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앞날이 심상찮다. 아무리 둘러봐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물론 2006년 경제전망이야 현재로선 ‘장밋빛’이 대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곳곳에 요철이 깔려 있어서다. 염려ㆍ불안의 진원지는 환율이다. 환율하락만 생각하면 벌써부터 소름이 돋는다는 말까지 들린다. 환율공포는 전방위ㆍ무차별적이다. 수출전선이 무너지면 기업은 물론 가계부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내수회복은 요원한 꿈이 된다. 환율이 떨어지는 만큼 앉아서 까먹어야 할 돈(환차손)은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른다. 잠재성장률(4.8%) 달성은커녕 2005년 성장률(3.8% 추정) 달성도 어려워진다.관측대로라면 2006년 하반기엔 ‘세 자릿수’ 환율시대가 개막될 공산이 크다. 최근 민간연구소는 애초의 환율전망치를 속속 하향조정해 발표 중이다. 하락압박이 날이 갈수록 거세진 결과다. LG경제연구원은 2005년 10월 1,005원으로 전망했던 원/달러 환율을 최근(2005년 12월21일) 990원으로 수정했다. 15원을 낮춰 잡은 셈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종지부를 찍었다(달러약세)는 이유에서다. 이 결과 수출액 증가율 역시 9.6%에서 7.6%로 내렸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상반기 중 달러약세로 전환돼 하반기엔 세 자릿수 환율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으로는 1,014원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연간 원/달러 환율을 970원으로 내다봤다. 세 자릿수 환율 고착은 사실상 IMF 외환위기 이후 최초다.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을 퇴색시키기에 충분하다.환율은 세계경제의 흐름을 읽는 키워드인 동시에 기업생존을 좌우하는 절대변수다. 환율은 유가ㆍ금리와 함께 2006년 한국경제를 주도할 3대 거시변수로 손꼽힌다. 악재 반향이 즉각적이지 않지만 누적 후폭풍은 엄청나다. 가랑비에 옷 젖듯 실적지표를 갉아먹는다.환율하락은 여러모로 위협적이다. 먼저 기업부문에 직격탄을 날린다. 특히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이라면 환차손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환율하락은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둔화로 이어진다. 설사 수출물량이 늘어도 적자투성이의 ‘속 빈 강정’일 확률이 높다. 경상수지 적자규모도 그만큼 커진다. 또 기업실적을 떨어뜨려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정설이다.실례를 보자. 가령 LG전자는 2005년에 환율하락 여파로 매출액만 1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원가절감으로 영업이익은 그럭저럭 유지했지만 ‘세 자릿수’ 환율시대엔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환율하락분을 수출가격에 전가하는 정도가 축소되고 있다”며 “2005년과 유사한 매출을 기록해도 기업수익성은 한층 악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환율의 추가하락 때 수출은 점진적이기보다 단층적으로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손실을 감수해서라도 수출하느니 차라리 수출 자체를 포기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환율공포에 휩싸여 있다. 삼성전자는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이익만 2조원 감소하는 걸로 알려졌다. 환율하락은 자동차 수출에 가장 큰 타격을 준다. 금융경제연구원(한국은행) 보고서를 보면 환율이 10% 떨어지면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은 4.2% 하락한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영업이익의 25%가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환율하락의 체감공포는 중소기업 쪽이 더 심하다. 게다가 상당수가 환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기까지 하다. 한국수출보험공사가 중소수출기업 1,000개사를 대상으로 ‘수출경쟁력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최우선 애로사항이 환율하락(28.8%)으로 조사됐다. 더불어 66.2%가 환리스크 관리수단이 없다고 답했다. 고유가에 따른 원자재가 급등이 문제라고 밝힌 업체는 13.7%에 불과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은 최근 환율하락이 지속되면서 수출물량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 수출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은 아예 ‘죽을 맛’이다. 환율급락에 따른 충격흡수 장치와 적극적인 환위험 관리체계가 필요한 이유다.한국경제가 환율변동에 민감한 건 70%에 달하는 높은 무역의존도 때문이다. 한국은 GDP 중 수출의존도가 38%, 수입의존도가 32%를 차지한다. 동시에 수출부문의 성장기여도가 엄청나다. 내수가 죽을 쒀도 수출이 잘돼 그나마 버텨왔다. 수출증가세는 2003년 이후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호조세를 구가했다. 이는 80년대 중반(86~88년)의 3저 호황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물론 환율 파고를 넘어서는 기업무문의 생산성 향상 노력도 뺄 수 없다. 기술ㆍ품질ㆍ디자인 등의 지속적인 향상으로 주력 수출품목의 경쟁력이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환율하락은 엄청난 공포다.솔루션은 하나뿐이다. 환율하락을 막을 수 없다면 현명하게 대처하는 게 유리하다. 서둘러 환리스크 대응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환율은 더 이상 딜러나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개개인의 생활 속 깊숙이 연관돼 있다. 기업ㆍ가계는 시나리오별 환리스크 대응전략을 짜는 게 좋다. 가능하다면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통한 상시적 위기관리능력을 키워야 한다. 무역업체라면 선물환거래나 환변동보험에 가입해 두는 게 필수다. 더불어 환율 결정변수를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좋다. 환율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대외거래ㆍ물가ㆍ금리ㆍ성장률ㆍ통화량 등 경제요인은 물론 정치ㆍ사회변수도 직간접적으로 환율변동에 개입한다. ‘아는 게 힘’인 건 환율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