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가봤나요. 정말 역동적이죠. 개인적으로 자주 가는데 정말 엄청납니다. 갈 때마다 팔뚝의 혈관이 꿈틀대는 걸 느껴요. 기회의 땅인 게 분명하죠. 앞으로 20년은 발전할 겁니다.” 이상준 브릿지증권 사장은 남다른 핏줄의 소유자다. 베트남 최초ㆍ최후의 독립왕조였던 리(Lyㆍ李)왕조 후예다. 리왕조는 12세기 중반 중국계(진씨 왕족)에 의해 멸망된 후 베트남에선 멸족된 걸로 알려졌다. 하지만 800여년 후 3,600여㎞나 떨어진 한국에 후손이 살고 있음이 확인됐다. ‘화산 이씨’다. 1226년 왕족 몰락 직후 베트남을 탈출한 왕자(이용상)가 ‘보트피플’ 신세 끝에 황해도 화산(옹진지역)에 ‘불시착’한 게 인연이 됐다. 현재 36대까지 내려왔으며 모두 1,400여명에 불과한 미니 가문이다.이사장은 2003년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왕조 창건자인 ‘리공운’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존경ㆍ애정이 대단했기 때문. 이사장은 “만나자마자 베트남 사람들은 내가 정말 리왕조의 후예인지 몇 번이나 물었다”며 “화산 이씨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기억했다. 그도 그럴게 리왕조는 중국으로부터 자주성을 유지하며 무려 250년간 독립왕조를 꾸려나갔다. 베트남의 자존심을 지켜준 유일무이한 왕조였다. 2002년에는 ‘화산 이씨’ 시조인 이용상 왕자에 대한 일대기가 엄청난 반향 속에 하노이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95년 종친회 간부들이 베트남을 찾았을 때는 당시 도 무오이 당서기장을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나와 환대했다. 베트남 정부조차 ‘우리야말로 리왕조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정권’임을 강조한다. 지금도 화산 이씨는 주베트남 교민 모임이 있을 때 교민자격으로 초대받는다.이사장은 구조조정ㆍ인수합병 자문ㆍ투자 특화회사인 골든브릿지 금융그룹의 설립자다. 그를 설명하는 데는 몇가지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ESOP’(차입형 우리사주제)다. 노조에 지분을 줘 경영에 참가토록 하는 노사상생의 뉴패러다임 개막을 의미한다. 정년이 없는 대신 철저한 공개 연봉제로 노사갈등비용을 줄인다. ‘대체투자’와 ‘사회책임투자’는 그가 추구하는 ‘한국형 투자은행’의 양 날개다. 새로운 영역에서 돈을 벌되 좋은 일에 기여하자는 개념이다.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의 창출’을 최대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자면 이론ㆍ경험을 겸비한 ‘금융게릴라’가 필수다. ‘잃어버린 왕족의 후예’답게 그에게는 베트남이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험할 무대다. 베트남과의 각별한 인연을 계기로 ‘내일의 금맥’을 캐기 위해 열심이다.발걸음도 가볍다. 최근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가 나왔다. 지난 11월24일 베트남 자산관리공사(DATC)와 부실채권 처리 및 기업 구조조정ㆍ전문가 교육 등에서 협력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로써 블루오션 진출을 위한 교두보 안착에 성공한 셈이다. 이에 앞서 베트남 탕롱증권과는 업무협조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이사장은 “향후 베트남의 기업 구조조정 및 M&A시장을 집중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사장은 창업 때부터 해외공략이 핵심전략이었다. 관련사업 프로젝트도 차근차근 준비했다. 투자기간만 5년이다. 이를 위해 하노이대 출신 4명을 한국으로 불러 MBA과정까지 지원해줬다. 나중에 금융전사로 쓰기 위함이다. 그는 “이제는 금융게릴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끝났다”며 “베트남 금융선진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한국기업의 통로 역할도 맡고 싶다”고 전했다.이사장은 ‘칠전팔기’의 주인공이다. 7번의 사업실패 후 8번째 보기 좋게 재기했다. 불과 5년 만에 업계가 주목하는 다크호스로 ‘우뚝’ 섰다. 10억원의 쌈짓돈을 1,500여억원으로 키워냈다. 신용불량자에서 ‘브릿지’라는 금융그룹 총수로 변신했다. 또 수배를 피해 쫓겨 다녔던 노동판 용접공이 이제는 나라 밖 골드러시를 진두지휘한다. 업계가 긴장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포인트는 향후의 행보. 그의 출사표에는 전대미문의 첨단 금융기법과 경영전략이 가득하다. 몇몇 케이스는 굵직굵직한 금융회사마저 벤치마킹에 목을 맨다. 그는 “금융게릴라에게 국경은 없다”며 “베트남 등에서 다함께 잘사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힌다.약력: 1958년 서울 출생. 서울대 공대 자원공학과 졸업. 87년 전태일 노동자료연구소 정보화팀장. 89년 전국보험노련 홍보부장. 92년 다처산업 대표. 98년 국회의원(김영선) 보좌관. 2000년 골든브릿지 설립ㆍ대표. 쌍용캐피탈ㆍ골드브릿지기술투자 대표. 2005년 브릿지증권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