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이 맞나?’ 경기논쟁이 한창이다. ‘바닥을 찍었다’는 낙관론이 힘을 얻는 가운데 ‘아직 멀었다’는 비관론도 팽팽히 맞선다.경제전문가들조차 ‘갈지 자’(之) 지표에 혀를 내두른다. 정책당국자도 헷갈리긴 마찬가지. 부양책과 억제책을 양손에 쥔 채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경기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서민생활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몇 명만 모이면 경기 아니면 돈 얘기다. 그렇다고 뚜렷한 결론이 나지도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불확실성이 짙어져서다. 체감경기와 딴판인 경기지표도 불만이다. 과연 서민들이 느끼는 실제 경기관은 어떨까. <한경비즈니스>는 글로벌리서치와 ‘소비자 체감경기 전망’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공동 실시했다. 응답자는 500명으로 성별ㆍ연령ㆍ지역별로 고루 분산ㆍ취합했다.먼저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해 응답자의 47.7%는 경제사정이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매우 나빠졌다는 의견이 12.3%였고, 35.4%는 나빠진 편이라고 대답했다. 반면 좋아졌다는 사람은 7.8%에 그쳤다. 절반 가까운 43.9%는 비슷하다고 전했다. 읍면(14.9%) 거주자가 대도시(10.8%)보다, 월 99만원 이하 가구(24.7%)가 400만원 이상(8.0%) 가구보다 더 나빠졌다고 답했다. 학력별로는 고졸 이하가 비관적인 반면, 대학재학 이상은 평균을 웃도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소비 늘릴 계획 없다’ 84.4%올해 경제전망에 대해 물었다. 근소한 차이로 좋아질 것(30.5%)이란 응답이 나빠질 것(24.1%)이란 답변보다 많았다. 또 44.3%는 큰 변화 없이 비슷할 것으로 내다봤다. 5점 척도로 환산(2.5가 중간으로 그 이상은 낙관, 그 이하는 비관을 의미)하면 3.04로 향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이 낮을수록, 월 가구소득이 많을수록 회복 쪽에 무게중심을 두는 분위기였다. 지역별로는 충청권이 3.13(5점 척도)으로 가장 높았다. 직업별로는 자영업이 2.85로 가장 어둡게 전망했다. 실제로 자영업자 중 37.1%는 향후 경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봐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27.2%)을 압도했다. 한편 학력이 높을수록 경제전망은 비교적 밝았다.그렇다면 실제로 지난해와 비교해 현재의 가계형편은 어떨까. 응답자의 절대다수는 더 나빠졌거나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답했다. 변함이 없다가 51.4%를 웃돈 가운데 매우 나빠졌다(11.4%)와 나빠진 편이다(30.3%)가 41.7%를 차지했다. 좋아졌다고 답한 6.9%를 빼면 대충 열 중 아홉이 쪼들린 살림에 고군분투 중인 걸로 추측된다. 가계사정이 악화된 원인으로는 물가상승이 42.3%로 1순위에 꼽혔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상승으로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소득감소가 살림살이를 죄고 있다고 답한 이도 33.4%를 차지했다. 소득ㆍ지출변화는 없는데 자산가치가 하락했다는 응답은 4.1%로 집계됐다. 상대적 박탈감이다. 일자리 감소(0.6%)로 소득원천이 줄었다는 가계도 일부 있었다.무엇보다 현재의 물가수준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응답자의 86.8%가 약간 혹은 많이 올랐다고 답해 부담감을 나타냈다. 내렸다는 사람은 0.9%에 그쳤다. 남자(86.9%), 30대(90.0%), 경기(91.6%), 읍면(91.9%), 학생(90.1%), 가정주부(88.8%) 등이 동일 비교그룹 중 물가부담을 가장 높게 토로했다. 월소득 100만~199만원의 응답자가 느끼는 물가부담도 93.1%로 최고치였다. 물가상승의 주도 품목으로는 농수산물 등 식품류가 41.7%를 차지해 1위로 지목됐다. 30대(47.7%) 서울(54.7%)에 거주하는 주부(59.2%)가 식품류의 가격상승을 가장 부담스러워했다. 석유ㆍ가스 등 에너지물가도 31.2%를 차지해 물가상승을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이상(36.2%) 지방(강원 48.7%) 거주자 중 농ㆍ임ㆍ어업 종사자(55.7%)의 에너지값 상승부담이 가장 컸다. 10.1%를 올린 대중교통 요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사교육비(5.7%)와 공교육비(3.0%), 의료비(1.5%)도 거론됐다. 응답자들은 이밖에 의류ㆍ외식ㆍ가전제품 등이 물가상승을 유발했다고 답했다.내핍경영에 돌입한 가계도 적잖았다. 총응답자의 61.0%가 지난해에 비해 소비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요약됐다. 많이 줄이고 있다(16.5%)와 대체로 줄이는 편(44.5%)이라고 답한 사람이 대세였다. 30.5%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반면 대체로 늘리는 편(8.5%)이란 응답자는 일부에 그쳤다. 여자(64.1%), 50세 이상(64.9%), 충청권(69.8%), 주부(66.8%), 월소득 99만원 이하(72.5%) 응답자가 허리띠를 가장 졸라매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소비를 늘리겠다는 사람은 9.3%에 불과했다. 84.4%는 늘릴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남자(9.9%), 30대(11.6%), 경상권(11.8%), 학생(12.5%), 월소득 400만원 이상(23.0%) 등의 응답자는 작년보다 소비를 확대할 수 있다고 답했다.그럼에도 불구, 저축수준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과반수를 웃도는 56.2%가 지난해와 저축률이 비슷하다고 전했다. 대체로 줄이는 편(22.7%), 대체로 늘리는 편(10.4%), 많이 줄이는 편(9.8%), 많이 늘리는 편(0.55)의 순서였다. 5점 척도로 보면 2.69%로 평균을 가까스로 넘겼다. 나이가 많고 수입이 적을수록 저축이 준 반면, 젊고 연간소득이 많을수록 저축규모를 늘린다고 답했다.노후대책의 일환으로 재테크 여부를 물어봤다. 저축을 빼고 응답자의 81.6%는 자산증식 수단이 없다고 답해 노후대비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최대 비중을 차지한 재테크수단은 부동산으로 응답자의 7.0%를 차지했다. 특히 30대(11.1%) 남자(9.1%)에 경기권(11.4%) 중소도시(10.4%)에 거주하는 자영업자(12.4%)의 부동산 투자 열기가 비교그룹에선 가장 높았다.다음은 주식투자로 6.1%였다. 서울(8.3%)에 사는 전문ㆍ사무관리직 종사자(8.4%)가 주식에 열심이었다. 펀드(1.5%), 보험(0.6%), 금(0.5%), 계(0.2%), 채권(0.2%)의 순으로 집계됐다. 보험은 나이가 많고 지방거주 판매ㆍ기능직이 선호했다. 공히 소득ㆍ학력이 높을수록 부동산ㆍ주식ㆍ펀드에 대한 투자비율이 높았다. 연소득 4,000만원 이상의 1.3%는 사조직인 계에도 투자 중이었다.응답자들은 부동산가격이 많이 뛰었다고 입을 모았다. 47.1%가 약간 혹은 많이 올랐다고 답했다. 떨어졌다(13.8%)의 3배 이상이었다. 32.0%는 변함없다고 말했다. 30대(56.5%), 남자(49.5%), 서울(50.9%), 전문ㆍ사무관리직(56.3%), 월소득 300만~399만원(66.6%), 대학재학 이상(56.3%) 등이 부동산가격 상승에 특히 동의했다. 반면 20ㆍ50대 이상(14.4%)에 무직(17.5%)의 경우 시세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36.5%)이거나 별 효과가 없다(40.6%)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18.9%만이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이들 회의론자는 앞서 부동산가격이 많이 뛰었다고 답한 응답자와 정확히 일치했다.한국경제의 걸림돌로 응답자들은 첫손에 정부정책(36.9%)을 꼽았다. 더불어 정치권에 문제가 많다는 응답도 18.5%를 차지했다. 청와대(0.3%), 대통령(0.2%) 등까지 포함해 정치가 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응답이 절반을 웃돌았다. 국내기업의 경쟁력 부족은 11.7%를 얻었다. 국외변수도 한계로 거론됐다. 11.2%의 응답자가 국제환경의 변화를 악재로 판단했다. 10.1%는 대결구도로 치닫는 노사문화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봤다. 역시 한국 특유의 국민성(5.9%)도 오명을 벗지 못했다. 중소기업 비육성, 내수침체, 원자재가격 인상 등도 각각 0.2%의 걸림돌로 드러났다.