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현대차 등 등락 ‘예의주시’… 수출비중 90% 넘는 회사도

국내기업들이 ‘환율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제조업체들의 매출액 대비 수출비중은 대부분 50% 이상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70%를 넘나든다. 2005년 화려하게 부활한 하이닉스반도체는 전체 매출액의 97%가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인 것.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은 영업을 잘해도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A사가 수출로 100달러를 벌었다고 치자. 1달러에 1,200원일 경우 12만원의 매출이 생긴다.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매출도 덩달아 1만원 줄어든다. 연간 수출이 10조ㆍ20조원 되는 기업에서 환율 100원 하락은 엄청난 충격이다. 자칫하면 제품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볼 수도 있다.LG전자는 2004년 매출액의 85%를 수출로 올렸다. LG 관계자는 “환율이 100원만 낮아져도 5,000억~6,000억원의 영업이익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정유업체들은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나머지 대다수 제조업체들은 LG전자와 같은 처지다. 그럼 국내 제조업체들의 환율위험은 어느 정도인가. 지금 환율에서 1달러당 100원이 떨어지면 손실금액은 얼마나 될까.<한경비즈니스>가 해마다 6월에 선정하는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상위 제조업체 10곳을 뽑았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LG전자, SK(주), S-Oil, 기아자동차, 하이닉스반도체, 현대모비스, LG화학 등이 10위권에 랭크됐다. 이들 기업 가운데 전체 매출액에서 수출 비중이 50% 미만인 곳은 포스코와 SK에 불과했다.나머지 8개 업체는 수출로 먹고사는 기업들이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수출이 총매출의 80%를 넘어서는 글로벌 기업이다. 원/달러 환율이 10원만 떨어져도 이익규모가 크게 줄어든다. 이들을 비롯한 10대 제조업체들은 2005년 매출(이익)이 2004년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환율하락의 여파가 컸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삼성전자는 2004년 57조6,000여억원의 총매출을 기록했다. 이중 82.6%인 47조6,000여억원이 해외시장에서 거둔 실적이다. 삼성전자는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환율변동에 따라 이익폭이 토끼뜀을 했다. 주우식 삼성전자 IR팀 전무는 “환율이 100원 움직이면 이익도 2조원이 따라 움직인다”고 밝힌 적이 있을 정도다. 삼성전자는 2004년 말 2005년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연간 평균환율을 1달러당 1,050원으로 점쳤었다. 하지만 2005년 1월에 이미 1,021원으로 떨어지자 화들짝 놀라 ‘900원에도 버틸 수 있는 경영환경을 만들겠다’며 전사적으로 환위험관리 시스템 정비에 나선 적이 있다. 삼성전자는 2006년에도 환율 하락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예상환율은 950~1,000원.현대자동차의 2004년 매출액은 27조4,000억원. 이중 70%가 수출로 올린 성과다. 현대차도 환율이 조금만 떨어져도 큰 타격을 입는다. 원/달러 환율이 현 수준에서 10원 떨어지면 2,000억원 가량 매출손실이 발생한다. 100원이 하락할 경우에는 영업이익의 25%가 감소한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1조9,814억원(2004년)이다. 따라서 약 5,000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2006년 환율은 1,000~1,050원선으로 예측했다. 최소한 1,000원 미만으로는 추락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LG전자의 수출비중은 보통 85% 정도다. 2005년 3분기까지 매출액은 17조5,921억원. 이중 수출은 13조3,708억원, 내수는 4조2,213억원이다. 3분기까지의 영업이익은 7,358억원. 이는 전년 동기 대비(1조1,548억원) 4,000여억원이 줄어든 것이다. LG전자의 영업이익 감소는 이동통신단말기 사업이 고전한 이유도 있지만, 환율하락이 한몫 했다는 것이 회사측의 분석이다. LG전자는 2006년에도 환율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1달러에 950~1,050원선으로 1,000원선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950원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한 건 그만큼 최악의 시나리오를 갖고 미리 대비하겠다는 뜻이다. 임원급의 팀장을 비롯한 4명의 전문인력이 환위험에 대응하고 있다.SK(주)는 어느 제조업체보다 환율에 민감한 기업이다. 원유 수입에서 환율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SK의 전체 매출액 중 수출비중은 47.09%(2005년 3분기 누적)다. 2005년 3분기 내수는 8조1,281억원, 수출은 7조5,722억원이었다. 특히 벙커C유의 경우 전체 2조1,366억원 중 1조379억원어치를 수출로 벌어들였다. SK의 2006년 환율전망은 1달러 1,010원. 2006년 상반기에는 환율이 상승하고, 하반기에는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반기에는 유가강세가 지속됨에 따라 경기부진 우려가 커지고 수출이 줄어들면서 무역수지 흑자폭이 점차 축소됨에 따라 환율 상승 가능성이 있다는 것. 반면 하반기에는 가계소비가 살아나고 설비투자가 늘어나면서 내수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점진적인 환율하락이 예상된다는 분석이다.기아자동차는 전체 매출의 약 70%가 수출로 이뤄진다. 2005년 3분기 11조4,20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수출이 8조2,744억원을 차지했다. 기아차의 3분기 경영실적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경기 불황으로 인한 내수 판매 감소분을 수출을 통해 만회해 왔으나 환율하락으로 수출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익규모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원/달러 환율이 1달러당 100원이 떨어지면 약 1조4,000억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2006년 평균 환율은 1달러당 1,000원으로 잡고 있다. 미국 금리인상 중단 및 쌍둥이 적자 증대, 위안화 절상 등의 문제로 달러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관리는 국제금융팀(9명)에서 담당하고 있다.S-Oil은 수출에 강한 정유사다. 수출이 전체 매출의 55%다. 2005년 3분기까지 올린 8조4,636억원의 매출 중 4조6,613억원이 동남아 등지로 석유제품을 수출해 벌었다. 하지만 일반 제조업체와는 달리 100% 환위험 관리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품수출과 원유수입이 함께 이뤄지다보니 둘의 절묘한 매치를 통해 환리스크 관리를 해온 것이다.S-Oil이 바라보는 2006년 환율은 900~1,000원 수준. 4명의 환 리스크 대응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환위험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업무가 분업화돼 있다.하이닉스반도체는 어느 기업보다 환율에 민감한 업체다. 매출액의 97%를 수출로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3분기에도 4조108억원의 매출액 중 수출이 3조8,821억원에 달한다.더군다나 하이닉스 ASP(반도체 평균 판매가격)가 미국 달러 기준으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면 그만큼 수입구조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하이닉스반도체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지속적인 금리인상이 중단되기 전까지는 현재 수준인 1,010원선이 지켜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2분기부터 원화강세 기조로 돌아서 3분기부터는 세 자릿수 환율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2006년 연평균 환율은 1,000원선으로 내다봤다.현대모비스는 전체 매출의 약 60%를 해외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2004년 총 6조4,359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중 수출이 3조8,245억원, 내수가 2조6,114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경영진이 환율은 수출 위주의 기업에는 사업 존폐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 리스크 대응팀 구성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2006년 사업계획은 1달러당 950원대에서 수립했다.LG화학은 2005년 2분기까지 매출액이 5조5,143억원. 이중 3조1,533억원을 수출로 벌어 비중이 58%에 달했다. 연 평균환율이 100원 하락할 경우 매출은 4,400억원, 영업이익은 1,500억원 정도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회사측의 분석이다.2006년에도 환율은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환위험담당 임원인 김홍기 상무를 비롯해 5명의 환리스크관리팀을 운용 중이며, 외화차입금, 선물환, 파생상품 등을 활용해서 꾸준히 환위험 관리를 하고 있다.돋보기 환율로 손실 본 기업사례환율하락… 수출기업 직격탄 맞아‘환율 앞에는 장사 없다.’ 2005년 적지 않은 수출기업들은 ‘환율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원/달러 환율 급락은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수출기업의 실적에 악영향을 끼쳤다.삼성전자의 2005년 1분기 매출액과 순이익은 모두 줄었다. 2004년 1분기 달러당 1,168.8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2005년 1분기에는 1,021.6원으로 12.6%가 하락했던 것. 삼성전자의 1분기 매출은 13조8,122억원으로 전년 1분기보다 4.17% 줄었다. 1분기 영업이익 또한 시장전망에 못미치는 2조1,499억원으로 46.37%나 줄었다. 1분기에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수출이 전 분기에 비해 4억달러 증가했다. 하지만 환율하락으로 원화표시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었던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LCD 등 일부 제품의 가격까지 하락하며 실적 악화를 부추겼다. 3분기까지 삼성전자는 6조원 상당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환율하락에 따른 기대이익 손실이 무려 3조원에 육박했다.현대차 역시 환율하락 충격으로 2005년 1분기에 3,27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부진한 영업이익을 냈다. 2004년 1분기 4,613억원에 비해 30.06% 줄어든 수치였다. 현대차의 환율하락에 따른 1분기 영업이익 감소액은 4,700억원 가량으로 추정됐다.2005년 1분기 달러 결제 비율이 높았던 대우조선해양은 1,51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LG전자도 1분기 환율하락으로 2,300억원의 영업이익이 감소한 뒤 저환율로 무척 고전했다. 한진해운 역시 3분기의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했다. 환율하락의 영향이었다. 영업이익 또한 전년 동기와 비교해 42.9%가 떨어졌다.INTERVIEW 안광헌 LG화학 금융팀 과장환리스크 계량화… 손실 줄여안광헌 LG화학 금융팀 과장은 외환만 7년째 담당해온 환리스크 전문가다. 경제학을 전공한 안과장은 LG화학 입사 직후 금융팀에 배치됐다. 그뒤 환리스크 관리를 줄곧 맡아왔다.“LG화학은 긴 역사를 지난만큼 오래전부터 환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해 체계적으로 환리스크 관리를 수행해 왔습니다. 특히 2003년부터는 기존의 환관리 방식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LG화학의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은 외화로 발생한다. 외화 중 달러가 90%를 차지한다. 원자재를 수입할 때도 달러를 쓰고, 가공한 뒤 제품을 수출할 때도 달러로 받는다. 환리스크 관리가 중차대한 영역일 수밖에 없다.“2003년까지는 ‘환 익스포져(Exposure : 환율변동에 노출된 규모)에 대한 목표 헤징 비율을 정해놓고 관리하는 방식을 써왔습니다. 헤징 비율을 정해놓고 선물환, 옵션 등을 통해 헤징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정작 환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지, 환율변동이 목표영업이익 달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이런 이유로 LG화학은 2003년 환관리 전문 컨설팅업체로부터 환관리 프로세스에 대해 컨설팅을 받는 등 대대적으로 환관리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시작했다.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2004년 초부터는 VaR(Value at Risk) 모델을 도입한 환관리 시스템을 구축, 운영 중이다. 환리스크로 발생하는 연간 환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계량화하고 이를 선제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다른 회사와 차별화했다. 또한 ERP팀과 공조해 영업부문과 재무부문에서 발생하는 환리스크를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구축, 환리스크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다.“회사의 CFO(최고재무책임자)는 그해의 환관리목표(Risk Tolerance)를 제시합니다. 2005년에는 연간 발생하는 환차손을 목표영업이익의 6%내로 줄이는 게 환관리 목표였습니다. 연초 발생 가능한 최대 환차손을 계량화하고 목표치를 초과하는 환리스크는 담당자들이 선물환, 옵션 등 파생상품을 통해 제거합니다.”LG화학의 환리스크 관리는 직급별로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환관리 프로세스는 환관리목표 설정과 전략수립, 헤징실행, 환리스크 모니터링 등으로 이뤄진다. 이 프로세스는 CFO, 금융담당 상무, 금융팀장, 금융팀 과장, 금융팀 대리로 이어지는 환관리 라인을 통해 체계적으로 구분돼 관리된다.LG화학은 장기 환율변동으로 인한 영업부문의 환손실 발생은 외화차입금으로 커버한다. 적정수준의 외화차입금을 유지해 환율하락시 영업부문에서 발생하는 환차손을 외화차입금 환차익으로 상쇄시키는 방법이다. 이른바 ‘내추럴 헤징’(Natural Hedging)이라 불리는 기법이다. “발생할 수 있는 환리스크의 20~30%를 외화차입금으로 헤징합니다. 이 정도를 적정 규모로 보고 있습니다.”LG화학은 2005년의 환리스크 관리목표를 무난히 달성했다. 환손실을 400억원 내로 줄인다는 연초 목표를 이룬 것. 안과장은 2005년 LG화학의 환손실을 400억원보다 훨씬 적은 약 137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