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그래프 빠진 미래 전망, 변화의 흐름 잡아낸 역작

“트렌드를 좇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제 “트렌드를 창출하는 것이 향후의 트렌드”라고 변형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트렌드라는 개념을 도마에 올려놓고 따지다 보면 이러한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먹느냐, 먹히느냐의 냉엄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업의 고민은 다른 누군가가 채 간파하지 못한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려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고 있다.새로운 시장의 단서들은 처음에는 매우 미약하게 보인다. 하지만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를 캐치해내고 남보다 먼저 사냥에 나설 때만 쟁취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조금 살벌하다고 생각되는가? 하지만 절대 망할 것 같지 않았던 기업과 상품들이 지난 수십년간 도태돼 온 이유들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환경변화에 경쟁자보다 둔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국내기업들에서 이러한 동물적 감각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경제연구소들이다. 이들의 역할은 과거 거시적 시장전망이나 미시적 컨설팅에 초점을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 및 소비자를 창출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듯하다.LG경제연구원의 90여 싱크탱커들의 노력으로 출간된 <2010 대한민국 트렌드>는 딱딱한 수치와 그래프의 성찬이 아니라 각 주제마다 몇 년 후 한국 소비자의 가상사례를 제시하면서 대중적으로 파고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이 책은 소비, 산업, 사회ㆍ문화, 인구, 경영, 국내경제, 글로벌 등 7개의 큰 나무를 심고 각각의 나무들마다 총 71개의 가지를 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나무들은 바로 한국사회와 기업, 소비자들의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 토양에 의해 자라나고 있음을 갈파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계화·정보화 ·민주화라는 세 가지 메가 트렌드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그러나 10년 전엔 그 누구도 이 같은 트렌드를 제대로 집어내지 못했다. 이 책은 이들 세 가지 큰 흐름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우리의 경제와 사회가 빚어내고 있는 갖가지 트렌드들로 살을 붙였다.’따라서 이 책이 편의상 갈라놓은 몇 개의 장이나 소주제들은 다루는 내용들을 구분하는 역할을 넘어 사실은 서로 꿰고 관통하는 ‘관계망’으로 이해돼야 한다. 각각의 주제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커다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트렌드는 공상과학이 아니다.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불투명하지만 미약하게 보여지는 단초들에 의미를 부여해 큰 흐름을 갈파하는 끊임없는 노력이다. 한국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시장, 기술, 소비자에 대한 통찰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 책은 한국의 트렌드를 적시하면서 더 나아가 이를 단초로 세계의 트렌드를 탐색하려는 시발점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혹자들은 이 책에 대해 충분한 근거자료나 신빙성 있는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은 추측의 나열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실 이것이 옥에 티라면 티일 수도 있겠지만, 책의 분량 및 난이도를 감안하면 이 모두를 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트렌드의 실제 전개 상황을 상호공유할 수 있는 채널을 개설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러한 업그레이드가 다음 판에 이루어지길 기대한다.이 책은 “예측의 오류를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다가올 5년을 준비하는 진취적인 노력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독자들에게 다가서려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보다 강력하게 ‘이러이러한 향후 트렌드가 나타날 것이며, 기업은 어떠한 식으로 새로운 시장에 대응하거나 창출해야 한다’는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한 책이다.물론 71개 분석 중 일부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부러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새로운 나무 또는 가지를 싹틔우는 자양분 역할을 해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자들이여, 예측이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는 말자. 차라리 예측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을 부끄러워하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더라도, 5년 후를 예측하는 일이 오류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해도 ‘5년 동안의 준비는 또 하나의 경쟁력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앨런 캐이의 어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