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분석 통한 심리학적 통찰 ‘백미’…‘과학적 심리전 매뉴얼’

●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이현우 옮김/21세기북스/1만2,000원TV홈쇼핑을 시청한다. 보고 있노라면 하나같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피부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준다는 화장품 세트, 주름 안 지고 편하다는 남성용 바지, 건강과 미용에 효과만점이라는 요구르트 제조기를 이번에만 특별히, 한정된 수량에 한해 싸게 판매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게다가 무이자 할부가 되니 한 달에 지불하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부추긴다. 지금 바로 전화기를 붙잡고 주문을 하고 싶어진다.몇 년 전에는 어느 호텔의 고객사업부에서 전화가 왔다. 멤버십카드를 만들라는 권유 전화였다. 그런데 표현은 이랬다. 기존 회원이 나를 추천함으로써 멤버십카드를 만들 자격이 생겼다는 것이다. 멤버십카드를 가질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암시를 풍겼다. 직원의 목소리는 고우면서도 품위가 있었다.이후 나는 그녀가 암시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멤버십카드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추천을 했다기보다는 적당한 잠재고객을 대상으로 멤버십카드 확장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하지만 식사약속을 이 호텔에서 하는 기회가 잦아졌고 때로는 억지로 장소를 옮겨가면서까지 이 호텔을 이용하게 됐다. 할인 혜택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돌이켜보니 주변 식당을 이용했더라면 할인된 가격보다 더 저렴했을 것이다.지난해에는 더 이상 카드를 사용할 일이 없다며 그만 해지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고운 목소리의 매니저가 한마디 한다. “그건 정말 너무 아까운 기회를 놓치시는 거예요. 지금 고객님은 3년째 멤버십을 유지하고 계신 몇 안 되는 여성 고객님이세요.”또 넘어갔다. 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문 회원이라는 말에 연회비를 지불했다. 몇 년째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별다른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며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인데, 다 알고 있으면서 그녀의 설득에 넘어갔다.지난 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창 더운 시간이었는데 학교로 가는 길에 신호에 따라 차를 세우게 됐다. 정릉에서 북악터널로 오는 길에는 내부순환 고가도로가 있어서 교각 아래쪽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다. 그곳에 어떤 남자가 멜론을 네 개씩 넣어서 팔고 있었다. 이 사람은 멜론을 들고 차에 와서 창문을 내리라고 부탁하고는 맛을 보여줬다. 안 사도 괜찮다며 그냥 맛만 보라고 했다. 사실 나는 약간 목도 말랐으므로 손가락 크기 정도의 멜론을 먹었다. 먹고 나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고 결국 1만원을 주고 한 봉지 샀다. 신호를 받아 교차로를 넘어가는 순간 멜론의 꼭지가 말라붙어 있음을 발견했고 그제야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맛은 괜찮을지 모른다고 위안을 하며 학교로 향했다. 멜론은 하나도 먹을 수 없었고 쓰레기만 잔뜩 나온 셈이 됐다.<설득의 심리학>을 읽은 이후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아, 나는 책을 읽고 나서도 이런 실수를 하는가. 로버트 치알디니가 분명 친절하게 예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조사결과를 밝혀가며 경고했거늘 어찌 이리도 어리석은가. 여러분이 <설득의 심리학>을 읽고 나면 위의 세 가지 사례에서 내가 어떤 법칙에 의해 설득을 당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우리는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누군가에게 설득을 당하며 산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설득을 당하면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선택하기 위해 심리전을 펼치게 된다. <설득의 심리학>은 이론적인 틀을 이용해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책이 아니다. 또는 인물이나 사례만으로 설득의 심리를 연역적으로 꿰맞춘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통찰한 조사결과와 사람들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할 만큼 생생한 실제 사례를 풍부하게 배치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음으로써 독자를 사로잡는다.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사례도 대부분 미국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지금 한국의 독자가 읽어도 전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심리와 그것을 둘러싼 설득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일맥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현대의 비즈니스맨은 갈수록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설득하고 설득을 당하며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설득의 심리학은 제대로 설득할 수 있도록, 올바르게 설득을 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