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한기선 ‘뉴스메이커’ 부상

2006년 재계에서는 어떤 인물이 뜨고 어떤 인물이 석양의 해처럼 졌을까. 2006년은 내수 침체에다 원·달러 환율 하락 등으로 경영 환경이 악화된 탓에 빼어난 성적을 거둔 스타 최고경영자(CEO)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도 기어코 탁월한 성과를 내는 실력파들이 있게 마련이다.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은 그야말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2월 12일 황사장은 동양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 명인(名人)에게 주어지는 ‘IEEE 앤디 그로브상’을 수상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3학년이던 75년 인텔의 창업자인 앤디 그로브가 쓴 반도체 이론서 ‘Phisics of Semiconductor’를 읽고 반도체 인생을 걷기로 굳게 결심한 황 사장이 아니던가.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책의 저자가 세운 회사가 인정한 ‘반도체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섰다.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 사장은 미국에서 2011년까지 25억 달러의 신시장을 개척할 퓨전메모리의 ‘원D램’까지 발표하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력을 한껏 뽐냈다.한기선 두산주류BG 사장은 2006년을 자신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해’로 만들었다. 한 사장은 지난 2월 소주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 2월 탄생한 ‘처음처럼’이 출시 17일 만에 누적 판매량 1000만 병을 돌파했다. 이는 역대 신제품 소주 중 가장 빠른 판매 속도였다. ‘처음처럼’을 내놓기 이전에 5%대에 불과했던 두산의 전국 소주 시장점유율은 10%를 훌쩍 넘어섰고, 서울 시장점유율은 20%를 돌파했다. 그는 1988년 진로의 부장으로 주류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진로에서 소주시장을 평정한 그는 2002년 1월 OB맥주로 자리를 옮겼으나 몸에 대장암이 발견돼 2년 만에 OB맥주를 그만뒀다. 그러다가 2004년 10월 두산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다시 소주 업계에 복귀했다. 주류 업계에서의 그의 성공은 한 편의 ‘신화’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이 밖에 연말에 진행된 주요 기업 인사를 통해 박찬법 금호아시아나 사장, 구학서 신세계 사장, 민경조 코오롱 건설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확실히 떴다. 지난 7월 LG텔레콤 대표이사에 취임한 정일재 사장과 최근 현대백화점 대표이사에 오른 경청호 민형돈 사장 등도 2006년 세밑을 훈훈하게 보내고 있다.반면 하루아침에 ‘빛’을 잃어버린 CEO들도 없지 않다. 한때 잘 나가던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과 이철상 VK 사장 등 중견 휴대폰업체 CEO들에게 2006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다.박병엽 부회장. 1991년 29세이던 그는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직을 그만두고 전셋돈 4000만 원을 종자돈 삼아 서울 신월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6명과 함께 무선 호출기사업으로 새로운 인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997년부터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생산을 시작했다. 2001년 11월 당시 매출 규모 1조 원에 이르는 현대큐리텔을 인수한데 이어 2005년 7월 SK텔레텍을 사들이며 덩치를 키워나갔다. 하지만 무리한 확장과 차입경영에 발목이 잡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는 아픔을 겪었다.‘386 벤처신화’를 창조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던 이철상 VK 사장의 꿈도 허망하게 무너졌다. 지난 7월 VK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1997년 바이어블코리아라는 휴대폰 배터리 생산업체를 설립한 이 사장은 2001년 휴대폰 제조업에 직접 뛰어들었다.OEM 방식에 주력했던 다른 중소 휴대폰 업체와 달리 자체 상표로 중국 시장을 뚫은 이 사장은 저가 휴대폰으로 승승장구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주저앉고 말았다.타계한 CEO들도 적지 않다. 올 1월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86)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7월 정인영 한라건설 명예회장(86)도 역시 노환으로 타계했다.최근에는 국내 해운 업계의 ‘큰 별’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80)과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52)이 잇달아 유명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