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밍 ‘달인’… 지었다하면 ‘대박’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51)는 신제품을 내놓고 브랜드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해결의 단비를 내려 주는 사람이다. 크로스포인트는 브랜드 이름을 만들고 로고를 디자인하는 전문 네이밍 업체로, 크로스포인트 CEO인 그녀는 ‘장외고수’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네이밍 업계의 자타 공인 대표선수다. 다른 네이밍 업체의 결과물을 만족하지 못한 고객사가 비싼 가격을 치르면서까지 결국 최종적으로 찾은 네이미스트가 바로 그녀였고(한기선 두산주류BG 사장은 네이밍 업체를 두 번이나 바꾼 끝에 그녀와 손을 잡았다) 한 화장품 업체의 임원은 그녀의 수많은 히트작을 거론하면서 ‘무당’ 운운하기도 했다(이해선 아모레퍼시픽 부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손 대표 덕분에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면서 “우리 업계에서는 그녀를 무당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여성의류 베스띠벨리·씨(1990), 아기 기저귀 보솜이(1993), 화장품 식물나라(1995), 드럼세탁기 트롬(2001), 아파트 이안(2002), 공기청정기 청풍무구(2003), CJ 비트드럼(2004), 우리투자증권 오토머니백(2006), 롯데 식초음료 사랑초(2006) 등의 히트 브랜드가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올 들어서는 소주 업계 히트상품이 된 두산주류BG의 ‘처음처럼’을 내놔 ‘손혜원’이라는 브랜드가 다시 한 번 조명을 받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올해 초 두산주류BG가 시장에 첫선을 보인 ‘처음처럼’은 원래 ‘아하’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매 한 달 전 다급하게 손 대표에게 다시 네이밍 의뢰가 왔고 그녀는 2주 만에 ‘처음처럼’이라는 브랜드로 성공 포트폴리오를 다시 썼다. 손 대표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제품도 참이슬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리라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한 브랜드가 1위 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 소비자는 지루해하기 때문에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특히 소주는 소비자가 구매 전에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저(低)관여’ 제품이기 때문에 제품명이 매출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최근에 만든 새 브랜드는 현대건설의 ‘힐 스테이트’다. 수개월간 고민하다가 H로 시작하는 영어단어에서 ‘힐’(Hill)이 고급주택을 의미한다는 것에 착안해 하루 만에 결정했다.홍익대 미술대학을 나와 대기업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손 대표는 ‘브랜드가 뒷받침될 때 디자인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네이밍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1990년에 크로스포인트를 인수해 이름과 디자인을 합친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 방향을 잡았고 본격적으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네이밍 작업을 할 때 늘 제품의 본질부터 고려한다는 손 대표는 “유행에 따르기보다 제품의 본질을 반영하면서도 항상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강조했다. ‘본질에 충실할 때 변화가 가치를 낳는다’는 게 그녀의 신념이다. 결국 브랜드는 10년 이상 지속돼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얼마 전 그녀는 자신의 노하우를 풀어낸 책 <브랜드와 디자인의 힘>을 펴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소비자의 욕구와 시장의 판세를 읽는 마케팅 전략과 치밀한 전술, 커뮤니케이션이 결합됐을 때 디자인과 브랜드가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손 대표는 지식의 원천이자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으로 독서를 꼽았다. 그녀는 또 감성적 상상력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사무실에서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정원까지 갖춘 ‘가정식 오피스’를 고수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녀는 “CI, BI 등과 관련해서 네이밍 관련 사업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면서 “회사 오너보다 해당 브랜드를 더 사랑해야 좋은 브랜드를 지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약력: 1955년생. 홍익대 응용미술학과 졸업. 동대학원 시각디자인학 석사. 77년 현대양행 기획실 디자이너. 90년 크로스포인트 대표(현).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겸임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