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참 많아요. 직전 부임지(루마니아)에선 별로였는데, 여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것 같습니다. 정부ㆍ민간 모두 많은 분야에서 협력하길 원하죠. 또 배울 자세도 돼 있고요. 한류도 참 대단합니다.” 김의기 주베트남 한국대사에 따르면 한국은 베트남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중국ㆍ일본과 달리 한국을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ODA(공적개발원조) 등 원조액이 적지만 일본보다 한국을 훨씬 반기는 분위기다. “스스럼없이 당신들에게 배우겠다”는 베트남 관료도 적잖다고 귀띔한다. 김대사는 “60~70년대만 해도 한국과 비슷하다고 봤는데 최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며 “노력하면 얼마든 한국처럼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한 것 같다”고 밝혔다.양국교류도 크게 늘어났다. 양국을 오가는 항공기만 매주 40여편에 이른다. 올 들어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베트남인은 2만7,000여명,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은 26만여명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베트남인의 한국방문은 올해 3만명을 웃돌 전망. 김대사는 “특히 한국인의 베트남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요즘 하노이에선 호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전했다. 덩달아 한국 위상도 업그레이드됐다. 92년 공식수교 이래 지금은 ‘포괄적 동반자’로 입지가 강화됐다. 김대사는 “수교 초기 베트남은 한국을 단기간에 부를 축적한 졸부 정도로 인식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벤치마킹해야 할 최적의 국가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다만 한국 정부의 대표(특명전권대사)로서 갖는 안타까움도 적잖다. 능력에 비해 요구수준ㆍ기대치가 높을 때가 대표적이다. 그는 “해달라는 건 많은데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때 참 난감하다”며 “실제로 한국의 ODA나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규모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5만~6만달러 정도는 대사의 전결사항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본만 해도 사정이 낫다. 한국은 조그만 것까지 본부허가가 필수다. 그나마 점차 나아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김대사는 “일본처럼 도로나 다리 등 큼직한 걸 만들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쓰레기하치장처럼 작은 것만 가능하다”며 안타까워했다.베트남 진출을 원하는 기업에 조언을 부탁했다. 김대사는 무엇보다 현지사정을 확실히 알고 접근하길 권했다. 가령 노무관계는 사회주의국가지만 한국보다 낫다. “여기선 노조가 있는 게 더 낫다고 할 만큼 노사관계가 협조적”이라고 말했다. 결국 노사분쟁 우려는 접어둬도 괜찮다. 문제는 투명성이다. 기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가 까다로워서다. 부동산 개발업체의 건설 프로젝트가 그렇다. 가령 민원이 늘면 추가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보통이다. 관련부서에 타협을 요청해도 주민과의 문제인 까닭에 좀체 나서지 않는다. 김대사는 “최근 베트남에 건설 붐이 일면서 한국 건설업체가 많이 들어와 있는데 여러 이유로 공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점을 충분히 숙지한 다음 조심스러운 접근자세를 보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베트남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체제전환국인 점도 염두에 둘 것을 조언했다. 김대사는 “대외개방이 가속화되다 보니 많은 기업인들이 베트남을 자본주의국가로 보는데 이건 오해”라며 “정치ㆍ사회적으로는 엄연히 사회주의국가란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임금ㆍ사회보장비ㆍ노조ㆍ정부영향력ㆍ조세제도 등이 한국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문화ㆍ정서적 차이도 존재한다. 때문에 법적 미비점에 대해선 모든 계약서를 아주 자세히 작성하는 게 좋다.김대사는 베트남의 자존심을 자주 소개했다. “국가나 개인 모두 자존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이걸 지켜줘야 한다”며 “지금 못산다고 무시하거나 홀대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까지 있다. 베트남전쟁 파병이 그렇다. 김대사는 “베트남 사람들은 옛날 일을 들춰 공론화시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들춰내서 그렇지 정작 이쪽에선 조용하다”고 전했다. 다분히 실용적으로 갈등보다 희망을 논하겠다는 게 이쪽 정서라는 설명이다. 한국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의 아픈 데를 안 건드려야 한다”며 “관광을 하더라도 자존심을 상하게 해선 곤란하다”고 덧붙였다.약력: 1947년 출생. 74년 서울대 독문학과 졸업. 76년 외무고시 합격. 80년 주캐나다 3등서기관. 86년 주브라질 참사관. 90년 중근동 과장. 94년 주독일 참사관. 99년 아중동국 참사관. 2001년 주루마니아 대사. 2005년 주베트남 대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