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경제 부처 관료들 중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참여정부 말기에 웬 스트레스입니까?”라는 질문에 “갈수록 더하네요”라는 대답이 대다수다. 대통령 선거가 낀 해엔 관심이 경제에서 정치로 옮겨지고, 레임덕(lame duck)현상이 심해져 관료들은 오히려 속이 편해지는 것이 통상적인 관가 표정이다. 그런데 올해는 보통 때와는 사뭇 다르다고 경제 부처 간부들은 전한다. “올해는 위에서 찾는 일도 많고…. 추진해 보라는 과제도 산더미같고….” ‘위’란 청와대를 지칭한다.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 부처는 올 들어서만 굵직한 자료를 5건이나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7년 경제운용계획, 1·11부동산대책, 해외투자활성화방안, 1·31부동산대책, 인적자원활용 2+5전략 등이다. 여기에다 세제가 들어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2단계 국가균형발전정책 구상’까지 포함하면 6건에 이른다. 매주 한 건 꼴이다. 재경부 관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건수의 문제가 아니다.일하는 데는 워낙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위에서 찍어 눌러 할 수 없이 만들어내는 정책에 불만이다. “우리는 정책 기술자가 아니다”라는 항변이다. 위에서 촉박하게 시키다 보니 심도 있는 검토 없이 서둘러 내게 되고, 발표 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또 다시 작업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렇게 나온 작품들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졸속과 누더기’가 되는 셈이다.대표적 사례가 2단계 균형발전정책 구상이다. 정책의 이름부터가 ‘구상’이다. 국민들과 기업 등 정책 수요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표시다. 균발위는 지난 7일 ‘구상’ 발표를 통해 지방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낮추거나, 지방 이전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기간을 대폭 늘리겠다고 나섰다. 발표 직후 재경부가 진화에 나섰다. “부처 협의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세수와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재경부로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2+5전략’도 마찬가지. 2년 일찍 일하고 5년 늦게 퇴직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골자.하지만 군 복무기간을 향후 6개월 단축하겠다는 것만 알맹이가 있다. 학제를 어떻게 개편하고,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들에 어떤 인센티브를 주는지 등의 사안은 2010년 이후 검토 과제로 미뤘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말 “군대 가서 썩지 않고…”라는 발언 이후 군 복무기간 외 다른 대책도 추가해 발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해외 투자 펀드에 대한 양도 차익 비과세가 핵심인 해외투자활성화방안은 역시 노 대통령의 “특단의 환율 대책(올 1월 3일)” 발언 이후 12일 만에 나왔다.외국에서 만들어진 역외 펀드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줄지 말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검토한다고 야단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논란 끝에 재정경제부가 비과세 불허 입장을 공식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여당 때문에 썩이는 골치는 다소 다른 차원이다. 여하간 만들어 놓은 정책을 법제화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참여정부 내내 작동해 온 정책 생성 메커니즘은 당정 협의를 통한 입법화. 그런데 여당 의원들이 최근 들어 무더기로 탈당, 열린우리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해버려 이 구조가 가동되지 않게 돼 버렸다. 부동산 관련법이 그런 사례. ‘1·11대책’과 ‘1·31대책’을 통해 민간 주택 원가 공개와 91조 원의 임대 주택 펀드를 조성하려면 주택법 택지개발촉진법 부동산가격공시법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의 개정안 국회 통과가 필수적이다. 민간 주택 원가 공개 등의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이 반대 입장을 밝힌데 반해 정책 파트너인 열린우리당은 괴멸돼 후속 입법 자체가 의문시되는 상황이다.더군다나 열린우리당은 탈당 방지와 개헌 문제에만 매달릴 뿐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것으로 전해져 관료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재경부의 한 간부는 “이제 우리는 당정 협의를 한나라당과 해야 하나”라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다. 건설교통부의 한 국장은 “오히려 지금이 한나라당 의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라고 말하는 동료도 있다”고 전한다. 관료들은 여태껏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호’의 중심을 잡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 2007년은 고난의 시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