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86년 베트남의 경제개혁 정책인 ‘도이머이’가 채택된 지 2년 후인 1988년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의 장점을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실물경제를 하는 한국의 수출기업들이었다. 섬유봉제와 신발을 제조ㆍ수출하는 한국기업들은 국내 인건비 인상과 대비되는 베트남의 값싼 양질의 노동력에 매료돼 초창기 베트남 진출을 주도했다. 2000년 이후부터는 베트남ㆍ미국 무역협정(2000년 7월 체결)으로 대미 평균 수출관세가 40%에서 3%로 인하되는 호재를 활용한 대미 수출 전진기지를 염두에 두고 진출했다. 지금은 이에 더해 인프라 건설 등 베트남 자체가 가진 내수시장 잠재력과 자원 활용 가능성, 그리고 향후 아세안 자유무역협정 발효 후 아세안 진출 전진기지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진출하고 있다.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사실상 88년 양말, 가죽가공 등 2개 프로젝트가 승인받으면서 시작됐다. 다만 실질적인 투자가 동반된 공식진출은 91년부터다. 섬유봉제를 중심으로 91년 6건ㆍ4,500만달러의 투자를 비롯해 92년 12월 양국간 국교수립을 계기로 본격적인 베트남 진출이 이루어졌다. 특히 93년부터 대우그룹을 중심으로 자동차, 전자, 호텔건설, 아파트 및 오피스빌딩 건설부문 투자와 함께 94년에는 포스코까지 진출했다. 95년에는 삼성전자, 96~97년에는 LG그룹의 전자 및 전선, 산전, 생활용품 등 거의 전 계열사가 진출하는 등 본격적인 베트남 투자가 이뤄졌다. 96년에는 한국의 베트남 투자액이 약 8억4,000만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초기 한국기업은 베트남 국영기업과 합작ㆍ진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특히 90년대 중반 전기전자, 철강, 건설 등 한국의 중공업분야 선두기업이 베트남 진출을 위해 베트남 대형 국영기업과 합작 형태로 진출했다. 이는 당시 외국기업의 100% 단독투자 때 투자허가를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또 초기부터 투자가 집중됐던 섬유봉제, 신발분야가 90년 중반부터는 중공업분야로 확대됐다. 95년 전후에는 호텔, 아파트 등 건설부문에까지 확대될 정도로 활발한 투자활동을 보였다.지난 10월 말 현재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베트남 투자기획부 승인기준으로 총 1,004건에 약 53억9,000억달러에 달한다. 누계기준으로는 외국인 투자 4위를 유지하고 있다. 연간기준으로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연속 투자 2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특히 올해는 10개월 동안에만 전년의 약 2배에 달하는 6억6,000만달러의 투자승인을 받는 등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2004년 말 투자승인 누계기준으로 한국의 베트남 투자(투자금액 기준)는 경공업이 37%, 중공업이 28%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호치민시, 동나이성, 빈즈엉성 등 남부지역이 약 60%, 하노이시ㆍ하이퐁시 등 북부지역이 40%를 차지하고 있다.베트남은 특히 한류가 가장 먼저 퍼진 한류 원조국이다. 한국 인지도가 매우 높아 한국상품이 미국, 유럽산보다 오히려 대우받는 시장이다. 이에 힘입어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들의 매출액도 초기 대비 큰 성장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하노이에 진출한 LG전자의 경우 진출 초기인 97년 매출이 700만달러였지만 지난해에는 1억달러가 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신발 수출기업인 태광실업비나 창신베트남 등은 현재 베트남 고용원만 각각 1만5,000명에 달하며 연간 약 1억달러를 수출하고 있다.베트남 진출 한국기업의 베트남 경제 기여도를 살펴보면 2003년 기준 베트남 대외수출의 약 7.5%인 15억달러를 한국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베트남 전체 취업인구(농업 제외)의 약 1.5%인 20만명을 한국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경영실태 조사 결과 나타났다. 2005년 한국의 베트남 투자규모는 96년 이후 가장 큰 폭인 7억달러로 전망되고 있어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향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진출분야도 종래 제조업 위주에서 이제는 골프장, 레저타운, 주상복합건물, 병원 등으로 한층 다양화될 게 확실시된다.베트남 바이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한국의 인삼과 LG드봉 화장품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제품을 좋아한다. 그 이면에는 한류가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99년 한국 TV드라마(의가형제)가 처음 소개돼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불기 시작한 한류는 약 6년이 지난 지금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올해도 <풀하우스>, <허준>, <대장금> 등 인기 TV드라마가 방영됐다. 현재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Love Story in Harvard)>, <내 사랑 현정> 등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데 사실 베트남 내 한국 TV드라마 방영 비중은 외국드라마 중 13%에 불과하다. 중국(33%), 미국ㆍ캐나다(21%), 유럽(15%)에 비하면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 베트남 국민들이 한국드라마를 선호ㆍ열광하는 것은 문화적인 유사성이 깊어 시청자들의 감성과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의 한류 현주소를 말해주는 지난 11월8일자 신문기사에 의하면 “예전에는 신랑신부들이 웨딩사진 촬영시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했지만 최근에는 한국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최근에 유행했던 드라마 <대장금>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한류 덕에 베트남시장에서 한국의 삼성, LG, 대우 등의 전자제품은 품목마다 시장점유율 30% 내외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LG드봉 화장품은 시장점유율이 50%에 가까울 정도로 부동의 입지를 점하고 있다. 자동차, 조미료, 휴대전화 등은 물론 중소기업이 수출하는 정수기, 침구류, 각종 생활용품도 한국산 브랜드가 확인되면 가격이 다소 비싸도 주머니를 열고 있는 상황이다. 한류 혜택은 특정기업 한두 곳이 아닌 한국기업 모두가 보고 있으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지속될 게 확실하다.다만 ‘기회의 땅’ 베트남이라도 철저한 현지조사와 연구는 필수다. 지금은 탄탄한 매출을 기록하며 도약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베트남 진출 초기에 파트너를 잘못 선택해 5~6년간 고생한 경우도 많다. 또 초기 베트남 국영기업 중 가장 우량한 기업과 합작해 성공이 보장된 기업도 파트너가 신규분야로의 사업확장 등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10년이 지난 지금도 정체된 경우도 있다. 베트남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역사가 짧고 갑작스러운 경제성장으로 각종 제도와 법령이 미비해 현대식 경제활동을 받쳐주지 못해 공무원의 유권해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큰 프로젝트가 정체되거나 많은 뒷돈이 들어가는 경우도 자주 본다.베트남 현지지사도 수입업무가 극히 제한되는 등 많은 제약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합작투자 후 이사회에서 사회주의식 만장일치제를 유지하는 법규를 몰라 경영지분 51%만 가지면 경영권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금물이다. 또 외국인 또는 외국기업은 베트남에서 식당, 유흥업, 관광업 등 유통업에 종사할 수 없다는 규정을 몰랐거나 적당히 할 수 있다는 안일한 판단으로 베트남인 명의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등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사례들도 많이 있다. 특히 MOU(양해각서)만 체결되면 사업승인이 나는 것으로 판단하는데, 이것 역시 착각이다. 베트남은 기회의 땅임에 틀림없으나 기회라는 먹음직스러운 파이를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절차와 규정을 준수하며 오랫동안 기다릴 줄 아는, 즉 파이 값을 지불하는 자에게만 그 기회가 주어지는 땅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