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의 해였다. 그 어느 해보다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이슈가 많았다. 경제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계는 저성장 도래에 대비해 성장엔진 발굴에 총력을 기울인 해였다. 가령 먹고살기 위한 합종연횡도 연일 벌어졌다. 서민층은 출구 없는 고질적 불황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주머니 단속하기에 정신없는 한해였다. 양극화는 상대적 박탈감을 더 심화시켰다. 2005년 한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올해의 경영키워드’를 살펴본다.◇경쟁 없는 경쟁, ‘블루오션’ = 올해 재계는 ‘블루오션 신드롬’에 흠뻑 빠졌다. 재계의 핵심화두이자 유행어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블루오션을 되뇌지 않은 CEO가 없을 정도. 신드롬의 진원지였던 책 <블루오션 전략>은 일약 베스트셀러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블루오션 신드롬은 무차별적이었다. 재계는 물론 정계ㆍ학계 등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블루오션’을 차용했다. 삼성ㆍLGㆍ포스코 등 대기업들은 앞다퉈 블루오션에 근거한 기존 사업의 경쟁 전략ㆍ성장엔진 발굴 전략을 재점검했다. 블루오션이란 경쟁하지 않는 경쟁전략을 말한다. 기존의 치열한 경쟁시장인 레드오션과 대비된다.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부분에 기업 역량을 집중하되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ㆍ축소할 때 블루오션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CEO들이 그토록 찾던 고수익ㆍ고성장의 파워풀한 시장인 셈. 반향이 컸던 건 저성장 파고를 넘어야 하는 한국기업의 현실에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서다.◇네 자릿수 증시, ‘자금조달 술술’ = 올해는 한국증시에 기념비적인 한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1000이라는 심리적 저항선을 가볍게 뚫은데다 연일 지수 관련 신기록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2004년 연말과 놓고 보면 코스피지수는 무려 50% 가깝게 폭등했다. 시가총액은 700조원을 훌쩍 넘겼다. 더불어 펀드 전성시대가 개막됐다. 적립식펀드의 붐이다. 악재는 희석되고 호재는 부각된다. 부동산만 기웃거리던 부동자금도 증시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유동성 확대는 체질 강화로 이어진다. 외국인투자가의 파워가 줄어든 대신 기관투자가의 영향력이 커졌다. 주도세력의 변화로 증시 안전판은 한층 확고해졌다. 오너를 비롯한 경영진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대세상승이 자금조달 환경 개선을 의미해서다. 벌써부터 자금조달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목격된다. 신규 상장이 러시를 이뤄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미 250개 이상의 기업이 상장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쇼핑ㆍ우리홈쇼핑이 대표적이다.◇초일류 기업 부상, ‘1조 클럽 속속’ = 순이익만 1조원을 거둔 초일류 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전년보다 5개사가 늘어나 모두 12개 한국기업이 ‘1조 클럽’이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새겨넣었다. 삼성전자ㆍ포스코ㆍ한국전력ㆍ하이닉스ㆍ우리은행ㆍ현대차ㆍSKㆍLG전자ㆍLG필립스LCDㆍSK텔레콤ㆍ하나은행ㆍKT 등이 초일류 기업이란 명함을 움켜쥐었다. 특히 하이닉스ㆍ포스코 등의 실적 증가세가 눈부시다. 가령 하이닉스는 매출 대비 순이익률이 무려 33%를 넘어섰다. 순이익의 절대 크기뿐 아니라 자본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타의 추정을 불허하는 화려한 성적표다. 자산ㆍ매출 등 덩치 경쟁을 넘어 이제는 명실상부한 내재가치 지향의 경영전략이 정착된 셈이다. 더불어 시가총액 ‘1조 클럽’도 급증했다. 11월 말 현재 클럽에 속한 멤버수는 100개사를 가뿐히 넘긴다.◇합종연횡에 M&A까지, ‘된다면 모두’ = 올해는 M&A가 유력한 경영전략으로 급부상했다. 매물로 거론된 초대형 기업도 적잖았다. 과거의 소규모 M&A 양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해외자본에 헐값에 팔렸던 기업들이 재차 매물로 등장했다. 백풍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예전의 M&A의 경우 산업합리화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적극적인 기업성장 전략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현대건설ㆍ대우건설ㆍLG카드ㆍ외환은행ㆍ하이닉스ㆍ대한통운 등 업계 수위의 대표기업들이 대표적인 M&A 매물로 거론된다. 특히 금융권 M&A가 돋보인다.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증권을, 하나은행이 대한투자증권을 각각 인수했다. 독과점 논란이 일었던 하이트의 진로 M&A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환율ㆍ유가ㆍ금리, ‘3재에 떤 재계’ = 올해 CEO들은 거시지표에 치를 떨었다. 환율하락에 유가급등, 금리상승까지 외부악재가 줄줄이 실적을 훼손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로선 이들 ‘트리플 악재’가 엄청난 고비로 다가왔다. 얼어붙었던 내수악재보다 강도ㆍ여파가 훨씬 컸다. 실적을 갉아먹은 가장 직접적인 악재는 환율하락. 한때 환율은 900원대 후반까지 떨어졌었다. 환율하락은 곧 실적악화를 뜻한다. 비싼 값이 매겨져 결국 덜 팔리는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전망치다. 내년 역시 원화환율의 점진적 하락이 점쳐져서다. 유가상승세도 속수무책이었다. WTI(텍사스산 서부중질유) 기준 최고 70.85달러까지 치솟았다. 2004년 말 43.32달러보다 무려 64%나 오른 가격이다. 이는 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직결된다. 설상가상으로 국제금리까지 올랐다. 금리상승은 기업의 외부자금 조달을 어렵게 할뿐더러 금융비용도 증가시킨다.◇윤리ㆍ펀(Fun)경영, ‘정도ㆍ감동의 협연’ = 기업윤리는 어떻게 지켜야 할까. 2005년 재계는 ‘기업윤리’라는 새로운 숙제를 부여받았다. 단초는 두산그룹에서 비롯된 ‘형제의 난’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두산그룹의 복마전이 재벌의 고질적인 병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윤리경영’이 구호로만 그쳐선 안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삼성그룹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 해묵은 논쟁거리에 재차 휩싸였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 통과 여부에 따라 삼성을 필두로 재벌의 순환출자 구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게 확실시된다. 같은 맥락에서 양대노총 지도부의 비리도 충격을 던졌다. 귀족노조의 이기적 파업행태와 함께 지도부의 갈등ㆍ반목은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지적이다. 한편 잔잔한 유행을 불러일으킨 펀(Fun)경영도 화제다. 유머경영과 함께 임직원에게 신뢰와 자부심을 심어줌으로써 훌륭한 일터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돋보기 / 2006년 경영ㆍ경제 10대 이슈4.8% 성장 이룰까, ‘초미의 관심사’2006년 한국경제의 최대 이슈는 4.8%의 성장률 달성 여부로 모아졌다. 대한상공회의소가 63명의 재계 오피니언리더들을 대상으로 ‘내년 10대 경제이슈’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56.4%가 ‘실제성장률(2005년 3.8%)의 잠재성장률(4.8%) 회복 여부’를 첫손으로 꼽았다. 잠재성장률이란 물가상승 없이 노동ㆍ자본 등 생산요소를 총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성장능력을 말한다. ‘민간소비의 본격 회복 여부’(51.6%)도 뜨거운 감자로 조사됐다. 내수부문의 가시적인 경기회복을 기대하는 눈치다. 2005년 재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고유가 지속 여부’(51.6%)도 핫이슈로 자리매김했다.‘실업 해소 여부’(38.7%)는 2006년에도 핵심의제로 거론될 전망이다. 청년실업을 필두로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 현상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대한항공ㆍGM대우 등 하반기 노사관계를 경직시킨 노사간의 대립각을 내년엔 한층 낮춰야 한다(38.7%)는 의견도 많았다. 이밖에 부동산대책 성공과 부동산경기 연착륙(30.6%), 기업투자 본격화(22.6%), 저금리 기조 유지(22.6%), 경기양극화 해소(21.0%), 북핵문제 해결(21.0%) 등이 모두 2006년 10대 경제이슈로 선정됐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염두에 둔 북핵문제가 10대 이슈에 꼽힌 게 특정적이다.더불어 응답자들은 내년 경제전망을 비교적 밝게 봤다. 고용안정ㆍ소비회복을 이유로 올해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절반을 웃도는 52.3%가 민간소비의 본격 회복을 낙관했다. 9.6%만이 올해보다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기업투자는 올해보다 늘어날 것(46.0%)이란 응답과 비슷할 것(46.0%)이란 답변이 절대비중을 차지했다. 골치 아픈 외생변수였던 유가문제는 의견이 엇갈렸다. 28.6%가 추가상승을 점친 반면, 23.8%는 하락을 예상했다. 47.6%는 현 수준 유지에 동그라미를 쳤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평가도 대립됐다. ‘연착륙 성공’(44.2%)과 ‘지나친 위축’(41.0%)이 평행선을 그렸다. 한편 응답자들은 “정부가 적극적인 경기회복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