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 1945년 경북 김천 출생. 69년 한양대 공대 졸업. 69년 LG전자 입사. 84년 LG전자 냉장고 공장장. 88년 LG전자 임원. 96년 LG전자 리빙시스템 사업본부장, 98년 LG전자 부사장. 2000년 LG전자 디지털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장. 2001년 LG전자 사장. 2003년 LG전자 부회장. LG전자 CEO(현)‘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의 ‘혁신 10계명’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구절. ‘혁신 10계명’은 혁신에 관한 구체적인 실천지침이다. LG전자의 사업장이라면 국내외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해외사업장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도 달달 외우고 있을 정도. 5%가 불가능한 데 어떻게 30%가 가능하다는 말인가.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5%를 개선하려면 기존에 하던 방식에서 좀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때문에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30%라는 목표에 성공하려면 아예 접근법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설명.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생각하라는 뜻이다. 사고의 전환이 먼저 이루어져야 비로소 혁신다운 혁신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이처럼 ‘5%는 불가능하고, 30%는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김부회장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쌍벽을 이루는 전문경영인.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로부터 ‘아시아의 스타’(The Star of Asia)로 선정(2003년)된 바 있고, <포춘>지가 선정한 ‘아시아지역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순위’에서 14위를 차지했다.김부회장은 <한경비즈니스>가 뽑는 ‘올해의 CEO’에서도 윤부회장과 함께 줄곧 앞자리를 차지했다. 2003년 4위, 2004년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는 4위로 다섯 손가락에 들었다. 국내외 언론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김부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성공신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그가 이끌었던 LG전자의 가전사업은 세계 선두권으로 힘차게 뛰어올랐다. 에어컨, 양문형 냉장고, 드럼세탁기 등이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일렉트로닉스, GE, 월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그 과정에서 원가 혁신을 위해 지난 10년간 2,000개가 넘는 전사경영 혁신활동(TDR)팀을 만들었다.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 인력의 50%가 이곳을 거쳐 가면서 끊임없이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에 앞장섰다. 이러한 TDR 활동을 통해 전체 생산라인의 절반 정도가 ‘10초 라인’으로 구성됐을 정도다. ‘10초 라인’이라는 것은 에어컨, 세탁기, 전자레인지, 청소기 등이 10초마다 한 대씩 생산되는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그는 ‘혁신의 선구자’라는 닉네임을 얻었으며, LG전자의 최고사령관이 됐다.올 들어 그런 그의 입지가 잠시 흔들렸다. 업계에서는 그의 퇴진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2003년 10월 CEO로 취임한 뒤 사활을 걸었던 휴대전화사업이 게걸음을 하면서 ‘김쌍수식 경영’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흘러나왔다. 지난 2분기 휴대전화 사업이 적자를 내면서 회사 내부에서조차 ‘그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성과 위주의 경영으로 일관하면서 미래 성장산업을 키우는 데 소홀하다고 꼬집는 목소리도 들렸다.실제 올 3분기까지의 경영실적을 보면 가전사업 중심의 수익구조가 크게 개선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LG전자의 가전사업부문은 지난해 회사 전체 영업이익(1조2,497억원)의 36%(4,480억원)를 차지했다. 올해는 3분기까지 4,221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7,036억원)의 절반을 넘는 60%로 높아졌다. 휴대전화와 디지털TV, 디스플레이 등에 역량을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전부문 의존도가 더 높아진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김쌍수식 경영’을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공격거리가 되고 있다.이에 대해 회사측은 “부진했던 지난 2분기 실적을 3분기에 완전히 만회했다”며 “앞으로 꾸준한 실적개선을 예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휴대전화 사업은 2분기 4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으나 3분기에 1,229억원의 흑자로 돌아선 상태다.일각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김부회장이 총괄CEO에 오른 후 LG전자가 세계 일류기업 대열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우선 그가 추진했던 글로벌 경영이 서서히 빛을 내고 있다. 그는 취임 이후 오는 2010년 전자정보통신분야 ‘글로벌 톱3’에 오르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의 경영키워드인 ‘강한 실행’(Fast Exeuction)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확충에 전력을 쏟았다. LG전자의 매출액 중 85%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것. 지난해 해외법인의 40%가 적자를 내면서 주춤했지만 올 들어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며 반전에 성공했다는 평가다.중국지주회사에 이어 북미총괄과 유럽총괄 역시 각각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그외의 지역은 브라질ㆍCIS(독립국가연합)ㆍ서남아시아ㆍ중앙아시아ㆍ중남미 등 5대 지역 대표체제로 통합 조정했다. 현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업구조 체제를 갖춘 셈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폴란드에 백색가전 공장을 추가로 설립 중이다. 프랑스 파리R&D센터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디자인센터도 대폭 확장했다. 생산 및 R&Dㆍ디자인 부문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한 것.글로벌 경영에 주력하면서 인재경영도 박차를 가했다. 끈질긴 승부근성과 강한 실행력을 갖춘 인재육성만이 ‘글로벌 톱3’를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올해 2,700명의 R&D인력을 신규로 확보해 전체 R&D 인력을 1만3,000명으로 대폭 늘렸다. 지난해 대비 약 40% 증가한 1조8,000억원을 R&D부문에 투자했다.기업의 체질을 바꾼 것도 빼놓을 수 없다. LG전자의 기업문화는 다소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강한 추진력, 엄격한 신상필벌, 과감한 도전정신 등이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CEO에 올라선 뒤 기업 체질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그의 경영철학 중에는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실행한다’는 것이 있다. 한번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임직원들에게 ‘아무리 힘든 난관이 닥쳐도 피해가거나 뒤로 미루지 않고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강한 승부근성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현실은 냉엄하다. 치열한 글로벌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미지근한 자세로는 그들을 이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사양화의 길을 걷던 생활가전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운 것도 체질개선이 원동력이 됐다. 체질개선은 혁신을 통해 이뤄졌다. 그는 지난 69년 LG전자에 입사했다. 냉장고사업부의 연구원이었던 그때부터 그는 ‘현장개선’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임원이 된 이후 ‘혁신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 무렵 그가 맡고 있던 가전사업은 사양산업이니, 시장이 포화상태니 하는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다들 위기감에 휩싸였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사람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가전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혁신’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면서 한 단계 진보된 제품을 개발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그후 혁신은 LG전자 가전부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그의 꿈은 LG전자를 GCGP(Great Company Great People)로 만드는 것이다. GCGP는 회사와 구성원 모두가 최고의 역량을 가진 강한 조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조직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톱3’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