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별이 있으면 뜨는 별이 있기 마련. 기업의 세계라고 다를까. 경영환경의 빠른 변화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물이 있는 반면, 혜성처럼 떠오른 스타 CEO들이 적잖다. 특히 2005년은 분가 및 인수합병(M&A)이 홍수를 이룬 한해였다. 이 과정에서 ‘대대장에서 사단장 급으로’ 격이 달라진 CEO들이 줄을 이었다.지난 4월 ‘구ㆍ허씨’간 55년 동업이 막을 내리면서 LG그룹에서 GS그룹이 분가했다. 허창수 GS 회장은 단숨에 재계 7위 규모 기업군의 CEO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허회장은 고 허준구 LG건설 고문의 장남. 지난 1995년부터 구본무 LG 회장과 함께 LG그룹 경영에 참가했다. 하지만 동업원칙에 따라 외부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허회장은 과감한 M&A로 신성장산업에 진출하는 등 공격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2010년까지 순이익 기준으로 재계 5위까지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영일선에 복귀한 CEO들도 빼놓을 수 없다. 최태원 SK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렇다. 최회장은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법정구속을 당한 수모는 둘째였다. 자칫하면 영국계 사모펀드인 소버린의 공세에 그룹이 통째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하지만 올 초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오히려 경영권이 더욱 탄탄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열린 APEC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과 연쇄 회담을 갖는 등 재계 4위 그룹 CEO의 높은 위상을 한껏 자랑했다.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시삼촌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의 경영권싸움을 승리로 이끌며 재계에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받는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을 내치는 과감성을 보여줬다. 이로 인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하는 등 대북사업이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며 끝내 물러서지 않는 여장부의 배짱을 과시했다.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재계순위 13위 그룹 회장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는 평가다.기업간에 먹고 먹히는 M&A는 스타 CEO 배출의 산실.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은 진로 인수에 성공, ‘하이트-진로’라는 국내 최대의 주류기업을 탄생시킴으로써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이트맥주는 진로 인수를 통해 맥주, 소주, 위스키 등 3대 주류업체를 모두 거느리게 됐다. 재계순위도 40위권에서 30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하이트맥주는 진로인수에 참가한 10개 기업 중 외형이 가장 작은 기업. 하지만 박회장은 예상외의 초고가 인수 가액을 제시해 경쟁사들의 ‘허’를 찌르며 치열한 인수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강덕수 STX 회장은 대한통운 1대 대주주에 오르며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STX그룹은 그룹 출범 3년여 만에 재계 20위권 기업군으로 성장한 것이다. STX그룹은 지난 2000년 쌍용중공업이 외국계 컨소시엄으로 넘어가며 설립됐다. 동대문상고 출신으로 쌍용양회 평사원으로 입사해 쌍용중공업 사장까지 오른 강회장이 재직기간 중 받은 스톡옵션과 사재 20여억원을 투입해 인수했다. 이후 대동조선(현 STX조선),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엠텍(현 STX레이다시스),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등을 잇달아 인수해 화제가 됐다.임병석 세븐마운틴그룹 회장도 혜성처럼 등장한 CEO다.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한 뒤 5년 동안 배를 타다가 해운회사를 설립한 마도로스 출신. 2002년 상장회사인 세양선박을 인수하며 단숨에 해운업계의 ‘무서운 별’로 떠올랐다. 이후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한리버랜드, KC라인, 진도 등 5개사를 잇달아 인수, 재계를 놀라게 했다. 여기다가 건설회사인 우방까지 사들이며 매출 2조원대의 중견그룹을 일궜다.한편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상당수는 빛을 잃었다.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등과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 등이 별세했다. ‘원로 개성상인’으로 불리던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벤처기업협회장으로 일하던 장흥순 터보테크 회장과 김홍선 로커스 회장 등 벤처업계의 대표주자들도 분식회계 혐의로 잇달아 기업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