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수요부족…갈수록 ‘한숨’

부산의 부동산 경기는 바닥을 친 뒤 횡보를 계속하고 있다. 올 들어 매매가가 조금 올랐지만 체감 경기는 회복되지 않아 실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시세보다 1000만∼2000만 원 정도 싸게 팔고 이 정도 가격만큼 싸게 사 이사를 하는 현상만 일부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난해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의 폭등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극심한 부동산 경기 침체와 입주 물량 폭증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아파트 값이 뒷걸음질쳤다”며 “올해도 부동산 가격이 현상 유지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동산 114의 김희선 전무는 “정부의 정책이 특별히 바뀌지 않는 한 부산 부동산 경기는 당분간 이 같은 상태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26일 부산 남구에 있는 LG메트로시티 아파트단지. 이곳 일대 부동산 사무실 유리창에는 ‘현시세보다 싸게 팜’ ‘급매’ 등의 문구가 적힌 사각형 종이가 잔뜩 붙어 있다. 메트로시티부동산 김철모 씨는 “새 아파트로 이사하려는 사람들이 보통 시세보다 1000만 원까지 싸게 내놓는 데도 문의만 있을 뿐 거래가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최근 입주를 시작한 해운대 센텀시티 일대나 수영만 매립지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파트를 2000만 원까지 싸게 내놔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사무실 임대료 내기도 빠듯하다”고 덧붙였다.부산의 최고 주택지로 떠오르고 있는 해운대 센텀시티 일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개업소를 찾는 고객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됐다. 바닷가 쪽이 보이는 아파트의 경우 2000만∼5000만 원 정도의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실제 부동산에 문의해 보면 사실과 다르다. 센텀부동산 김정철 씨는 “거래업자들이 프리미엄을 수천만 원까지 말하고 있으나 실제 분양가보다 마이너스로 내놓은 계약자도 있다”며 “있는 집이 팔리지 않아 입주를 미루거나 전세로 내놓는 사람이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며 고급 주거지로 자리 잡고 있는 해운대구 수영만 매립지 내 아파트들도 일부 조망이 좋은 로열층의 경우 3억∼6억 원까지 높은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다고 소문이 나 있지만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루머만 무성할 뿐이다.부산의 부동산 경기는 올해 부산에 쏟아져 나올 아파트 물량으로 회복세가 빠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공급 물량은 사하구 롯데캐슬 몰운대를 비롯해 1만9000가구. 부동산 전문가들은 “그동안 고급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 현 아파트에서 이사를 갈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며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상황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부산 부동산 업체 수는 지난해 말 2960개소로 전년(3980개소)보다 20개소나 줄었다. 다른 지역들이 업체 수가 는 반면 부산만 유일하게 감소한 것. 임학청 부산은행 PB센터 팀장은 “부산은 세금 때문에 거래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투기과열지구가 해제되면 바닷가 등 전망이 좋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입주자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재건축 아파트도 매매가는 오르고 있으나 거래는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그동안 가격이 떨어졌던 해운대 중동 AID아파트와 북구 화명 주공아파트 등 재건축 아파트는 지난 1분기 매매가 상승률이 4.22% 올랐다. 하지만 실제 매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매도가만 상승했다고 북구 화명동의 화명부동산 직원이 전했다.이 여파로 주택 건설 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이들은 최근 마지못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면서 미분양 털기에 나섰다. 강서구 롯데건설은 계약금 10%, 중도금 40%, 잔금 50%를 조건으로 판매에 들어갔고, 기장군 정관면의 한진중공업 해모로 아파트는 중도금 무이자, 계약금 1%라는 조건으로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 상태가 길어지면 시행사나 시공사 모두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파격적인 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일부에서는 부산 부동산 해빙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김경미 닥터아파트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친 만큼 올 9월부터 착공되는 혁신도시와 해운대구 신세계 쇼핑몰 신축, 강서구 신항 건설 등 각종 개발 사업과 대통령 선거에 따른 정책 완화 등의 기대 심리로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지방 부동산 ‘아직도 한겨울’부산을 제외한 지방 부동산 시장 역시 오랜 침체의 늪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지난 수년간 아파트 분양이 봇물을 이루면서 주택이 넘쳐나는 데다 세제 강화, 주택 담보대출 제한 등의 정부 규제가 겹치면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서울, 수도권처럼 탄탄한 수요층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지방 부동산 시장의 침체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또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 올 굵직굵직한 대형 개발 계획이 쏟아졌지만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수치상으로도 지방 주택 보급률은 평균 110%를 넘어선 상태다.실제 지방의 경우 신규 입주 아파트 3채 중 1채는 빈집인 것으로 추산될 만큼 심각한 공급 과잉 후유증을 겪고 있다. 새 아파트로 옮겨가고 싶지만 기존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이도 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택을 구입하고 싶지만 세금 중과와 담보대출 제한도 부담이다.이처럼 주택은 넘쳐나고 수요가 끊기면서 공급 과잉→규제 강화→거래 부진→가격 하락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아파트 공급이 봇물을 이뤘던 대구시는 거래 부진 속에 심각한 공급 과잉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성구를 중심으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쏟아지고, 도심 곳곳에서 택지 개발 사업을 통한 아파트 분양이 봇물을 이루면서 그야말로 포화 상태다.공급이 넘쳐나면서 전통적인 부촌으로 꼽히는 수성구도 매수세가 뚝 끊겼다. 시세보다 수천만 원 낮은 급매물이 쏟아져 나오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 아파트 입주가 봇물을 이루면서 기존 아파트 값이 맥을 못 추고 있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다. 수성구 만촌동 만촌태왕리더스 34평형의 경우 최근 1주일 사이 1000만 원이 빠진 2억2000만 원으로 가격이 조정됐다.내놓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리던 주상복합 아파트도 저조한 계약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06년 4월 수성동에 공급된 롯데캐슬(802가구)은 2007년 1월 현재 계약률이 30%를 가까스로 넘고 있다. 오는 8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만촌동 수성풀비체도 계약률이 60%를 밑돌고 있는 상태다. 공급 과잉에 따른 시장 침체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구시에서 연내에 분양 예정인 물량만 모두 2만6549가구에 이른다.시가지 내 택지 개발 사업이 한창인 광주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남산업단지와 가까운 광산구 신창동, 운남동 정도가 그나마 매수세가 살아 있는 정도다.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충청권도 그 열기가 시들하다. 대전시는 호가만 오를 뿐 매수세가 급격히 움츠러들면서 거래가 단절된 상태다. 유성구 노은지구에서는 이 지역 시세 상승을 주도해 온 카운티스 53평형이 4200만 원가량 호가가 오른 4억8750만 원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매도자와 매수자 간 호가 차이가 워낙에 커 거래는 거의 성사되지 않고 있다는 게 인근 중개업자의 설명이다.지난해까지만 해도 강세를 보이던 연기군, 논산시, 천안시, 서산시 당진군 등도 짙은 하락장세를 보이고 있다. 연기군에서는 5월 죽림 대우푸르지오 입주를 앞두고 기존 아파트 인기가 시들하다. 1억850만 원까지 올랐던 조치원읍 신동아 32평형이 1억 원대 이하로 뚝 떨어졌다.천안시에서는 입주 3년차를 맞은 두정지구에서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약세장을 이끌고 있다. 한성필하우스 3차 24평형, 서해그랑블 32평형 등이 최근 일주일 새 1000만 원가량 가격이 빠진 상태다. 두정동 K공인대표는 “매물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대출 규제, 세금 중과 등의 영향으로 매수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한편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협력 업체들이 밀집한 울산시는 지방에서는 드물게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태화강변을 중심으로 공급되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인기다. 하지만 5월 이후 연말까지 1만1588가구의 아파트가 입주 대기 중으로 호시절을 장담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q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길진홍 부동산뱅크 기자 kjh@neo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