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심플함’ 돋보이는 패션코드

‘스니커즈’란 살금살금 걷는 사람이라는 스니커(sneaker)에서 비롯돼 붙여진 이름으로 신발의 밑창이 고무로 된 운동화를 말한다. 현재 패션에서의 스니커즈는 운동화라는 의미보다 유행의 최첨단 아이템으로 대접받고 있다. 스니커즈는 검정 구두, 흰색 운동화만 신어왔던 재미없고 매력적이지 못한 한국남성의 패션을 매우 쉽게 바꿔줄 수 있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며칠 전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이동하던 중 길가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됐다. 그는 일반 한국남성 몸매에서는 보기 드문 쭉쭉 뻗은 팔다리에 작고 기가 막히게 잘 생긴 얼굴을 한 그야말로 ‘꽃미남’(우리 남자들의 경계 대상)이었다. 첨단 유행 의상을 걸친 그는 단지 실루엣으로 100m 밖에서도 금방 눈에 띌 만큼 멋있었다. 하지만 그를 죽 훑어보고는 ‘아차’ 했다. 그의 신발 선택이 너무도 아쉬웠기에….1990년대 초에나 신었을 법한 앞코가 넓적한 투박한 그의 검정 구두는 필자를 좌절시키는 동시에 왠지 위안이 됐다. 그리고 그의 뒤쪽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아디다스 매장으로 데리고 가 얼른 아디다스 슈퍼스타 스니커즈를 한 켤레 권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당신의 패션스타일과 성격에 어울리는 스니커즈는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과 당신 자체를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다.수많은 종류의 스니커즈 가운데 자신의 성격과 이미지에 부합되는 스니커즈 브랜드를 찾거나 상황에 맞게 여러 스니커즈 브랜드를 자유자재로 매치시키는 것은 분명 신나는 일이다. 특히 액티브한 남성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80년대 말 패션코드의 중요한 아이템의 하나로 등장한 스니커즈는 9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지나며 더욱 세련되게 진화했으며 수많은 스니커즈 브랜드와 스타일링 방법을 양산시켰다. 하지만 항상 변하지 않는 스니커즈의 패션코드는 바로 절제된 심플함에 있다.예를 들어 아디다스는 산뜻하고 스포티한 3개의 선이 돋보이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심플한 디자인은 아디다스가 스포츠웨어 브랜드뿐 아니라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다.아디다스는 예전에 사용하던 특유의 새싹 모양 로고를 다시 쓰면서 아디다스의 클래식함을 모던화시키고 있다. 빈티지 운동화의 디자인을 살리고 다양한 컬러를 매치시켜 어떤 브랜드도 따라할 수 없는 아디다스만의 특유 라인을 선보이고 도시적 클래식함은 어떤 옷에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스니커즈로 컴백했다. 단 이것을 복고풍이라 생각하면 안된다.이것은 엄연한 디자인 혁신이며 아디다스는 더 이상 운동화가 아닌 스니커즈의 한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운동화는 문화가 됐으며 사회적인 현상이 됐다. 세계적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푸른 잔디에서 축구를 할 때가 가장 멋있고 빛나지만 그의 스타일은 그가 운동선수로만 남기에 너무나 패셔너블하다. 빨간 티셔츠에 구제 청바지를 입고 아디다스의 빨간 삼선 운동화를 신은 베컴의 패션은 어디서 얼마에 샀는지 달려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멋있다. 베컴의 뛰어난 외모와 패션감각은 잘 입기를 갈망하는 당신의 마지막 도착점이 될 것이다.전세계인이 사랑하는 미국배우 톰 크루즈도 베컴의 아다디스 스니커즈 이미지처럼 나이키와 닮은 점이 있는 듯하다. 둘 다 너무나도 미국적이라는 것, 그리고 잘생겼다는 것이 그렇다. 영화 <미션임파서블>에서 크루즈는 티셔츠에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신고 끊임없이 달린다. 영화도, 그도, 그의 스타일에서도 자유분방한 미국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언젠가 할리우드 파파라치 컷에서 뉴욕 양키스 캡을 쓰고 빈티지진에 내추럴한 나이키 스니커즈를 신은 그를 본 적이 있다.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시상식의 레드카펫에서 보여준 화려하고 딱 떨어지는 슈트를 입었을 때보다 더 매력적이고 세련돼 보였다. 이날 그의 나이키 운동화에서는 성공한 남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졌고 그의 자연스러운 멋과 건강한 모습은 영화에서보다 더 빛났다.만약 당신의 인생에 미션임파서블이 존재해 힘겨워하고 있다면 구두를 잠시 벗어두고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을 줄 것 같은 나이키 스니커즈로 기분을 전환해 봐라.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미션을 성공하게 될지도 모르니까.30대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경쾌한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스니커즈를 말끔한 정장차림에 매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운동화는 영원한 단짝일 것만 같았던 트레이닝복을 내몰고 패션의 필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운동화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90년 축구용품 브랜드인 푸마가 세계적인 디자이너 질 샌더와 손을 잡으면서부터다.명품 디자이너로 무장한 스포츠 브랜드는 점심시간에 점심도 거른 채 미친 듯이 농구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찾는 게 아니라 고급 바에서 와인을 즐기는 패셔니스타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푸마는 질 샌더에 이어 일본의 신발디자이너 미하라 야스히로와 공동작업을 하면서 뻔한 운동화를 펀(fun)한 스니커즈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디자인은 스포츠 브랜드가 고수해야 하는 기능성과 편안함뿐 아니라 다양한 컬러와 유니크한 그만의 디자인으로 스니커즈 마니아와 일반 소비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다.가벼운 미팅이나 모임이 있을 때 당신이 입는 점잖은 슈트에 푸마 미하라 코업을 매치해 보자. 당신이 한 번쯤 상상해 봤던 배우 조인성 스타일을 단지 신발 하나로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시상식장에서 독특한 의상을 멋있게 소화해내는 조인성만 파격적이란 법은 없다. 푸마 미하라 코업 라인으로 당신의 지루한 일상을 한번쯤 펀(fun)하게 바꿔보자.이쯤에서 영화 <트레인스포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 전 이완 맥그리거는 이 영화에서 스키니룩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는 구제 진과 스니커즈의 교과서인 캔버스를 매치해 많은 젊은이들에게 스키니룩(몸에 달라붙고 실루엣이 슬림한 패션코드)의 교본을 제시했다.스키니진과 캔버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스키니룩은 나이가 좀(?)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높은 장벽과도 같고 시도하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설사 용기를 내어 시도한다 할지라도 여자친구에게 크게 비난받을까 무섭기만 하다.캔버스는 의외로 정장에도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지난 백상예술대상에서 주지훈은 흰 재킷에 캔버스화를 신어 깔끔한 스타일을 연출해 포멀한 차림에도 캔버스가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달라붙는 슈트에 검정 구두 사이로 산뜻한 흰색 고무가 눈에 띄는 캔버스를 신은 주지훈의 패션은 레드카펫의 작은 혁명이었다.캔버스의 또 다른 장점은 자신만 아는 비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니커즈는 키를 가감 없이 보일 수밖에 없는 단점 아닌 단점을 갖고 있으나 하이 캔버스에 살짝 키를 높이기 위해 밑창을 넣는다면 다리길이에 자신 없어 구두만 고집했던 당신도 스니커즈를 신고도 괜찮은 옷발(?)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남자에게는 꾸밀 수 있는 액세서리나 소품이 한정돼 있기에 신발은 놓칠 수 없는 가장 중요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많은 여성이 처음 남성을 만날 때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가 센스 있는 신발임을 기억해라. 유행이 한참 지난 낡은 검정 구두에 대한 집착을 잠시 잊는 건 어떨까. 마니아는 아니더라도 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스니커즈는 구두보다 개성이 있으면서 오래 신어 낡을수록 더 멋스러우니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아이템이다. 스니커즈 마니아가 되라거나 스니커즈의 의미를 하나하나 따지라는 것이 아니다.지금 당신이 할일은 당신의 스타일에 맞는 스니커즈를 장만해 지루했던 당신의 신발장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하루 종일 답답한 검정 구두에 갇혀 있던 당신의 발을 기분 좋게 위로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니커즈의 재미다.황의건·(주)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쿼리대학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