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매칭·선물환 등 통해 관리… 생산거점 다변화도 꾀해

기업들은 환율 급등락으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특히 수출기업들은 환율 1원, 2원의 움직임에 웃고 웃는다. 순식간에 경영실적이 흑자에서 적자로, 또는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환리스크 담당자들은 “경영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주요인 중 하나가 환율”이라며 환율관리의 중요성을 거듭 역설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환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기업들은 주로 외화자산과 차입금을 조절하거나 파생금융상품 등을 활용해 환위험 관리에 나선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상계(Netting)나 매칭(Matching) 등 회사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상계’는 글로벌 기업의 본사와 지사 또는 지사간에 발생하는 채권과 채무관계로 일정시간이 경과한 뒤 차액만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매칭’은 외화자금의 유입과 지급을 결제 통화별ㆍ만기별로 일치시켜 외화자금 흐름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환위험을 제거하는 기법이다. 선물환도 종합상사 등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는 환리스크 관리 기법의 일환이다. 미래에 수출대금으로 들어올 외화(달러)의 매각 환율을 현시점에서 확정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선물환이라고 부른다.지나친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환리스크 관리의 핵심 요소다. 수출지역을 다원화하고,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나 현지 화폐로 하는 것이다.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모든 통화가 달러 대비 강세로 돌아서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원화가치가 올라가면 유로화도 어느 정도 절상되곤 한다. 해외에서 조달, 생산, 판매체계 등을 구축하는 현지화 전략도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길이다.이밖에 고기능,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환율 급변동 같은 외부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수준에 이르는 것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환율전략이다.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이 1,000원 미만으로 떨어져도 당당히 버틸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들 기업은 환율변동에 따라 대응전략을 수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별도의 환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는 정말 환율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환율이 10원, 20원 떨어졌다고 해서 난리법석을 피우기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삼성전자는 100원, 200원씩 뚝 떨어져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경영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1달러 900원’에도 버티는 원가경쟁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달러화 자산을 줄이면 자연스레 환율 하락에 당당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생산기지를 분산하고 판매처를 다양화하는 것도 달러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포석이다.LG전자도 마찬가지다. LG전자는 2005년 환율 여파로 매출 1조원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LG전자의 환리스크 관리는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수출입 통화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대신 유로화 등 달러 이외의 통화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둘째, 환율변동에 따라 외화 매출채권, 매입채무 잔액 및 외화 지급시기를 조정하는 등 시나리오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받을 외화와 줄 외화의 타이밍을 조절해 위험관리를 하겠다는 뜻이다. 글로벌 생산거점을 확대하는 것도 환율전략의 일환이다. 중국 이외에 인도, 브라질, 멕시코, 러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에 글로벌 생산거점을 세우고 있다.해외시장에서 무서운 기세로 약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환리스크 관리에서도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단순히 원가절감이나 긴축경영 같은 소극적 방안을 수립하기보다 적극적인 대처로 일류기업 진입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는 수출지역과 생산기지 다변화가 좋은 사례다. 인도 첸나이와 미국 앨라배마에 공장을 지은 데 이어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에도 현지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판매 차량의 평균가격을 높여 환율하락에 따른 손실을 상쇄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판매차량의 품질을 높여 고가로 판매하면 환율이 떨어져도 일정 규모의 이익은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은 “예측을 불허하는 환율변동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품질과 기업에 대한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종합상사는 환율에 가장 민감한 곳이다. 무역거래에서 생기는 마진은 기껏해야 5% 미만이다. 환율관리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할 경우 영업이익이 모두 환손실로 사라질 수도 있다. 종합상사들은 선물환 시스템을 도입해 환리스크를 100% 관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12월1일 1,150원의 환율로 1,000만달러의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한달 뒤 대금을 받을 때 환율이 1,100원으로 하락하면 5억원을 앉아서 손해 보게 된다. 하지만 선물환 거래를 통해 미리 12월1일에 1,000만달러를 1,150원으로 매도하는 선물환 계약을 맺어두면 손해를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삼성물산은 사내 선물환 시스템을 관리하는 금융팀에서 영업부서의 수많은 채권ㆍ채무 관계를 모아 상계처리하거나 만기를 일치시키는 매칭을 통해 환위험을 관리한다. 또 수출계약 체결 때 환율과 실제 외화입금 때 환율이 달라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환차손을 극복하기 위해 수출계약과 동시에 동일한 환율로 선물환 매도계약을 체결한다. 이렇게 하면 실제 외화입금 시점에서 환율하락으로 인한 환자손이 발생하더라도 선물환 차익으로 해지가 가능하다.정유업계도 환율 등락에 희비가 오가는 곳이다. 정유업체는 원유를 전액 달러로 수입한다. 이 과정에서 보통 3개월 단위로 부채를 갚아야 하는 유전스(Usance) 거래를 한다. 따라서 외화차입금이 적지 않다.SK의 경우 주요 원자재인 원유를 달러로 구매하기 때문에 외화부채가 발생하고 동시에 매출의 40~50%가 수출로 구성돼 있어 외화자산도 생긴다. SK의 2005년 3분기 기준 순외화부채는 18억달러다. 원/달러 환율이 1원 떨어지면 약 18억원의 환차익이 생긴다. 하지만 환율하락에 따른 매출단가도 떨어지게 돼 영업이익도 감소한다. 따라서 자산과 부채의 차입시기를 조절하면서 환위험 관리를 하고 있다.수출대금 대부분을 달러 등 외환으로 지급받는 조선업체들도 선물환을 통한 헤지로 환리스크 관리를 한다. 2001년부터 환리스크 헤지를 전담하는 국제금융팀을 신설한 삼성중공업은 100% 헤지전략을 펴고 있다. 선박수주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선물환거래를 통해 환율급변동이 손익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한다. 대우조선해양도 5년째 선물환을 통한 헤지를 하고 있다.한편 중소기업들은 환율하락이 수출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리스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수출입보험공사는 2005년 8월 중소수출업체 100개사를 대상으로 ‘수출경쟁력 실태조사’를 한 결과 66.2%가 환리스크에 대한 특별한 관리수단이 없다고 대답했다.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대기업들이 선물환거래 같은 환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장연구원은 “이제 국내기업들도 다국적기업처럼 외부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제품의 고기능ㆍ고부가치화에 주력하는 한편 중국ㆍ미국ㆍ동아시아 중심의 수출시장을 중동 등으로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