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통화 다양화·전문인력 확충 ‘절실’

연초부터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이상 조짐을 보이는 환율이다. 경제 이론과 달리 통화가치는 더 이상 경제 여건을 반영하는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최근 통화가치의 흐름은 세계 각국이 처한 여건에 따라 자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문제의 발단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난 2년 연속 8000억 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마무리 국면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체적으로 금리 인상을 통해 국민들의 씀씀이를 줄여나가지 못하면 최대 현안인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가치의 약세를 유도할 공산이 크다.국내 기업 환 위험 인식 낮아불행히도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해 달러 약세를 유도해 나간다 하더라도 수출입 구조가 비탄력적이어서 무역수지 개선의 전제 조건인 ‘마셜-러너 조건(Marshall-Lerner condition)’을 충족하지 못하는 데다 과도한 달러 약세는 미국 내 자본 이탈에 따른 역(逆)자산 효과로 경기를 급락시키는 또 다른 거시 경제 목표를 희생시킬 가능성이 높다.극단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만을 개선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해 나간다 하더라도 다른 국가들이 수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최악의 경우 미국의 요구에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내리는 환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앞으로 국제 환율은 어느 특정 통화가 일방적으로 강세 혹은 약세가 되기보다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듯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하 움직임이 크게 확대되는 국면이 예상된다. 이 같은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글로벌 불균형 정도가 워낙 큰 점을 감안하면 세계 경제 안정 차원에서 일정 수준의 달러 약세는 불가피해 보인다.결국 앞으로 대내외 환율의 상하 변동 폭이 커지는 가운데 완만하지만 추세적으로 달러 약세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국내 기업들엔 원화 강세와 환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앞으로 경영상의 핵심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 기업들은 환 위험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낮다. 특히 중소기업이 그렇다. 이 때문에 환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도산하는 경우도 수없이 발생했다. 심지어는 공기업조차 경영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S공사의 사례를 살펴보자. 몇 년 전 이 공사가 한창 지하철 건설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이 회사는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엔화로 공공차관을 차입했다. 당시는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될 것으로 예상됐던 시기였다. 문제는 이런 환율 예상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가 아무런 전략과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엔화 자금을 차입한 후 지속적으로 엔화가 강세를 보여 막상 상환 시기가 돼서는 원리금 상환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만약 당시처럼 엔화 강세가 예상되는 시기에 엔화 자금 차입 시의 환율로 미리 선물환 계약을 했다면 원리금 상환액은 598억 원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하철 공사가 환 위험 관리를 무시함에 따라 총상환액은 1048억 원으로 증가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환 위험에 대한 인식이 결여됐고 △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 부서와 전문 인력이 없었으며 △외화자금의 운영 계획에서 환율 변화와 관련된 계획이 없어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이 같은 환 위험 관리의 실패 사례는 한 해에도 부지기수로 발생한다. 앞으로 이런 사례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대에 기업의 생존은 종전처럼 범위(scope)나 규모(scale)에 좌우되기보다는 얼마나 환 위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 하는 위험관리(risk management) 능력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떻게 환 위험을 관리해야 할까. 현재 국내 기업들의 환 위험에 대한 인식도를 파악해 보면 경영진과 그 일부 외화 부서의 직원을 제외하고는 외화 운용과 환율 변동에 따른 대응 능력이 초보 수준에 머무른다. 이런 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갈수록 외화 운용이 어렵고 환율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환경에서 국내 기업이 겪어야 할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시점에서 환율 변동에 따른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무엇보다 최고경영자가 외화 운용과 환율 변동 위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최근처럼 환율, 금리 등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은 얼마나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느냐의 능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환 위험 관리에 대한 인식을 전사적으로 확산해 나가야 한다. 환 위험 관리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환 위험 관리에서 실패했을 경우 다른 수익원이나 비용 절감을 통해 반드시 보전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개인, 환 헤지 상품 활용 바람직환 위험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환율 예측을 잘하는 것이 기본이다. 환율이란 ‘그 나라의 경제 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다. 그런 만큼 실로 많은 변수가 환율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외환에 대한 지식을 비교적 잘 갖춘 외환 전문 부서는 선물환 계약에 의한 헤지나 통화스와프 등 외부 관리 기법에 큰 비중을 두고 있으나 기업 내부적으로 상계나 매칭, 자산부채 종합관리 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리 기법을 충분하게 활용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일단 환 위험이 발생하면 우선 내부적으로 환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을 활용해야 한다. 내부 관리 기법으로 환 위험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외부 관리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부 관리 기법은 중개기관을 개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환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이므로 거래 비용이 저렴하고 상황이 반전됐을 때 거래를 상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환 위험 관리 기법이 결정되면 환 위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환 위험을 최소화하는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환차익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결정해야 보다 적절한 관리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기업별로 간헐적으로 수출이 이뤄지는 시기와 계속적으로 수출이 이뤄지는 시기 사이의 환 위험 관리 전략도 달리해야 한다. 만약 간헐적으로 수출이 이뤄지는 시기라면 수출과 동시에 선물환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환율 변동과 관계없이 매출액을 일정 금액의 원화로 확정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반면 수출이 계속해서 이뤄지는 시기에는 현재 거래되는 선물 환율은 확정돼 있으나 미래 시점에 거래하게 될 선물 환율은 현물 환율과 마찬가지로 계속 변동할 것이다. 이때는 선물환 거래를 하더라도 미래 매출 이익의 변동 가능성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이런 시기엔 우선적으로 내부 관리 기법을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미 달러화의 결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결제 통화를 적절히 선정함으로써 환 위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외부 관리 기법을 사용하고자 할 때에는 통화스와프, 통화선물, 옵션과 같은 파생금융상품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 겪는 어려움은 외부 전문가와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등 경험을 축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는 환율 전문 인력을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내부화할 필요가 있다.요즘 들어 해외 투자가 활성화됨에 따라 일반 국민들도 환 헤지를 포함한 환테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주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 적극적 의미로 재테크 이론에서 ‘환테크는 선진 재테크’라고도 부른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에서 환테크를 이용한 상품이 높은 수익률과 인기를 함께 얻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개인 입장에서 환테크를 잘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기업과 대동소이하지만 불행히도 가장 중요한 환율 예측을 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환율이 궁금할 때마다 언제든지 상담할 수 있는 환율 전문가와 환율 예측 전문 기관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주거래 금융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금융사들도 갈수록 높아지는 개인들의 이런 요구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최근 금융사들은 기존의 외화 정기예금과 외화종합통장뿐만 아니라 선물환, 통화선물, 통화스와프 등 종전에는 기업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외환상품까지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개인들은 해외 펀드 가입 시에 이들 상품을 적극 활용해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