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사랑한 나라’…멕시코의 화려한 비상

한국보다 20년 먼저 올림픽을 유치한 나라.그러나 외채 위기(1982)와 외환위기(1995)를 차례로 겪고국민소득은 여전히 8000달러대에 머물러 있는 나라.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2위인 나라.한반도의 9배에 달하는 넓은 땅과 쾌적한 기후, 풍부한 지하자원을 두루 갖춰 ‘신이 사랑한 나라’로불리는 멕시코가 차세대 글로벌 경제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1억 명이 넘는 인구, 미국과 국경을 맞댄 천혜의 전략적 위치가 최대 강점이다.〈한경비즈니스〉 특별기획 ‘입체분석-포스트 브릭스’ 3편으로멕시코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해 본다.멕시코시티·케레타로·톨루카·푸에블라(멕시코)=장승규 기자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해발 2240m에 있는 고산 도시다. 백두산과 겨우 400여m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고지에 있다. 덕분에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가 1년 내내 이어진다. 겨울인 요즘도 우리나라 4~5월 봄 날씨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고대인들은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곳 멕시코 고원에 모여들었다. 아스테크 문명의 중심도시 테노치티틀란(신의 도시)을 건설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거대한 호수 한가운데 있는 전설속의 수상도시 테노치티틀란은 그러나 1521년 에스파냐 장군 코르테스의 말발굽 아래 무참하게 짓밟혀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코르테스는 호수를 메워 그 위에 그대로 지금의 멕시코시티를 세웠다.요즘 멕시코는 옥수수 값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월 31일 멕시코시티의 중심가 레포르마 거리에서 7만여 명이 참여한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멕시코인들이 즐겨 먹는 옥수수 전병 ‘토티야’ 값이 2배 가까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토티야는 우리나라로 치면 쌀에 해당하는 주식이다. 멕시코 서민들은 하루 단백질 섭취량의 40%를 토티야에서 얻는다. 그런데 지난해 부셸(약 25kg)당 2달러 하던 국제 옥수수 가격이 올 들어 4달러 넘게 오르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정부는 옥수수가 바이오 연료인 에탄올 원료로 각광을 받으면서 수요가 늘어 가격이 치솟은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자국 수요의 상당부분을 미국의 값싼 옥수수 수입에 의존해 왔다.이날 시위를 주최한 곳은 지난해 대선에서 패한 좌파 민주혁명당(PRD)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 측이었다. 지난해 7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오브라도르 후보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 우파 국민행동당(PAN) 펠리페 칼데론 후보에게 불과 0.56%(20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개표 과정 내내 우위를 유지하다 마지막 순간 뒤집혀 오브라도르 지지자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PRD는 법원이 칼데론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후에도 몇 개월 동안 레포르마 거리를 폐쇄하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급기야 오브라도르 후보는 ‘거리의 대통령’을 자임하고 자체 내각 명단을 발표하기도 했다.그러나 지난해 12월 칼데론 대통령이 공식 취임한 이후 정국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이날 시위도 ‘칼데론이 대선을 훔쳐가더니 이번엔 토티야까지 훔쳐갔다’는 피켓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이종호 KOTRA 중남미지역본부장은 “예전 같으면 밤늦게까지 시위가 계속됐을 것”이라며 “퇴근 시간 전에 시위가 끝난 것은 칼데론 정부 빠르게 정국을 장악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칼데론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군대를 동원해 마약 조직 소탕에 나서고, 해외 투자 유치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던 치안 확보와 기초 인프라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멕시코 현지 기업인들은 중도 우파 시장개방론자인 칼데론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숨기지 않는다. ‘경제를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는 것이다. 민간 산업단지 건설 업체 베스타의 로돌포 발마세다 부사장은 “최근 안정세를 유지하는 환율 움직임이 바로 그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선거 직전 불안하던 환율은 칼데론 대통령 당선 이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이날 같은 시각 시위 현장에서 머지않은 멕시코증권거래소(BMV)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주식시장의 IPC 지수가 2만7621을 기록, 증권거래소 102년 역사상 최고치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만 벌써 다섯 번째 최고치 경신이다. 멕시코 주식시장은 그동안 전 세계 증시에서도 단연 두각을 보여 왔다. 무려 4년째 상승장이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평균 상승률 48.56%를 기록, 미국 브라질을 포함한 미주대륙 주식시장 중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돈이 몰려드는 것은 주식시장뿐만 아니다. 지난해 멕시코는 108억6400만 달러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유치했다. 지난 10년간 무려 1630억 달러의 FDI 자금이 멕시코로 흘러들었다. 2005년 기준으로 보면 주요 신흥 경제 가운데 중국에 이어 2위다. 이처럼 해외 투자자들이 멕시코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에 턱밑에 인접한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1994년 NAFTA 발효로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면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2001~03년 중국이 저임금을 무기로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일부 공장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갔지만 최근 멕시코의 ‘재발견’ 이후 멕시코 투자가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중국에서 치러야 하는 ‘숨은 비용’을 절감하게 됐고, 멕시코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다.멕시코의 내수 시장도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멕시코는 1억320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갖고 있다. 최익석 삼성전자 멕시코 판매법인 부장은 “1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는 세계적으로 11개 나라밖에 없다”고 말했다. 극심한 빈부 격차로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빈곤층이라고 해도, 일정한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가 적어도 5000만~6000만 명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연평균 인구 증가율이 1.4%가량 돼 2020년에는 인구 규모가 1억3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30세 미만의 젊은층이 전체 인구의 58%를 차지한다는 것도 매력적이다.전통적으로 멕시코 최대 투자국은 미국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과 아시아 국가의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적극적이다. 특히 중국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 멕시코 현지 기업인은 “지난 2005년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대외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양국간 경제 협력 협정을 내부적으로 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멕시코는 우리에게도 이미 ‘효자 시장’이다. 이종호 본부장은 “멕시코와의 교역에서 무려 55억 달러의 흑자를 남기고 있다”며 “흑자 규모로 보면 교역 대상국 중 멕시코가 3~4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