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3일 오후 6시30분. 호치민을 떠난 취재팀은 2시간을 날아 하노이의 관문 ‘노이바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차로는 38시간이 걸리는 1,730㎞(철로)의 거리다. 국내선인 까닭일까. 탑승객의 절대다수가 현지인이다. 기차요금보다 3배나 비싸지만 좌석은 모두 찼다. 평일임에도 불구, 적잖은 수의 어린 학생들도 보였다. 한 여학생의 겉옷엔 ‘○○태권도’란 한국어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날씨는 호치민보다 꽤 서늘하다. 가죽점퍼에 머플러, 부츠까지 신고 오토바이를 모는 여성이 적잖다.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 정치ㆍ문화의 중심지다. 혹자는 과거 공산ㆍ자유주의의 대립관계를 떠올려 “하노이가 평양이면 호치민은 서울”이라고 비유한다. 도시규모는 호치민보다 작고 아담하다. 인구도 호치민의 절반에 못미친다. 오토바이도 호치민보다 적다. 그래도 퇴근시간답게 러시아워가 만만찮다. 신호등이래야 고작 몇 개밖에 없지만 자기들만의 수신호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역시 차량은 뒷전이다.하노이엔 10여 군데 한식당이 영업 중이다. 대개 하노이대우호텔에서 5~10분 거리다. 손님의 8할 이상이 한국인이다. 주재원 아니면 관광객이다. 취재팀이 저녁을 먹은 G한식당도 마찬가지.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린다. 베트남에서 유통ㆍ식당업은 내국인만 운영이 가능하다. 때문에 한식당들도 현지인 명의를 빌릴 수밖에 없다. 된장ㆍ고추장 등 일부 재료만 빼면 모두 현지조달이 가능하다고. 가격은 한국에서와 비슷하지만 구매력을 감안한 물가로는 상당히 비싸다. 관세 레벨이 붙은 소주가 특히 인기다. 서빙을 보는 도우미들은 영어는 못해도 한국어는 곧잘 이해한다.하노이는 과거 ‘대우왕국’으로 불렸다. 그만큼 ‘한국 = 대우’의 이미지가 강한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둘 중 한 대는 역시 대우차. 또 다른 이슈는 신흥갑부의 출현이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반다오링남’ 호숫가는 하노이의 신흥부촌이다. 호숫가를 끼고 조성된 2~3층 빌라는 기업가나 고위공무원 집성촌이다. 2년여 전부터 집중 조성됐다. 지금도 곳곳에서 축대를 쌓아올리는 등 공사가 한창이다. 고작해야 건평 20~30평 정도지만, 건축비까지 합해 집값은 1억원 이상이다. 특이한 건 건물 모양. 전면은 좁고 뒤쪽이 긴 직사각형 모양이 대부분이다.하노이의 랜드마크라면 단연 ‘하노이대우호텔’을 뺄 수 없다. 5성급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최고급호텔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베트남에선 여기에 머물렀다. 바로 옆 건물이 ‘대하비즈니스센터’다. 호치민의 다이아몬드백화점처럼 한국의 유명기업이 대부분 입주해 있다. 절반 이상이 한국계다. 4층에는 한국대사관도 있다. 김영웅 KOTRA 하노이무역관장은 “후발 섬유업체 중 상당수는 포화상태인 호치민 대신 하노이를 선택한다”며 “최근엔 포스코ㆍ두산중공업 등 중화학업체의 진출도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섬유ㆍ봉제ㆍ신발 등은 대만과의 경쟁도 만만찮다고 덧붙였다. 3D업종으로 소문난데다 자본력을 갖춘 대만회사보다 비교열위에 있어서다. 게다가 40%로 못박은 ‘자동차부품 내수화 정책’처럼 보호장벽이 높은 것도 부담거리다.베트남 유통의 대부분은 재래시장이 맡는다. 한국의 60~70년대와 꼭 닮았다. 도심 외곽에 ‘메트로’처럼 대규모 도매할인점이 있긴 하지만 문턱이 높다.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똥선’으로 불리는 재래시장을 찾았다. 마치 한국의 남대문ㆍ동대문처럼 대량거래가 이뤄진다. 문구ㆍ의류ㆍ가방 등 잡화류는 없는 게 없다. 조금만 벗어나면 수공예품ㆍ여행사 등 관광객을 유혹하는 재래점포도 숱하게 펼쳐져 있다. 간이식당과 과일노점도 빼곡하게 들어섰다. 탁월한 손재주로 만들어진 수공예품에 눈길을 놓지 못하는 관광객이 적잖다. 엄청난 물건을 어깨에 멘 채 바삐 뛰어가는 젊은 아가씨들의 뒷모습에선 우리네 어머니들의 어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베트남은 전통과 현대의 공존 국가다. 낡고 지저분한 재래시장이 있다면 대로변엔 이탈리안 노천카페까지 갖춘 현대식 쇼핑타운도 있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장띠엔플라자’가 그렇다. 커피 값만 3달러인데도 노천카페에는 젊은 남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눈에 봐도 부티가 흐른다. 현지가이드 도홍광씨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최고급 오토바이(150만~200만원)와 휴대전화(약 40만원)를 갖는 게 꿈”이라며 “이 정도면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전했다. 젊은이들의 ‘코리안드림’도 대단하다. 800만~1,000만원의 뒷돈을 줘야 겨우 한국행 티켓(산업연수생)을 확보하지만, 그나마 최근에는 어려워졌다. 관광비자로 들어가는 데도 300만~400만원의 브로커 비용이 필요하다고.일정을 마친 후 공항으로 향하는 취재팀을 환송한 건 한국기업의 광고판. LG전자의 광고문구가 가로등을 대신해 빛을 밝힌다. 3.7㎞의 탕롱대교 양옆에 180개가 설치돼 있다. 그동안에는 수도의 관문이자 북부지역 젖줄인 홍강도 저녁이면 어김없이 어둠 속에 묻혀야 했다. 안병기 LG메카(LG전자 베트남법인) 부장은 “탕롱대교의 광고판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주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으로서 이미지 강화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출국장에선 한류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TV드라마를 보려는 면세점 직원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서 ‘동작 그만’이다. 베트남은 지금 한국과 열애 중이다.INTERVIEW 김정인 VIDAMCO(GM대우 베트남법인) 대표‘5억 아세안의 교두보로 삼길…’“10년 이상은 호황이 확실해요. 개방정책도 계속될 거고요.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빠져나오려는 반사이익까지 예상되죠.” 베트남 거리는 ‘대우차’ 천지다. 택시는 거의가 ‘마티즈’다. 시장점유율(승용차) 38%의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도요타와 함께 치열한 1위 경쟁 중이다. 김정인 VIDAMCO 대표는 대우차의 베트남 안착을 주도한 일등공신.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열어젖힌 베트남시장을 김대표가 착실히 장악했다.대우차의 성공스토리는 ‘고품질ㆍ중저가’로 요약된다. 철저한 현지화도 한몫 했다. 김대표는 “우리의 판매 슬로건은 ‘내 인생의 첫 차는 GM대우’”라며 “2010년까지 1가구에 1대씩 팔 계획”이라고 전했다. 활발한 사회공헌활동 덕에 시장만족도도 높다. 물론 처음부터 화려했던 건 아니다. 93년 설립 후 99년까지 6년간 내리 적자를 냈다. 하지만 김대표를 중심으로 한 주재원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2000년부터 흑자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10여개 해외현장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임직원 280명(주재원 6명)이 연간 승용차 1만대ㆍ버스 500대를 생산한다.기회는 무궁무진하다. 아직 130명당 1대밖에 보급되지 않은 상태다. 100% 관세가 붙지만 수요도 꾸준하다. 말 그대로 ‘장밋빛’이다. 베트남 정부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김대표는 “베트남에서 통하는 차종만 선택ㆍ집중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며 “선점기업으로서 양질ㆍ저가의 노동력을 활용한 가격경쟁력을 활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WTO 가입이 이뤄지면 거센 가격인하와 시장개방이 예상돼서다. 김대표는 “앞으로는 베트남 국내뿐만 아니라 인구 5억명의 아세안 역내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베트남을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성낙길 LG메카(LG전자 베트남법인) 대표‘철저한 사전준비 후 노크하세요’LG메카는 베트남 ‘No.1’ 가전업체다. 어지간한 곳의 에어컨ㆍTV는 십중팔구 ‘LG’ 마크가 찍혀 있다. 99년 본격 시장공략에 나선지 만 5년째(2003년) 거둔 금자탑이다. 베트남 진출역사가 30여년이 넘은 쟁쟁한 일본 메이커도 저만치 따돌렸다. 성낙길 LG메카 대표는 “베트남시장의 성장세는 놀라울 따름”이라며 “요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전했다. 더 고무적인 건 미래 전망. 여전히 가전제품 보급률이 저조해서다. 에어컨만 해도 10%가 안된다. 무궁무진한 시장개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본사의 관심도 대단하다. 시장점유율 1위 수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LG메카의 신화는 임직원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파트너사 부사장을 만나기 위해 3개월간 쓰디쓴 베트남 커피를 기꺼이 마신 성대표의 일화는 이곳에서 유명하다. 현지직원과의 골치 아픈 갈등도 뚝심 같은 신뢰로 극복해냈다. 무엇보다 시장ㆍ고객을 감동시켰다. 가령 몇 년 전 최악의 홍수가 닥쳤을 때 LG메카는 현지 가전업체로는 최초로 무상서비스를 실시했다. 제조업체가 달라도 고쳐줬다. 사회공헌도 남달랐다. 시각장애환자들이 수술을 받도록 지원했고 각종 장학사업도 활발히 전개했다. 베트남 정부는 LG메카에 노동훈장까지 수여했다. 이는 외국기업으로는 최초의 수훈이었다.전망도 밝다. 성대표는 “베트남은 어쨌든 장사 밑천은 벌어줄 것”이라며 “사람만 빼면 베트남의 오늘은 과거 한국 모습과 흡사하다”고 전했다. 가령 “정답을 알고 문제를 푸는데 누가 틀리겠냐”고까지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 다 본 것 같아도 아무것도 못 보는 곳이 또 베트남이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성공공략을 위한 사전준비가 필수라는 메시지다. 무조건 들이대는 게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