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마케팅 귀재…‘집 아닌 문화 팝니다’

지난 2000년 3월 어느 날, 서울 여의도 하늘에 12인승 헬기가 떴다. 헬기에는 37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대우트럼프월드Ⅱ 사전청약자들이 타고 있었다. 실제 건물이 지어졌을 때의 높이로 날아올라 여의도와 한강의 풍경을 직접 보는 게 이들의 탑승 목적이었다.김신조 내외주건 대표가 진두지휘한 이 이벤트는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상복합이 요즘처럼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자리 잡지 못한 데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여파로 건설업체의 줄도산이 여전하던 때라 이목이 더욱 집중됐다. 게다가 이벤트 후 대우트럼프월드Ⅱ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100% 분양에 성공했다. ‘위험한 도전’이라며 우려하던 목소리는 곧 ‘마케팅의 힘’이라는 찬사로 바뀌었다.김 대표의 솜씨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약한 중소업체의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대형 건설사 브랜드에만 청약이 몰리는 분양 양극화 속에서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청약 타깃과 입지 등 갖가지 조건을 감안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분양 현장에 접목한 덕분이다. 실적이 쌓여가면서 김 대표에겐 ‘주택 업계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우방 주택사업부에서 10년간 근무한 김 대표는 지난 1999년 내외주건을 설립했다. 시공을 제외한 주택사업 전 과정을 커버하겠다는 창업 슬로건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주택사업 마케팅을 비롯해 상품기획, 전략수립, 부동산 개발, 컨설팅, 고객관계관리(CRM) 등에 역량을 고루 분산하고 있다. 특히 주택사업 마케팅에 관해선 ‘따를 자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웬만한 1군 건설업체치고 김 대표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그는 부동산 경기가 나빠질수록 바빠진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까다로운 프로젝트에 마주칠 때 주택 건설업체들이 ‘SOS’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부지 매입부터 시장조사, 상품 컨셉트, 타깃 설정, 가격 결정, 공급 시기 선택에 이르는 과정에 동반자로 참여한다. 모델하우스 안팎에서 펼쳐지는 각종 이벤트 역시 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용산 시티파크, 동탄신도시 메타폴리스 등 매머드급 프로젝트가 그의 손을 거친 것만으로도 지명도를 짐작할 수 있다.사실 김 대표는 주택 건설업계에선 유명한 마케터이지만 일반 수요자에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간혹 신문, 방송에 ‘전문가’로 등장하긴 해도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는 이가 태반이다. 이에 대해 그는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알려지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면서 “건설 부동산 업계가 도매금으로 ‘나쁜 쪽’으로 몰리는 것을 보면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그도 그럴 것이, 그는 건설 부동산 업계를 폄훼하는 시각을 바로 잡고 주거에 대한 이해 수준을 올리는 일을 본업만큼이나 중시한다. 지난 2003년부터 세계 곳곳의 주거문화를 담은 광고 없는 매거진 을 펴내 2만 명의 고객에게 무료로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또 40여 명의 직원을 수시로 세계 곳곳에 보내 ‘집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하고 있다. 이 역시 ‘주택사업 마케팅이란 집이 아닌 문화를 파는 일’이라는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 1년에 몇번씩 수천억 원의 대형 프로젝트를 주무르는 그가 “주택 건설업, 부동산 개발업은 인문사회 쪽에 가까운 일인 것 같다”고 말하는 데서도 남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그는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 예측이 불가능한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집값 잡기 해법에 대해선 ‘땅값’을 첫 손에 꼽았다.“집값은 땅값 잡기에 달렸습니다. 땅값은 보지 않고 집값만 비싸다 하고 있어요. 균형 개발한다고 해서 전국 땅값이 얼마나 올랐습니까. 집값을 잡으려면 뛰는 이유부터 따져봐야죠.”약력: 1963년생. 86년 영남대 경제학과 졸업. 1989년 우방 주택사업 담당. 97~99년 우방 주택영업팀장. 99년 내외주건 이사. 2003년 내외주건 대표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