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후 아시아 각국에서는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고 자금조달 수단을 다각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채권시장이 급성장했다. 기업이 자금조달 수단으로 채권을 널리 이용하고 있으며, 다양하고 안정적인 금융자본 유입을 통해 지역 경제가 성장하고 유지되는 것이 이러한 추세를 입증한다.그렇지만 아시아 기업에 관심 있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실제 투자 규모는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시아 채권시장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는 유동성 증가와 채권 가격 책정 기능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에게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시장 인프라를 확충하고 금융 혁신을 촉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성 제고가 핵심이다.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려면 투자자와 자금수요자 간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 구실을 하는 게 신용등급이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은 신용평가기관과 신용등급의 사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채권시장의 발전이 더디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아시아 지역 내에서 공통으로 시행되고 있는 몇 가지 유형의 규제를 예로 들어보면, 우선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지정 또는 인가 규정이 있다.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는 신용평가기관의 직원 수와 자격, 자본 규모와 소유 구조 등에 대한 규제가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신용평가기관의 수를 제한하거나 자국 기관에 제휴 또는 협력하지 않는 한 국제신용평가기관이 국내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고급 학위와 경험을 갖춘 20인 이상의 분석 인력을 둬야만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에서는 국제신용평가기관이 국내 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고 자국 내 제휴사를 통해서만 참가할 수 있다.신용등급 사용에 관해서도 규제가 있다. 채권에 대해 1개 이상의 신용등급을 부여받도록 하는 요건과 보험사, 연기금, 뮤추얼 펀드의 투자 지침에 최저 신용등급 기준을 포함하도록 하는 요건이다. 투자기관은 신용등급이 일정 수준 이상인 채권에만 투자할 수 있으며, 이 기준은 ‘AA’ 등급 이상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규제는 인위적으로 신용등급을 요구해 신용등급 사용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아시아 채권 시장에는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규제감독도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중국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자’만이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제안돼 있는 상태다. 신용등급의 정의, 기준 또는 분석 과정 등을 감독 당국이 정해서는 안 된다. 규제 당국의 감독과 개입은 독립성과 객관성에 영향을 주며, 신용등급에 대해 보수적인 편견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각종 규제와 정부의 개입은 독립성, 객관성 및 신용등급의 시장 주도적 사용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따라서 채권시장 발전을 위해 아시아 각국 감독 당국은 방대한 지정 요건을 폐지해야 한다. 호주 미국 유럽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과 같이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가 2004년 말 발표한 신용평가기관 기초행동규범(Code of Conduct Fundamentals for Credit Rating Agencies)에 따른 행동규범을 채택하고 있는 신용평가기관을 인정하는 시스템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이 기초행동규범은 건전성 도덕성 투명성 및 신용평가기관 자체의 독립성과 객관성 등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지침이 된다.또한, 아시아 지역의 여러 신용평가기관이 다른 신용평가기관이 부여한 신용등급을 상호 인정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부도에 대해서도 일관성 있는 정의가 확립돼야 하며, 부도 관련 조사연구 자료가 정기적으로 발표되도록 해야 한다. 투자자 교육을 강화하고 각국 감독 당국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리스크의 측정과 가격 결정이 이뤄지는 신용 문화가 정착되도록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투명성의 함양과 리스크에 따른 가격 책정은 물론 차주(빌린 사람)를 정부나 은행이 구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과, 발행자와 투자자 간에 형성되는 독립적이고 동등한 관계, 채권자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법체계 등이 필요하다. 감독 당국, 금융시장 및 신용평가기관들의 적극적 협력 아래 건실한 신용 문화와 신용평가 관행이 정착된다면 채권시장은 물론 아시아 금융시장은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톰 실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1977년 미 노스웨스턴대 졸업. 80년 시카고대 역사학 석사. 82년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 87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입사. 91년 S&P 도쿄사무소 대표. 2004년 S&P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