렌지와 같은 가벼운 시트러스의 에센스 향이 여기에 속한다. 미들 노트는 그 다음 단계에 맡게 되는 향으로, 향수를 뿌린 지 십여 분이 지난 후에서부터 2~3시간 정도 지속되는 향으로 향수의 구성 요소들이 조화롭게 배합을 이뤄 가장 핵심이 되는 발향 단계라 하여 하트 노트(Heart Note)라고도 한다. 이때는 플로럴, 시프레, 그린, 스파이시, 오리엔탈 등의 향이 느껴지게 된다. 베이스 노트는 쉽게 말해 잔향을 뜻하는 것으로, 향수의 발향 단계 중 가장 마지막 단계라 하여 라스트 노트(Last Note)라고도 한다. 이것은 향수의 기본 성격과 지속적인 느낌을 결정하는데 기여하며 사향과 같은 오리엔탈 계열과 우디 계열의 다소 묵직한 느낌의 향이 여기에 속한다.향수는 타인을 위한 패션 아이템지금부터는 TPO에 따라 적합한 향수의 종류와 예를 짚어보고 패션의 완성 단계라 일컬어지는 향수를 뿌림으로써 보다 더 멋지고 센스 있는 남성으로 거듭나도록 하자.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평소 회사에 출근할 때와 중요한 외부 미팅에 나가야 할 때, 애인과 데이트할 때, 저녁에 근사한 디너를 할 때, 주말에 나들이 갈 때,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갈 때 등 만남의 성격과 분위기에 따라 패션이 달라진다. 이때 다양한 향수를 구비해 두었다가 적절히 사용하면 좋다.첫째, 비즈니스맨으로서 회사에 출근하거나 미팅 장소에 나가게 될 경우다. 이때는 의상 역시 포말(formal)한 정장 슈트를 입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향수 또한 포말한 것이 제격이다. 여기에는 휴고 보스(Hugo Boss)의 휴고(Hugo)나 크리드(Creed)의 밀레심 임페리얼(Millesime Imperial)과 같이 베르가모트, 민트, 재스민, 무스크 등이 섞여 맑고 알싸한 느낌의 향이 세련되고 품위 있어 보이고 성공한 남성의 당당함을 보여줄 수 있다.둘째, 데이트가 있는 날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당신의 외모와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매력적인 향을 선택해야 한다. 이때의 의상은 세미 포멀(semi for-mal)의 댄디룩(Dandy Look)으로 연출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불가리(BVLGARI)의 블루 옴므(BLV Hom-me)나 샤넬(CHA-NEL)의 알뤼르 옴므(Allure Hom-me)처럼 생강, 후추, 샌들우드, 무스크 등 시크(Chic)하면서 부드럽고 포근한 인상을 주는 향수를 사용하면 된다. 만일 멋진 디너를 함께 하는 저녁 데이트가 있다면 로맨틱하고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과감한 향을 시도해도 좋다.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의 페라가모 옴므(Ferragamo Homme), 불가리(BVLGARI)의 불가리옴므 스와르(BVLGARI pour Homme Soir), 혹은 버버리(Burberry)의 버버리 런던포맨(Burberry London For Men)과 같이 민트, 스파이시, 모스(이끼), 머스크, 오크우드 등 알싸한 향이 강한 남성상과 섹시함을 느끼게 하는 향수가 좋다. 혹은 이성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호르몬 성분인 페로몬(Pheromone)을 혼합한 페로몬 향수를 사용해 보라. 이성에게 강하게 섹스어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셋째, 주말에 나들이를 가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는 날의 의상은 분명 가볍고 편안한 캐주얼일 것이다. 이런 날에는 에르메스(Hermes)의 떼르데르메스(Terre d’Heremes)나 다비도프(Davidoff)의 에코(Echo)처럼 시더우드, 페퍼 등이 혼합된 신선한 우디 스파이시의 향을 뿌리면 부드러움과 차분함 그리고 순수함과 세련됨을 연출할 수 있다.향수는 귀 뒤, 손목 안쪽, 팔 안쪽, 가슴 등 맥박이 뛰는 곳에 뿌리거나 무릎 안쪽에 뿌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향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일 향이 마음에 들지만 뿌리면 너무 강할 것 같아 염려된다면 오드 투왈렛(eau de toilette)이나 오드 콜로뉴(eau de cologne)를 공중에 분사해 그 앞을 지나가는 식으로 몸에 향이 배게 하면 된다.그동안 향수가 남자에게 부담스럽고 사치스러운 쇼핑 아이템 중 하나이며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면 이를 통해 생각을 바꾸길 바란다. ‘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는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이 남긴 말처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패션으로 적절하게 멋을 내되 본인을 타인에게 각인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근본적인 패션 스타일을 향수로 은은하게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여름 향기 나는 남자, 혹은 냄새나는 남자의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다.황의건·(주)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커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