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엉망이다. 잠재 성장률은 내리막길을 달리고 기업들은환율 하락에 따른 수익감소로 신음하고 있다. 청년 실업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부동산 가격은 끝없이 치솟고 있다. 가계 대출이 급증, ‘가계대란’마저 점쳐진다.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 묘수는 없을까. 국민들은 1년 앞으로 다가올 대선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국호를 수렁에서 구해낼 ‘경제 대통령’을 기다리는 것이다.이에 <한경비즈니스>는 경제 전문가 15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최고의 ‘경제 대통령감’을 선정했다.취재=변형주·감상헌 기자 / 홍영식·강동균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사진=서범세·김기남 기자‘차기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어야 한다.’<한경비즈니스>가 창간 11주년을 맞아 150여 명의 경제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대통령의 일이 많고도 많지만 의기소침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이 중차대한 임무의 적임자로 꼽았다. 지지율이 56.6%에 달해 2위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15.8%)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경제 문제 해결 능력만 보면 지지율이 더욱 높았다. 무려 67.1%였다.경제 전문가들이 중요시하는 경제 대통령의 자질은 대체로 일치했다. 경제 지식의 정도(25.0%), 기업 경영 경험 여부(19.7%), 정책 추진력의 강도(15.1%), 자치단체장 경험 유무(11.2%) 등이 주요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했다.이 전 시장을 미는 이유도 평가 기준과 어긋나지 않았다. 경제 지식이 풍부한 데다(41.9%) 기업 경영 경험(34.9%)도 많아 경제 문제 해결에 최적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추진력(22.1%), 서울시장 경험(19.8%) 등 다른 요소들도 평가 기준과 동일한 순서로 꼽혔다. 이 같은 결과는 현대맨 시절 이룬 업적과 청계천 복원공사, 중앙차로제 등 서울시장 당시 달성한 사업의 성과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2위를 차지한 손 전 지사의 선전도 이 전 시장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손 전 지사는 대학 교수를 역임한 학자다. 비록 정치학 교수였지만 경제에도 해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경기도지사 시절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월등히 많은 외자를 유치하는 등 경기도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적지 않다. 지식과 경험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배경을 갖춘 것이다.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고건 전 국무총리,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경제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보여 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 상위권 입성에 실패했다. 정치나 행정 분야에선 누구 못지않은 경륜가지만 최소한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인 것으로 해석된다.말이 쉬워 ‘경제’지 사실 따지고 보면 경제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수없이 많은 과제가 있다. 게다가 이들 과제들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한쪽에만 힘을 실었다가는 다른 쪽에서 사단이 나기 십상이다. 전체를 보는 안목과 균형 감각이 중요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어떤 일에나 우선순위가 있는 법. 아무리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실마리를 제대로 찾으면 의외로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현 한국 경제의 난국을 풀기 위해 1순위에 둬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우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경제를 다시 성장 궤도로 진입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32.2%). 분배도 좋고 복지도 좋지만 아직은 성장을 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부동산 문제 해결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16.4%). 집값 상승은 단순히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본의 예에서처럼 자칫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암초가 될 수도 있다. 일본도 이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데 10년 이상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집값 안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에 분명하다. 서민생활 안정(10.5%)과 성장과 분배의 균형(9.2%)도 서둘러야 한다고 나타났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계층간 양극화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해석된다.이 전시장 ‘무적의 경쟁력’ 과시이번 조사의 ‘스타’는 이 전 시장임에 분명하다. 거의 모든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해 ‘무적의 경쟁력’을 과시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일부 분야에선 2위와 박빙의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소득격차 해소’에서 서민적인 이미지가 강한 김 의장이 이 전 시장과 대등한 승부를 벌였다.경제 외의 분야에선 하위로 밀리기도 했다. ‘정치발전 및 민주주의 실현’ 부문이 대표적이다. 이 부문의 강자는 손 전 지사였다(23.7%). 2위는 근소한 차이로 김 의장이 차지했고(22.4%) 고 전 총리(20.4%)와 박 전 대표(11.8%)가 그 뒤를 이었다. 이 전 시장은 9.2%의 득표율로 5위에 그쳤다. ‘교육과 인재양성’, ‘복지’ 부문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손 전 지사가 26.3%로 ‘교육과 인재양성’에서, 김 의장이 33.6%로 ‘복지’에서 1위를 오른 것이다.흥미로운 사실은 전문가 그룹에 따라 ‘예비 대선후보’에 대한 평가가 적지 않게 차이가 났다는 점이다. 이 전 시장은 5개 그룹에서 비교적 고르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학계와 기업은 이 전 시장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하지만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상대적으로 박했다. 손 전 지사와 박 전 대표는 언론계 점수가 다른 그룹에 비해 상당히 낮게 나왔다. 고 전 총리는 언론계에서 강한 응원을 받은 반면 학계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예비 후보들의 ‘리더십’ 평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연령별로도 상당한 의견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경제 성장을 1차적인 과제로 꼽은 반면 부동산 문제는 ‘나중에’ 하라는 주문이 많았다. 젊은 전문가들은 성장이나 부동산 문제 못지않게 서민생활 안정이 급하다고 응답했다.정당에 대한 지지도도 조사했다. 어떤 정당이 집권해야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겠느냐에선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한나라당의 압승이었다. 지지율 50%로 열린우리당, 민주당을 큰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지지하는 이유에선 한나라당에 다소 부끄러운 결과가 나왔다. 한나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현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실망해서 지지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이다.이번 조사는 현재 거론되는 예비 대통령 후보들 중에서 최고의 ‘경제 대통령감’을 가리기 위해 기획됐다. 굳이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도 단순히 인기투표를 넘어 객관적인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우선 설문에 참여할 경제 전문가들을 5개 그룹으로 나누고 샘플수를 조정했다. 학계, 기업, 언론, 경제관련 기관, 경제부처 공무원 등 5개 그룹에서 각각 30명 안팎의 전문가에게 설문을 의뢰했다. 한쪽의 의견이 지나치게 반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조사는 글로벌리서치가 맡았고, 지난 11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1주일간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