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3년… 정책 바래도 입안자 건재

최근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추석연휴 이후 시작된 집값 오름세는 정부의 신도시 계획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어지고 있다. 10·29대책, 5·4대책, 8·31대책, 3·30대책 등 그 수많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안정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마침 지난 10월29일은 2003년 발표된 10·29대책의 3주년이 되는 날. 10·29대책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첫 단추였다. 종합부동산세와 주택거래신고제도 도입, 1가구 3주택자 양도소득세 60% 중과 등이 핵심 내용으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골간을 형성하는 것들이다. 이후 발표된 5·4대책, 8·31대책 등은 10·29대책 내용을 더욱 강화하거나 보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아이로니컬하게도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기반이 된 10·29대책 3주년을 전후해 집값이 폭등하고 있는 모습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실패작들을 양산한 정책 입안자들은 누구였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우선 10·29대책 수립 때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은 경북대 교수 출신인 당시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과 도시빈민운동가였던 김수현 대통령 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비서관이었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사상적·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설계자들이었다. 특히 청와대 안에서 부동산 전문가로 꼽히는 김비서관은 10·29대책을 만드는 데 중추 역할을 했다. 지난 85년 서울 사당동 철거민운동을 주도한 이력을 가진 그의 주택시장에 대한 시각과 정책철학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어쨌든 이실장은 이후에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거치며 참여정부 분배정책을 주도하다가 지난해 7월 물러나 지금은 경북대 교수로 돌아간 상태다. 김비서관은 지금도 청와대 정책실 사회정책비서관으로 남아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정책실패 불구, 훈장 받기도청와대에서 이정우 실장과 김수현 비서관이 10·29대책의 큰 틀을 짰다면 재정경제부 쪽에서 살을 붙인 것은 당시 김진표 부총리(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와 김영룡 세제실장(국방부 기획관리실장), 이종규 재산세제국장(코스콤 사장), 정병태 국민생활국장(BC카드 사장) 등이었다.10·29에 이어 또 한 번의 굵직한 부동산 대책이 2005년 8·31대책이다. 이때도 역시 청와대에선 김수현 비서관이 등장한다. 다만 이정우 실장의 지휘봉을 김병준 정책실장과 정문수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이어받았다.특히 김실장은 8·31대책을 전후해 “헌법보다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 대책을 만들겠다”, “세금폭탄은 아직 멀었다”는 등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총리에 임명됐다가 논문표절 파문으로 물러났으나 최근 다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으로 돌아와 건재함을 과시했다.정부 쪽에서 8·31대책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등이다. 이들 중 8·31대책 수립을 위해 거의 두 달에 걸쳐 8차례의 당·정·청협의회를 이끌었던 이총리는 ‘3·1절 골프’ 파문으로 낙마해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 남아 있다.8·31대책을 직접 발표하며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고 선언한 한부총리는 지난 7월 부총리에서 물러나 지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체결 지원위원장을 맡고 있다. 추장관은 현재도 건교부 장관으로 남아 최근까지도 “국민들이 뭘 몰라 집값이 오르고 있다. 지금 집을 사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정부 측에서 8·31대책 수립의 실무를 맡았던 당시 재경부 김석동 차관보, 김용민 세제실장, 건교부의 권도엽 주택국장 등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8·31대책 실무단장을 맡았던 김차관보는 최근 차관급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김세제실장도 역시 차관급인 조달청장으로 올라갔다. 권국장은 8·31대책 발표 직전 정책홍보관리실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국세청에서 부동산 정책을 측면 지원했던 전군표 국세청 차장 역시 청장으로 영전했다.당시 김용민 실장, 권도엽 실장, 전군표 차장 등 3명은 8·31대책을 수립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황조근정훈장까지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