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공학의자로 400억 매출 ‘거뜬’

지난 2003년 초 의자전문업체인 듀오백코리아 사무실에는 ‘구름다리를 건너’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당시 이 회사는 본사와 공장을 인천 남동공단에서 가좌동으로 갓 옮겨 생산시설과 인력이 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여서 밀려드는 주문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관영 사장(34·당시 부사장)이 본사 사무실로 와서 웃는 얼굴로 “구름다리를 건너가시죠”라고 하면 사무·관리직 직원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는 생산현장으로 향했다. 정사장도 직접 작업복 차림으로 제품 조립라인에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웬만한 현장 직원을 능가하는 생산능력을 뽐냈다.‘2세 경영인’인 정사장에게 제조현장만큼 친숙한 곳은 없다. 듀오백코리아는 1987년 설립된 해정산업으로 출발했다. 창업주인 부친 정해창 회장(66)은 법인 설립 이전부터 가구공장을 운영하면서 의자만 만드는 외길을 걸어왔다. 정사장은 어릴 적부터 집과 바로 붙어 있던 공장을 놀이터 삼아 지내며 의자 만드는 작업을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주말이면 공장 청소를 하거나 직접 의자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작업을 할 만한 나이가 돼서는 틈틈이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바쁜 일손을 거들기도 했다정사장은 호주 그리피스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하고 1999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들어왔다. 입사한 후 처음 맡은 일은 의자를 조립하는 작업. 어릴 때부터 눈으로 보고 자랐지만 의자가 만들어지는 생산시스템을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납품, 영업 등 유통의 최전방에서 두루 경험을 쌓다가 기획실장과 부사장을 거쳐 지난 2004년 입사 5년여 만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정사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친화력과 리더십을 발휘하며 회사를 국내 대표적인 의자전문업체로 발전시켰다. 입사 이후 관리 부문을 사실상 총괄하면서 회사를 체계화시키고 생산성 향상에 힘쓰는 한편 코스닥 상장, 듀오백 특허권 취득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어릴 때부터 몸으로 배운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유학 시절 익힌 국제적인 비즈니스 감각과 타고난 뚝심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입사 당시 4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지난해에 423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순익도 매출의 15% 수준인 65억원을 올리는 등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정사장은 인체공학 의자를 만드는 업체의 CEO답게 “의자도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강조한다. 일을 하거나 공부하면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의자는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소비자들이 의자를 ‘쓰다 망가지면 버리는 것’이나 ‘책상이나 식탁에 딸려 오는 것’ 등으로 하찮게 여길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정사장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의자에 앉아서 보내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앉아 있는 동안 허리와 척추 등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마련”이라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체형에 맞고 허리와 척추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의자를 선택해야 허리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듀오백코리아는 등받이가 두 개인 기능성 의자인 ‘듀오백’ 의자를 만든다. 이 의자에 적용된 ‘듀오백’ 기술은 같은 무게라도 배낭을 지고 걸으면 무게가 덜해지는 배낭효과를 이용한 것으로 허리에만 집중되던 하중을 등에 골고루 전달한다. 두 개로 분리된 등받이와 3차원적 특수 작동 고무는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해 근육과 요추 부위에 마사지하는 효과를 제공한다. 또 사용자가 수시로 자세를 바꾸더라도 척추와 등 근육을 견고하게 감싸줘 허리에 가해지는 하중을 약 20㎏ 정도 줄여주는 효과를 얻어 앉아 있는 동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정사장은 설명했다.이 기술은 독일인 물리학자가 개발해 특허를 갖고 있던 것으로 듀오백코리아는 사용권리를 갖고 있던 독일 그랄(Grahl)사와 국내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95년부터 듀오백 의자를 만들었다. 이 기술의 잠재 가치를 높이 평가한 정사장은 독일의 원래 특허권자와 협상을 진행해 2004년 1월 ‘듀오백’ 특허권과 전세계 판매권을 획득했다.정사장은 특허권 취득 이후 이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취임 첫해인 2004년에 회전식 좌식의자 및 여성용 의자 ‘듀오백 레이디’를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성장기 어린이용 인체공학 의자인 ‘듀오백 키즈’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수험생용 인체공학 의자를 내놓는 등 나이나 성별, 용도별로 특화된 맞춤형 의자를 잇달아 선보였다.공공부문의 조달시장 공략도 본격화했다. ‘듀오스쿨’과 ‘수강용 의자’ 등 20여종의 제품을 조달청 물품으로 등록하고 전국 100여개에 이르는 교육기관 전문 유통망도 구축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조달시장에서만 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정사장은 CEO가 된 후에도 하루에 서너 차례 공장을 돌아보며 생산현장을 꼼꼼히 챙긴다. 그는 “제조업체는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CEO가 생산현장의 모든 부문을 잘 알아야 한다”며 “지금도 공장에 가면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의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정사장은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듀오백코리아는 사출전문기업 덕진하이텍, 분체·도장 전문기업 듀오칼라, 프레스전문기업 진우정밀, 프레임 용접·벤딩 전문기업 정한테크 등 4개 협력업체들과 한 지붕 밑에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자랑한다. 이들 업체는 듀오백코리아에만 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제품기획부터 애프터서비스까지 전 공정을 함께 책임진다. 정사장은 “협력업체에 100% 현금 결제 원칙을 지키고 직원복지나 작업환경에 있어서도 본사와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강조했다.정사장은 올 초 의자 브랜드 ‘듀오백’의 명품화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바코드를 활용한 정품인증제와 ‘3년 무상 애프터서비스’ 제도를 도입했다. 그는 “듀오백이 지난해 의자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71%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모으면서 공들여 신제품을 개발해도 3개월이 안돼 불법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며 “가격이 싸서 구매했는데 아무래도 제품이 이상하다는 고객의 항의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사장은 “듀오백코리아가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1등’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찾은 해답이 정품 마케팅”이라고 설명했다.정품인증제는 제품을 구입한 고객이 의자에 찍혀 있는 바코드 번호를 듀오백코리아 홈페이지(www.duoback.co.kr)에 입력하면 회사에서 3년 동안 제품에 대한 무상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서비스 소요시간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 체제도 구축했다. 홈페이지에서 구입 모델의 도면을 찾아 고장난 부위를 클릭하면 필요한 부품이 자동으로 배달되도록 했다. 정사장은 “듀오백 의자는 모든 부품이 규격화돼 있는 조립식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집에서도 쉽게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정사장은 듀오백 특허권 취득을 계기로 지난해 해외 마케팅팀을 신설하는 등 세계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일본과 인도, 중동지역의 박람회에 참가하고 호주, 러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테스트마케팅을 벌여왔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일본에 6,200개의 의자를 수출해 약 5억원의 매출액을 올리기도 했다. 정사장은 “지금까지는 내수에 주력했지만 올해는 해외시장 진출에 힘써 일본뿐 아니라 호주, 중동, 싱가포르 등으로 수출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그는 9월13일 서울시 목동에 기업 부설 ‘인간공학 디자인 연구소’(소장 장성찬)를 개설했다. 이곳에서는 가구 및 산업디자인 전문인력 10여명이 소비자들의 신체조건 및 근무·학습환경 등을 최대한 반영한 제품개발에 나선다. 정사장은 “단순 디자인에서 벗어나 인체에 대한 각종 과학적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해 듀오백코리아의 기업 모토인 ‘편안함’을 더욱 증대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 일본, 독일 등 연구소들과 협력 시스템 및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해외진출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국내 관련 대학 연구소들과의 산학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정사장은 “전세계에서 ‘명품’으로 인정받는 기능성 의자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기능성 의자 하나만으로 연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미국 허먼밀러사의 ‘에어론’ 못지않은 명품을 내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약력:1972년 충남 천안 출생. 91년 한성고 졸업. 98년 호주 그리피스대 졸업 및 듀오백코리아 기획실장. 2003년 부사장. 2004년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