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손바닥만한 지면에 새하얀 얼굴로 등장해 웃고 떠드는 주인공들을 보면서넥타이 부대도 함께 울고 웃는 요즘이다. 태평양 건너 저 멀리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2007년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만화를 ‘유치한 그림책’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당신이움칫할 정도로 한국의 대중문화 코드, 비즈니스 지도는 급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그렇다면 만화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직장인까지도 열광케 하는바로 그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아울러 이번 설 연휴엔 당신도 만화를희망 도서 리스트에 올려보는 건 어떠실지.단지 외모가 비호감이라는 이유만으로 간나즈키는 사람들의 괄시 속에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수백만 엔을 들여 전신 성형을 감행한 그녀는 이제 누가 봐도 눈부신 미녀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갑자기 180도 달라진 친절한 주위 사람들의 태도를 실감하게 된 간나즈키. 사실 그녀는 꽃미남 고스케를 흠모하던 끝에 전신 성형을 선택한 것이다. 달라진 모습으로 고스케 앞에 선 간나즈키는 착한 마음씨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외모 때문에 그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믿는 간나즈키는 예쁘지만 성격은 까다로운 미인의 행동 패턴을 따라 하려고 애쓴다.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스토리는 개봉 42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몰이 중인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동명 원작 만화의 내용이다. 일본 작가 스즈키 유미코의 만화 <미녀는 괴로워>는 1999년 발매된 책으로 국내에서만 30만 부가 팔렸다.모든 대중문화가 만화로 통하는 요즘이다. 만화는 여러 미디어 중에서도 상상력의 집결체로 불릴만한 매체다. 작가가 혼자 콘티를 짜고 연출을 하는 데다 표현에 제약이 없어 기발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최근 몇몇 만화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원형으로서 부가가치 창출의 주역이 되고 있다. 특히 관객의 취향이 시간이 갈수록 독특해지는 ‘다양성의 시대’인 점도 지금 만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최근에는 <신의 물방울> <미스터 초밥왕> 등 전문 분야를 다룬 일본 만화가 일본 현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만화 독자층이 청소년층에서 30~40대 이상 직장인으로까지 퍼지고 있다.이미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애독서로 이들 만화를 꼽는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화장품 제조업체 코스맥스의 이경수 사장은 1년에 읽는 만화책 수가 무려 600여 권에 달한다. 그는 <시마과장>으로 대표되는 ‘시마 시리즈’를 통해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배웠다. 또한 <식객> <미스터 초밥왕> 등을 통해서는 전문성과 열정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성인 독자 위한 만화잡지 창간 임박이 같은 만화에 대한 관심은 이제 샐러리맨 전체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문 분야를 다룬 만화의 경우 깊이 있는 정보와 긴장감 있는 갈등 구조로 성인 독자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되고 있다.예컨대 와인 마니아층을 넘어 일반 독자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본 작가 아기 다타시의 <신의 물방울>의 경우 웬만한 와인 입문서를 뛰어 넘는 ‘영양가 있는’ 와인 정보와 함께 주인공 시즈쿠와 잇세의 팽팽한 대결 구도가 매력 포인트다.만화가 지닌 잠재 가치가 재발견되고, 독자층도 꾸준히 늘어서인지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만화잡지 창간을 준비 중인 곳도 있다. 영화 주간지 <씨네21>은 3월 1일을 목표로 격주간 만화잡지 <팝툰(Poptoon)>을 창간 준비 중이다. 성인 독자를 위한 만화 잡지는 <빅 점프>, <트웬티 세븐> 등 남성 독자 중심의 소위 ‘성인만화’ 잡지 이후로는 7년여 만의 일이며 대중성을 갖춘 잡지로는 1980년대 이후 처음이라는 게 씨네21 측의 설명이다. 만화가 본래 아동의 전유물이 아닌 만큼 대중적이면서 수준 있는 만화 잡지를 만들어 국내 만화 업계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게 이 업체가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는 이유다. “작가도, 독자도 그동안 수준 있는 만화에 목이 말라 있었다”는 게 전재상 편집장의 말이다. 그는 “일본은 만화잡지가 수백여 종”이라면서 “작가들이 고정적인 수입을 얻으며 일할 수 있는 장이 충분히 마련돼 있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어로 번역돼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만화의 경우 대부분 만화 잡지에 연재됐던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만화 업계 차원을 넘어 사실상 출판 업계 전체에서 만화라는 매체 형식은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면서 만화에 관심을 갖는 독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읽는 행위 자체가 익숙지 않은 한국 독자들에게 교양 만화, 또는 지식 만화 형식의 인문서들이 독서 입문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서다. 이는 곧 만화 산업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출판 업계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대표적인 지식 만화로, 2004년 출판된 <십자군 이야기>의 경우 2005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고경영자(CEO)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추석 귀향길에 읽으면 좋은 책’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십자군 이야기>는 서구의 시각이 아닌 무슬림의 십자군 전쟁 기록을 활용해 아랍 세계를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십자군 운동을 바라보게 한다.일부에서는 만화 산업을 지금보다 키우기 위해 우선적으로 교양 만화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점 판매용 만화를 늘림으로써 시장 규모를 짧은 기간 내에 키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한국의 만화 산업은 그동안 대여와 대본소 중심으로 커 왔다. 가정으로 빌려가서 보는 형식을 ‘대여’, 소위 ‘만화방’으로 불리며 일종 금액을 지불하고 만화책을 보는 장소를 ‘대본소’라고 한다.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정부의 문화 산업 육성 의지와 대여점 지원 정책으로 대여점 설립이 붐을 이뤘다. 이로써 만화 산업은 일시적으로 호황을 맞았지만 2000년대 들어 경쟁이 격화되면서 폐업이 늘었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만화 산업이 성장하려면 서점 판매용인 교양 학습 만화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김영권 만화 작가는 “교양 만화는 책의 품격이 일반 만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은 데다 가격도 1만 원 안팎으로 문고판 만화보다 비싸기 때문에 시장 확대의 주축이 될 수 있다”면서 “교양 학습 만화 시장 확대는 곧 문화 예술 분야 전반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물론 만화 업계에서는 교양 만화를 만화의 카테고리에 넣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기발한 상상력과 재미를 만화의 핵심으로 보기 때문이다.그렇지만 만화의 영역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상관없이 그림과 약간의 텍스트가 들어간 매체 형식에 독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또한 관련 시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만화 독자도 계속 늘어나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특히 청소년으로 한정됐던 만화 독자층이 성인으로까지 확산된 것은 요즘 출판되는 만화들이 철저한 검증을 거친 전문성 있는 내용으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면서 동시에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의 물방울> 작가 아기 다타시의 경우 대단한 와인 마니아로 우리 돈으로 약 1억 원어치의 와인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따라서 이제 만화를 유치하다고 무시해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빡빡한 텍스트에 집중하기 어려운 명절을 기회삼아 트렌드에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더욱이 만화 시장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면서 성인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만화(특히 한국 작가의 작품)의 수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만화 격주간지 <팝툰>의 전재상 편집장은 “일본의 경우 자국 내 만화 인구가 워낙 많아 수출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서 “좋은 만화 작가들이 경쟁하는 통로로서 만화 전문 잡지가 등장하게 된 만큼 앞으로 좋은 한국 만화 생산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