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컬러 다양… 지적인 멋은 여전

더디게 겨울로 접어들었다. 얼마나 기다려 온 추위던가.겨울이 왔다는 것은 기온이 뚝 떨어져 추위를 느낌으로써 알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두터운 코트를 여며 입고 잰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도 실감할 수 있다. 이럴 때 두툼한 소재의 코트를 입는 것보다 얇고 가벼운 소재의 의상을 두세 벌 겹쳐 입고(layering) 그 위에 멋지고 가벼운 외투를 걸치는 게 더 따뜻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알지 못하는 듯하다.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필자는 자연스레 외출 시 입게 될 의상에 대해 늘 고민한다. 더구나 지인들 사이에서는 ‘패션리더 CEO’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그 날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장소에서 만나는지, 모임의 성격은 어떠한지, 심지어는 그날의 날씨가 어떠한지에 따라 의상 선택이 달라진다. 제법 쌀쌀하나 매서운 바람이 불지 않는 요즘 같은 겨울 날씨에는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고 한껏 멋을 내기에 좋다. 노트북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의상 역시 베이지 컬러 바탕에 골드 빛 버튼이 달린 트렌치코트다. 이쯤이면 아마도 눈치 빠른 독자들은 필자가 어떤 패션 아이템을 소개하려는지 알아차렸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 바로 트렌치코트다.영국군의 레인코트에서 유래트렌치코트의 실용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최신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트렌치코트의 정의와 그 역사를 알아보자. 트렌치코트의 트렌치(Trench)란 영어로 ‘도랑’, ‘참호’라는 뜻으로,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 안에서 착용한 영국군의 레인코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1856년 영국 햄프셔 지방에서 포목점을 경영하던 버버리(Burberry)사의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원단을 개발하고자 노력한 끝에 내구성이 강하면서 방한, 방수 효과가 있고 동시에 통풍이 잘 되는 기능성 신소재 원단인 개버딘(gabardine)을 세상에 내놓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전투용 외투로 이 개버딘이 이용된 덕분에 바람과 비가 잦은 영국의 궂은 날씨에도 병사들은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길이가 길고 넉넉한 박스형에 계급을 나타내는 견장, 수류탄을 걸 수 있게 만들어진 벨트의 D자 링, 강한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앞가슴을 덧댄 디자인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코트의 길이와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졌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여성들도 입게 되면서 일상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트렌치코트의 역사다.트렌치코트가 대중으로부터 사랑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실용적이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지적인 이미지에 우수에 찬 분위기를 내는 강렬한 인상이 그 어떤 옷과도 비견할 수 없는 아우라(Aura)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이미지는 1940~60년대 큰 인기를 누렸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영향 덕분이기도 하다. 두 젊은 남녀의 고독한 사랑을 그린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눌러쓴 모습으로 등장한 남자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와 아찔하게 허리라인이 강조된 짙은 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등장한 여자 주인공 잉그리드 버그만, 원피스에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걸쳐 입고 우아한 자태를 뽐낸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 슬픈 사랑의 추억을 담은 영화 <애수>에서 넓고 각진 어깨선이 돋보인 트렌치코트를 입은 로버트 테일러가 대표적인 사례다.150년이 넘은 긴 역사만큼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온 트렌치코트가 패션계에 찾아온 ‘브리티시 룩’ 즉, 영국식 패션 열풍에 힘입어 또 다시 크게 유행할 전망이다. 대신 예전에 비해 디자인이 보다 모던해졌으며, 세계적 여성복 디자이너 컬렉션에서는 트렌치코트로 드레스나 원피스도 만드는 응용력을 보이고 있을 만큼 트렌치코트는 그 개념이 점점 파괴되고 있다. 색상은 짙은 컬러에서부터 밝은 컬러까지 다양해졌다. 옷감의 소재 또한 모와 캐시미어뿐만 아니라 나일론, 폴리우레탄, 새틴, 에나멜비닐 등 광택감 있는 소재가 부상하고 있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며 양모 소재의 안감을 덧대 겨울에도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밖에 안감에 배색 처리를 하거나 다른 패턴을 넣은 것도 많은데, 특히 호피 무늬 등과 같은 애니멀 프린트는 여성용 트렌치코트의 안감에서 찾아 볼 수 있다.어깨선 피트되는 디자인은 젊어 보여버버리와 함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브랜드 아쿠아스큐텀(Aquascutum)은 오래된 브랜드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어깨선이 부드럽게 떨어진 모던하고 심플한 실루엣에 커다란 단추를 단 룩을 선보였다. 또 밝은 회색과 검정색 외에 라임(lime)색 트렌치코트도 선보였다. 디올 옴므(Dior Homme) 도 베이지 색상이 아닌 올 겨울 트렌드 컬러인 블랙을 사용해 트렌치코트를 젊게 재해석했으며 코트의 길이도 무릎 위로 짧게 제안해 키가 작고 슬림한 동양인에게도 잘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sum)은 기본 스타일에 충실하면서도 천 소재 대신 가죽과 금빛이 도는 광택소재를 사용함으로써 현대적 감각을 드러냈고, 모피를 트리밍(Fur Trimming)해 럭셔리한 분위기도 연출했다.하지만 트렌치코트의 소재 컬러 디자인 패턴 등이 다양해져 아무리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고를 줄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에 독자들에게 멋스러운 코디 연출을 위한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허리가 굵은 사람에겐 허리를 묶는 스타일의 트렌치코트는 더욱 뚱뚱해 보일 수 있어 위험하다. 이럴 땐 벨트가 없는 싱글 스타일이 실제보다 날씬해 보이도록 연출해 줄 것이다. 골격은 크지만 몸이 말랐다면 더블 트렌치코트로 남성적인 멋을 낼 수 있다.그러나 키가 작고 마른 사람은 더블 트렌치코트가 더욱 무거워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하자. 최근에는 정장을 차려 입어도 캐주얼한 느낌을 살려 젊어 보이고 싶어 하는 남성들이 부쩍 늘고 있다.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싶다면 상의는 노타이(No-tie)에 하의는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는 센스를 발휘해 보기 바란다. 트렌치코트와 함께 입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활동적으로 보인다.또한 젊고 민첩한 이미지를 위해서는 어깨선이 피트되는 디자인을 선택하되 색상은 블랙 혹은 네이비가 좋다. 체크무늬가 있는 것을 고르려면 체크가 큰 것(Big Check)을 고르고 색상은 요란하지 않아야 한다. 트렌치코트의 가격은 해외 명품 브랜드 쪽으로 눈을 돌리자면 보통 100만 원대부터 400만 원대까지 혹은 그 이상까지 가격이 올라가서 한 벌을 구입한다는 느낌보다는 투자해서 장만해야 하는 부담감이 앞선다. 그렇지만 국내 브랜드에서는 10만 원대부터 100만 원 이하까지 가격대별로 다양하게 시중에 나와 있으니 (특히 홈쇼핑) 자신과 어울리는 디자인과 색상을 찾아 자신만의 트렌치코트를 찾아보기 바란다.요즘 들어 트렌치코트는 전통 브리티시 트렌치코트의 클래식함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보다 편하고 정장과 캐주얼을 넘나들 수 있는 디자인이 많아지고 있으며 스타일링 또한 그렇게 제안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트렌치코트는 더 이상 회사를 다니는 ‘아저씨 버버리’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옷감 소재의 다양함과 탈 부착 가능한 따뜻한 안감이 있으니 겨울에도 그리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한 초봄에도 추위 걱정 없이 트렌디한 룩을 가볍게, 그러나 매우 따뜻하게 즐길 수 있다. 이제 트렌치코트를 새롭게 인식해 지적인 멋을 이해할 때다.황의건·(주)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쿼리대학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