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안보인다’…거래 ‘올스톱’

연일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는 초록 물결이 넘쳐나지만 단지 한쪽에 모여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한겨울 눈보라를 맞은 듯 꽁꽁 얼어붙어 있다. 중개업소들은 한결같이 “거래 자체가 아예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급매물이 나와도 가격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강남 아파트 가격의 바로미터인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지난해 12월만 해도 16건이 거래됐지만(출처:건설교통부 아파트 실거래 정보) 올해 1월에는 3건으로 급감하더니, 2월에는 아예 거래가 끊겼다. 3월 거래 정보는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았지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3~4건 거래된 것이 소문으로 돌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은마아파트의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일단 언론의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업소가 대부분이다. “매스컴이 워낙 떠들어 대서 가격이 자꾸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TV 뉴스에 인터뷰가 나오면 “저 업소가 어디냐”며 흥분하기도 해 취재에 응한 부동산 업소들은 업소 이름을 실명으로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정도다.31평, 34평형으로 구성된 총 4424가구의 은마아파트는 1979년 입주가 시작돼 재건축 기대감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지만 아직 안전 진단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다.31평형은 지난해 11월 11억6000만 원의 최고 거래가를 기록했고, 12월에도 10억5000만 원이 최저 거래가였다. 올해 1월에는 11억3000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지만 3월에는 10억2000만 원, 10억4000만 원에 거래된 것으로 중개업소들은 파악하고 있다. 이후 4월 말이 되자 9억 원의 급매물도 나왔다. 그러나 사려는 사람들은 8억 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떨어지니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한 업소는 ‘최근 가격이 전달에 비해 어떠냐’는 질문에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져야 가격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인데, ‘나 홀로’ 최저가, 혹은 최고가에 샀다고 그것이 정상적인 가격이 되는 것이냐”며 흥분한 모습이었다.취재 중 걸려온 상담전화에 중개업소는 “집주인이 9억1000만~9억2000만 원에 내놓았는데 1000만 원 정도는 깎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집주인은 9억 원에도 팔리지 않으면 친척에게 양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 중개업소는 “하루 종일 있어 봐야 전화 한 통 오지 않는다. 지금 부동산 하는 곳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며 “강남에서 노무현 정부를 좋게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종합부동산세(종부세) 때문에 나오는 급매물은 없느냐는 질문에 “종부세가 걸리는 사람들은 이미 지난해 처분했고, 지금은 그야말로 개인 사정에 따른 급매물뿐”이라고 답했다.재건축 단지 ‘된서리’ 맞아강남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노후 아파트 단지인 개포동 주공아파트는 11~17평의 작은 평수지만 재건축 기대감으로 13평형의 경우 7억~8억 원대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13평형은 지난해 연말 최고 7억9000만 원까지 거래됐지만 지금은 1억 원가량 가격이 빠졌다. 2월에 거래된 세 건 중 두 건이 7억 원, 한 건은 7억3000만 원인데 4월 들어 6억 원 후반으로 가격이 내려갔다. 이 가격은 지난해 9월 말, 10월 초 수준이다.개포 주공 1단지는 총 124개 동 5040가구로 구성돼 있다. 이미 지은 지 20년이 넘은 5층짜리 아파트지만 안전 진단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아래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개포동 주공아파트, 시영아파트 단지는 재개발 붐이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정부가 재건축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80%가량의 주민이 세입자인 이 아파트 단지에서 어렵사리 만난 자가 소유자는 “내린 가격차가 커서 그렇지 실제 하락폭은 1~2%로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보다 못한 단지들도 거의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빠졌다고 보지 않는다”며 담담한 모습이었다. 인근 개포 우성아파트와 지난해 입주한 신축 아파트인 도곡 렉슬과 동부 센트레빌도 지난해 말에 비해 1억 원가량 가격이 하락했지만 20억 원이 넘는 가격이라 가격 하락 폭은 크지 않은 편이다.개포 우성아파트 단지 내 중개업소는 “팔려고 해도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하다 보니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종부세 때문에 팔려고 해도 양도소득세를 2억 원 이상씩 물게 되면 평형대를 줄여서 이사를 가야 할 형편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가격 하락에 대한 언론 보도 때문에 터무니없는 가격에 흥정하려는 사람도 많다고 불평했다.잠실 5단지 36평형 3억 ‘폭락’은마아파트와 더불어 강남 아파트 값의 바로미터로 지목되는 잠실 주공아파트 5단지는 3월 들어 2~3건의 거래가 이뤄진 뒤 지금은 거래가 뚝 끊긴 상태다. 인근 1~4단지가 재개발이 완료돼 이미 입주하거나 올해 입주를 앞두고 있는 것에 비해 1979년 입주한 5단지는 아직 재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안전 진단에서 ‘유지 보수’가 떨어지자 재건축을 접고 리모델링이나 상업지구로 개발하자는 의견으로 돌아서고 있다.36평형의 경우 지난해 말 16억8000만~16억9000만 원 하던 가격이 지금은 13억8000만~13억9000만 원으로 3억 원이나 하락했다. 34평형도 지난해 말 13억6000만 원까지 거래가 됐지만 지금은 11억1000만~11억2000만 원에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흥정을 잘하면 11억 원까지 가능하다”고 상담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4월 5일만 해도 급매물의 경우 11억3500만 원이 최저가였지만 이후 3000만~4000만 원이 하락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서울 지역 버블 세븐 중 하나인 목동도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1980년대 말에 지어진 신시가지 아파트들은 단지에 따라 넓은 평수도 있지만 소형 평형이 중심이고 실소유자 거주 개념이다 보니 강남처럼 ‘삭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거래가 뚝 끊겨 볼멘소리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이곳 중개업소들도 “3월에 비해 4월 가격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여기도 전화 한 통 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4·25 선거 참여하라고 전화는 많이 오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8단지의 경우 소형 평수인 20평형은 지난해 말 5억1500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 거래가 뚝 끊겼고, 3월에는 4억5000만~4억6000만 원에 매물이 나오기도 했는데, 4월 들어서는 2000만 원가량이 더 떨어진 4억3000만 원, 최근에는 4억1000만~4억2000만 원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목동의 주민들은 가격 하락에 대해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다. 이미 1가구 2주택 소유주들은 지난해 다 빠져나가고 지금은 교육 등이 목적인 실거주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목동의 ‘타워팰리스’로 불리는 ‘하이페리온’은 층별, 방향별로 가격이 18억~22억 원까지 다양해 실거래가로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지난해 말에 비해 20% 가까이 가격이 빠진 편이다. 로열층 기준으로 20억~22억 원이던 것이 현재는 16억~17억 원대로 전반적인 가격대가 하락했다. 한 중개업소는 “고점 대비 20% 정도 빠지면 바닥으로 봐야 하지만 지금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며 “그러나 지금 너무 빠지다 보니 실수요자들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앉은 자리에서 가격을 깎아 살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며 역발상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