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저출산ㆍ고령화.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까. 젊은이들이 줄어드니 일할 사람이 부족하고, 노인들은 늘어나니 사회비용은 급증하지 않을까. 국가재정은 공적연금, 의료지출비 등 공공지출로 어깨가 휘어질 테고, 기업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허우적거릴 것이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개인의 수입이 줄어들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한국경제는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으로 빠질 수도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이라도 저출산ㆍ고령화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할 일은 무엇일까.저출산ㆍ고령화의 심각성은 대통령부터 해당 부처의 말단 공무원까지 전파된 상태다. 대통령 직속의 특별위원회가 설치되고, 보건복지부 내 저출산ㆍ고령사회정책본부가 신설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7조원의 예산을 긴급 투입해 저출산ㆍ고령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쏟아부을 7조원이라는 금액은 저출산ㆍ고령화 관련 분야의 예산증가율로 따지면 21%나 상승한 것. 이는 정부의 총재정규모 증가율인 6.3%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주요 대책은 이렇다. 저출산 대책으로는 보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현재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월 318만원)에 못미치는 가정에서 아이를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 보낼 때는 정부가 보육료의 일부를 지원한다. 보육료 부담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풍조를 없애기 위한 것으로 올해는 만 5세 아이 62만명 중 14만명에게 월 13만1,000원씩 지원했다. 이는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에 미달하는 가구 중 절반이 지원받은 셈이다. 정부는 오는 2008년까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가정에 보육료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노인 요양시설도 대폭 확충한다. 치매나 만성 퇴행성 질환 등 노인성 질환만 전문으로 치료하는 ‘노인의료전문센터’가 2008년까지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9개 권역에 설립된다. 전국에 걸쳐 55개에 불과한 노인치매병원은 2008년까지 70개로 늘린다. 또 2006년부터는 여성이 출산휴가 때 고용보험기금에서 받는 급여를 30일에서 60일로 확대한다. 원래는 총 90일 중 기업주가 60일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출산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사회복지예산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는 국가재정이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는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재정수입은 주는 반면, 연금급여와 노인의료비, 노인복지서비스 등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정부는 내년에 9조원의 빚을 내서 221조4,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키로 했다. 외환위기 이후 8년 연속 빚을 내서 나라살림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는 올해 248조1,000억원에서 내년 279조9,000억원으로 31조8,000억원 급증할 전망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내년에 사상 최고 수준인 31.9%에 이를 전망이다.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구고령화는 민간은 물론 정부 저축까지 감소시킬 가능성이 커 지속성장을 위한 저축 증대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을 활성화시키고 재정건전화를 통한 국가채무 감축과 공적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노동부문에서도 정부가 할일이 많다. 기업의 근로환경은 저출산ㆍ고령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참 일할 시기인 30대 여성들이 임신ㆍ출산 등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산후조리를 마친 육아휴직자의 l1.9%가 퇴직하고, 이들 중 68%가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퇴직사유로 들고 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임신ㆍ출산 등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및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노동부는 지난 6월 ‘저출산ㆍ고령화 사회 극복을 위한 정책방안’을 제시했다. 주요 정책은 주로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정부의 대책은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첫째, 산후비용에서 기업주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이제까지 산후 90일 중 기업주가 60일, 고용보험에서 30일을 부담했다. 2008년 이후에는 대기업을 포함해 90일분 전액을 보험에서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둘째, 유ㆍ사산 휴가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여성근로자가 자연유산하거나 사산했을 때도 45일 한도로 휴가 및 휴가비 전액을 고용보험에서 지급하겠다는 뜻이다. 셋째, 가정과 직장 일을 함께할 수 있도록 육아지원을 확실하게 하겠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육아휴직의 활용률은 2004년 24.1%로 매우 낮은 편이다. 직장보육시설도 전체의 0.9%에 불과하다. 육아휴직, 직장보육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여성근로자에 대해 보육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넷째, 고령자의 고용안정과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고령근로자의 조기퇴직 등 고용불안 해소와 퇴출인력에 대한 고용안정대책, 고령자 고용촉진을 위한 기반조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정년을 연장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통해 퇴직연령을 연장하고, 본격적인 고령사회에 대비한 전문인력 양성 등의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고령화와 노동력 규모 감소에 대비해 연금개혁과 이에 연계된 정년연장 등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일각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조세수입을 늘릴뿐더러 연금재정의 숨통을 틔우고 젊은 세대의 부담이 줄어드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업 차원에서도 임금피크제를 활용하면 직업의 연속성, 지식의 이전, 인건비 절감 등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저출산ㆍ고령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한국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빠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활동인구 비율이 하락하는 2015년부터 경제성장률이 가파르게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240만명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면 취업자의 고령화로 이어져 생산현장에서의 생산성이 낮아진다.일본과 독일도 인구 정체와 함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진 사례가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 0.3%의 성장률을 보인 시기에 인구증가율 둔화와 함께 성장세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0.25%에 머물렀던 95~2000년에 경제성장률은 1.4%로 곤두박질쳤다.그렇다면 어떻게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인가. 우선 인구감소 시대에 대비한 사회ㆍ경제 시스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인력의 고급화를 위한 교육혁신과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산업의 육성책과 연계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저출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보고서에서 “생산성 제고를 위해 고등교육 중심의 경쟁력 향상이 시급하다”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학이 사회의 수요를 감안한 학제 개편 및 커리큘럼 정비, 대학별 특성화, 산학협력 등을 추진해 교육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