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유난히 10이라는 숫자에 집착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든, 특정 조직의 설립이든 이를 기념하는 대규모의 행사가 처음 열리는 게 바로 10년이 되는 해다. 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세울 때도 유독 10년 후를 고민하게 된다. 10년이라는 것은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도 10년 정도를 했으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직장생활도 10년을 했으면 스스로 볼 때 일에서는 많이 편해졌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회사는 지금까지와 다른 ‘직장인’을 요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다른 10년차도 일에서 기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개인적 인생도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더욱 어깨가 무거운 시기이기도 하다.물론 직장생활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느냐에 따라서 10년차의 위치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0년 전과 지금, 회사와 동료, 그리고 가족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차범근 감독은 히딩크 감독보다 성공한 선수였지만 감독 역할은 그렇지 못했다. 공만 잘 찬다고 훌륭한 코치나 감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선수로서의 기대치와 리더로서의 기대치는 엄연히 다르며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도 분명 다르다. 예전의 실력과 명성만 믿고 버티다가는 오히려 인생역전을 꿈꾸며 열심히 달려온 2군 선수들에게 밀릴 수도 있다. 지금이 그 변화를 시도하고 다시 나를 다잡아야 하는 시기이다.역할이 변하면 그 역할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알아차리고 행동을 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또 다른 10년 후는 분명 다를 것이다. 회사에 남는 것이든 몸값을 올리는 것이든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한다.그럼 10년차의 위치는 어떠한가? 우선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할이 다르다. 한 대기업이 컨설팅업체에 간부 리더십 수립의 건을 의뢰해 설문조사를 했다. 보직차장, 부장을 대상으로 본인의 역할(Role)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즉 연구ㆍ개발, 영업, 기획 등과 같은 업무에 대해서만 적었다. 조사결과 컨설팅업체는 “이 회사에는 관리자(Manager)가 한 명도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유는 단 한 명도 자신의 역할이 일과 사람 관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인간적으로 다가가는 상사 돼야그들은 10년 혹은 그 이상 해온 일을 아직까지 잘하기 위해 부하직원들과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조직을 정비하고 일과 사람을 관리해 ‘조직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이런 일을 실제로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만약 조직이 성과를 잘 내지 못할 때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본인이 더 열심히 현업에 몰두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직의 변화상은 분명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준비를 해야만 한다.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뚝딱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보직을 맡았다고 평소에 별로 가깝지도 않았던 부하들이 갑자기 따르는 것도 아니다. ‘경영’의 마인드가 필요한 때다.둘째, 10년차라면 이제는 진검승부를 펼쳐야 할 때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실력이 없거나 다른 곳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아서 떠났다. 즉 어느 정도의 실력과 근성, 그리고 야망이 있는 사람들끼리 조직의 상층부로 향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역할에 맞는 업무 방식을 개발하고, 리더십을 키우고, 더욱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자신에 대한 투자를 감행해야 할 때다.사실 직위가 높아졌다는 것은 권력이 생겨서 느슨해져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일의 공과가 뚜렷해지고 하는 일도 수준이 달라져서 더 높은 개인 경쟁력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평가가 위ㆍ아래에서 이뤄지고 있다. 상사의 입장에서 볼 때 실수가 인정이 안 되고 ‘상명하복’이 사라지는 지금의 조직에서 솔선수범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다가가지 않는 상사는 경쟁력이 없다.최근 사회적인 논란이 일고 있는 프로페셔널로서의 윤리의식 역시 재무장돼야 한다. 무심코 ‘관행’대로 하는 것이 이제는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셋째, 10년차 직장인이라면 ‘아줌마’, ‘아저씨’라고 한 번쯤 불려봤을 것이다.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두고 내집마련을 고민해야 하는 생활인이다. 기업의 수명을 30년으로 본다면 사람의 수명은 그의 2~3배에 달한다. 직장 속에서의 나뿐만 아니라 내 인생 속의 ‘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인생의 균형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비록 회사에서 하루 종일 보낼 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등한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 아버지에 대한 뼈아픈 반성의 경험을 갖고 있다.컨설팅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두거나 힘든 과정을 겪고 있을 때 가정은 그를 보듬어 주는 곳이 아니라 그를 평가하고 힘들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되는 것이다.이는 매우 흔한 일이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좋아 하는 사람이라도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언젠가는 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가족 속에서의 위치는 누가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돈을 버는 것도, 성공을 하는 것도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중국 속담에 ‘행복은 사랑할 사람이 있고, 할일이 있고, 바라는 일이 있다는 것’이란다. 이것을 10년차의 시각에서 해석해 본다면 사랑으로 무장한 서포팅 시스템을 갖고 있고, 일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을 경쟁력을 갖고, 인생의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이중 ‘할 일’이 있다는 건 현 사회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 됐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생각한다면 ‘할 일’이 있다는 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경쟁력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성공가도를 달려온 10년차들에게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발견이 되거나 그를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만약 이 세 가지 모두가 의문이 생긴다면 하나씩 만들어 나가면 된다.내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함께 계산기를 두드려서 인생의 마스터플랜을 짜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거나 사내 인재양성 시스템이나 진학을 통해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 후배에게 인간적인 선배가 돼주고 선배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후배가 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있다.또 주말이면 리모컨을 잡고 뒹구는 대신 식구들과 집 앞 공원에라도 나가보는 것. 생각해 보면 그 과정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한 클라이언트가 내가 쓴 <직장인 10년차>를 읽고 자신은 직장생활을 그만두려 한다며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책에 나온 대로 치열하게 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리더로서의 역할도 부담스럽고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을 쌓는 것도 자신 없으며 가족과의 행복한 인생과 일에서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에 문제가 있다면 당장 다른 삶 혹은 돌파구를 마련해 봐야 한다. 지금 직장에서 경쟁력이 없다면 하루빨리 직장을 옮기거나 아예 다른 삶을 모색해 볼 수도 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볼 수도 있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조적으로 모든 사람이 지금의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오히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창업을 하거나 전직을 하거나 일터를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10년차 정도면 사회경험 면에서, 그리고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 지적, 정신적, 육체적 성숙도가 가장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생각할 때 가장 적기일 수 있다.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찾아 떠나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에도 좋은 시기다.중요한 것은 직장에 머물든 어딘가로 떠나든 간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