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자의 몸을 보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키 170m에 50㎏을 겨우 채울 만한 몸집인데, ‘노가다’ 체질이라고 큰소리치니 말이다. 믿음이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의 ‘노가다’ 경력은 물경 20년. 10대부터 서른이 다 될 때까지 ‘노가다’를 해왔다. 아버지 덕이다. 중 1학년 때부터 시작한 연탄배달이 ‘노가다’의 시작인 셈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연탄가게를 보면서 주문도 받고 연탄 낱장 판매도 했다. 형제들이 내리 그 일을 돌아가며 했다.아버지는 연탄장수였다. 30년을 업으로 하시면서 7남 1녀를 키우셨다. 그게 우리의 자랑이자 아버지의 자랑이셨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곤혹스럽기도 했다. “연탄집 사나이는 검은 마후라”라고 놀려대는 또래의 짓궂음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섭섭함이 컸다. 8남매 모두 가게에 묶이다 보니 어린 날의 재미를 얻지 못했다. 폐결핵으로 쓰러진 일꾼을 대신해 배달을 하거나 건설현장보다 힘들어 내빼던 일꾼을 대신해 연탄을 날라야 했던 날도 많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갑갑해 보인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장사 아이템을 설정하는 데서도 장사의 논리 대신 사람의 논리를 택했다. 항상 하시는 말씀이 음식장사를 하면 가격결정이 어려운데 연탄장사는 가격이 정해져 있어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었다. 서울로 상경해 처음 포장마차를 하실 때의 경험이신 것 같다. 술장사, 밥장사는 가격을 맘대로 붙여 힘드셨다고 했다. 요즘의 경영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버지는 그랬다.그럼에도 신뢰경영에는 철저하신 것 같다. 연탄장사는 겨울 장사라 여름은 논다. 그래서 아버지는 얼음장사도 했다. 여름에 얼음 한 토막 가져오라는 주문이 오면 꼭 여분을 더해 잘라가셨다. 왜냐고 여쭈었다. 아버지의 말씀은 배달 도중 녹는 게 있으니 그것을 감안해 충분히 가져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표가 안 나도 말이다. 아버지는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이나 주변의 친척들에게 항상 떳떳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자식들 역시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연탄집 아저씨’지만 격조가 있으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형제는 취직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면 꼭 연탄장수 아버지의 아들이란 것을 당당하게 밝혔다.아버지는 자식교육에 큰 신경을 쓰지는 못하셨다. 7남 1녀를 키우기가 어디 쉽겠는가. 큰형을 진학시키지 못한 것에 늘 미안해 하셨다. 여섯째인 필자부터 제대로 대학에 진학했을 뿐 형들이나 누나는 그렇지 못했다. 필자 또한 자신의 힘으로 대학을 다녀야 했던 형들에게 늘 미안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교육관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등록금 시즌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꼭 ‘연탄을 들일 때’ 주시곤 했다. 공장에서 차가 와서 연탄을 창고에 쌓을 때 주셨던 것이다. 그 연탄 들이는, 땀을 흘리는 현장을 한 번이라도 봐야 등록금을 주셨다. 자식들은 연탄이 다 쌓이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등록금을 받을 수 있었다. 등록금에 묻은 땀의 의미를 그렇게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그런 아버지가 어려웠다. 원칙이 센 어른들은 대개 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필자가 대학 3학년일 때 가게를 접으신 뒤로는 많이 약해지셨다. 환갑을 넘기신 후에는 술맛을 알아버린 자식의 취중 횡설수설에 못마땅해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씩 받아드리는 약주를 무척 좋아하셨다.드문드문 드리는 담배 보루도 반가워하셨다. 그렇게 엄하게만 보였던 아버지는 필자가 늦은 시간까지 책을 쓴답시고 끙끙댈 때 우유며 과일을 챙겨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필자의 결혼을 못 보시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3년을 의식도 없이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다. 그사이 자식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며느리며 손자들을 귀여워하셨을 아버지의 빈자리가 쓸쓸하다. 행복의 이면은 늘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이 채우는가 보다. 아버지, 보고 싶네요.글 / 최용범 페이퍼로드 사장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신고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사회평론 길> 기자와 더난출판사 기획팀장을 거쳐 전문집필가와 프리랜서 출판기획자로 활동했다. 베스트셀러 <한국의 부자들>을 기획했으며 올해 경제경영 출판사 페이퍼로드를 창업했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13인의 인물-역사인물가상인터뷰>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