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삼성전자 부회장약력 : 1944년 경북 영천 출생. 62년 경북대 사대부고 졸업. 66년 서울대 전자공학 졸업. 삼성그룹 입사. 77년 삼성전자 도쿄지점장. 79년 기획조정실장. 84년 상무이사. 85년 종합연구소장. 90년 가전부문 대표. 92년 삼성전기 사장. 93년 삼성전관 사장. 95년 일본 본사 사장. 97년 총괄사장. 2000년 대표이사 부회장(현).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현).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현). 서울대 경영대 초빙교수(현)“우리의 목표는 세계 톱3 전자업체 진입이다.”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애널리스트 데이’(11월3일)에서 밝힌 미래 비전이다. 스케줄은 2010년까지. 세계 1위 제품을 현재의 8개에서 2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매출은 2004년 대비 2배가 목표다. 덩치ㆍ내실 모두 초일류기업에 걸맞게 키우겠다는 메시지다. ‘디지털 컨버전스 혁명’을 주도하기 위함이다. 엄청난 청사진임에도 불구, 삼성전자의 ‘장밋빛 전망’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만큼 삼성전자의 파워와 잠재력이란 게 대단하다. 삼성신화는 공동작품이다. 숱한 삼성맨들이 쏟은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그 중에서도 입사 40여년의 ‘원조 삼성맨’ 윤종용 부회장이 대표적인 공로자다. 일등공신으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탁월한 업적을 발휘했다.<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올해의 CEO’ 결과도 비슷했다. 윤부회장은 2002~2005년까지 4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CEO’로 꼽혔다. 신기록이자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확고부동한 ‘한국대표 CEO’로 손색이 없다는 얘기다. 특히 추천횟수도 매년 탄탄해지는 추세다. 올해만 해도 윤부회장의 종합점수 84.58은 가장 높은 수치다. 9개 부문의 세부 점수도 편차 없이 거의 1위권에 근접했다. 한 응답자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윤부회장만큼 탄탄한 입지와 존재감을 갖춘 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정통 삼성맨이다.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과 동시에 삼성에 입사한 뒤 40년 가까이 삼성맨으로 살고 있다. 특히 입사 이래 전자ㆍ전기 쪽에서 줄곧 한우물만 팠다. 삼성전자의 대표 CEO답게 입사 후 핵심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 기획조정실장과 TV사업본부장, 종합연구소장 등 엘리트 코스를 빠짐없이 밟았다. 90년엔 ‘별 중의 별’이라는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97년엔 삼성전자 총괄대표이사에 올랐다. 현재 공식직함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회사 직제로 보면 위엔 오너인 이건희 회장뿐이다. 결국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최고위 직책까지 오른 셈이다. 그가 대한민국의 수백만 샐러리맨들에게 희망이자 우상으로 떠오른 배경이다. 한편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과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도 겸직하고 있다.‘No.1’ CEO 윤종용은 사실 나라 밖에서 더 유명하다. 글로벌 ITㆍ전자업계에선 빌 게이츠 MS 회장만큼 유명인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관련회의ㆍ전시회에선 단골 기조연설자다. 가깝게는 지난 11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월드사이버게임즈’(WCG)에서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개막연설을 했다. 최근엔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앞서 로마에서 펼쳐진 성화봉송에도 주자로 참가한 장면이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얼마 전 <포춘>지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리더 25인’ 순위에서 윤부회장을 1위에 꼽았다. 미국의 투자전문지 <배런스>지는 지난 3월 ‘세계 30대 최고경영자(CEO)’에 윤부회장을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한국의 간판 CEO다운 대접이다.윤부회장의 성공비결은 몇몇 법칙으로 요약된다. 우선 ‘스피드경영’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그는 시대변화를 읽고 트렌드를 잘 포착해내는 심미안의 소유자다. 삼성전자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기를 사업 성장의 기회로 삼았던 건 그의 스피드경영이 반영된 대표적 사례다. 디지털업체로의 변신 성공은 삼성전자에 확고한 입지와 주도권을 안겨줬다. 윤부회장은 “디지털시대엔 단 2개월만 늦어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스피드와 정보가 관건이며 한 번 승자가 영원한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평가한다. 미래 통제는 핵심기술의 선두 유지를 통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초밥이든 휴대전화든 부패되기 쉬운 상품의 핵심은 스피드”라며 “값비싼 생선도 하루 이틀이면 가격이 내리듯 디지털업계에 재고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원천기술의 발 빠른 상용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메시지다.‘위기론’도 뺄 수 없다. 첨단기업 CEO로서 그의 위기의식은 남다르다. 자칭 ‘혼란제조기’(Chaos-maker)로 부를 만큼 위기를 당연시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위기의식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동력으로 삼고자 했다”며 “어느 날 우리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항상 지니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때문에 가장 잘나갈 때가 가장 위험하며, 그때 더욱 조심할 것을 임직원들에게 늘 강조한다. 저서 <초일류로 가는 생각>에서도 위기의식은 많은 부분에 할애됐다. 망하지 않으려면 늘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위기극복을 위한 기업경영이란 혁신의 연속이며, 그 혁신엔 고통과 인내력이 요구된다.비전 제시도 탁월하다. 그는 ‘초일류’라는 목표 달성을 통해 조직 역량을 한껏 집중시켰다. 실제로 ‘초일류기업에의 진입’이란 비전은 최근 화려한 결과물로 되돌아왔다. 사상 최대의 매출을 비롯해 글로벌 메이커로서 입지를 다지는 다양한 전리품을 획득했다. 그는 “이미 초일류의 가능성은 발견했다”며 “이제는 과거의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을 버리고 모든 분야에서 앞장서고 개척하는 경영체질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한다. 앞선 기술ㆍ제품을 뒤좇는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 안주해선 곤란하다는 긴장감의 표현이다.덕장(德將)의 이미지도 강하다. 한국의 CEO들에게선 좀체 찾아보기 힘든 ‘열린 귀’의 소유자다. 하부 조직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경영 스타일은 사내외에 평판이 자자하다. 이는 윤부회장의 성공 DNA 중 하나인 ‘인재경영’과 밀접히 연결된다. 그는 인재등용ㆍ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는 “디지털시대엔 미래를 책임질 우수인재를 얼마나 갖췄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특히 과학기술 인력의 수급문제는 이미 국가 위기로 임박했다”고 전한다. 삼성전자가 엄청난 봉급ㆍ특혜를 주면서 핵심인력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다.‘격물치지’(格物致知)의 현장경영도 그의 성공키워드 중 하나다. 격물치지란 한 가지에 깊이 몰두ㆍ연구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그는 임직원들에게 뭐든 만져보고 느껴보고 경험해 보고 토론하고 고뇌할 것을 권한다. 이렇게 알게 되면 탁상공론을 경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격물치지에 근거한 접근법은 지식뿐 아니라 지혜까지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윤부회장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현장에 있다”며 “현장에 귀 기울이고 현장을 가까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힌다. 격물치지는 끊임없이 변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한국기업의 대표주자다. ‘삼성이 하면 1등’이라는 평가는 그룹 안에서도 삼성전자가 그 원류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윤부회장의 말처럼 ‘강한 자’가 아닌 ‘환경에 잘 적응한 자’로 살아남았다. 삼성전자 성장 스토리엔 윤부회장의 체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그는 ‘위계사회의 이단자ㆍ기술마법사’라는 외신의 평가처럼 오늘의 삼성전자를 일으킨 주인공이다.삼성전자는 한국 전체 수출물량의 16.3%(2004년 기준)를 담당한다. 89조7,051억원의 시가총액(12월13일 종가 기준)은 1위 붙박이다. 올해는 단일기업 중 최초로 수출 400억달러를 달성했다. 81년부터 올해까지 25년간 연속 흑자경영이 확실시된다. 올해 역시 사상 최고 실적이 예상돼서다. 반도체ㆍLCDㆍ휴대전화의 삼각 황금분할이 주효했던 결과다. 이미 지난해에 ‘순익 100억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브랜드 가치는 149억달러로 세계 20위권이다. R&D인력은 2003년 말 대비 1만명 이상 늘었다. 미 특허청 특허등록 현황을 보면 2002년 11위(1,329건)에서 2004년 6위(1,604건)로 껑충 뛰었다. 윤부회장은 이 신화를 진두지휘한 최고의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